2009-07-23 14:02

기획/ 자금줄 마른 중소선사들 파산 도미노 본격화

대형선 위주 시황회복에 중소선사 불황 여전
금융권, B등급 선사들과 금융거래 기피


●●● 지난달 초 짧은 순간이었지만 4천포인트선을 찍으며 시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했던 건화물선해운지수는 이달 들어 3천포인트대를 맴돌며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BDI는 지난해 10월 1천포인트선이 붕괴되고 세자리수대까지 떨어지는 유사 이래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린 뒤 올해 들어 서서히 재도약의 기지개를 켜고 있는 듯하다. 선사들이 수익성의 마지노선이라고 입을 모았던 3천포인트선에서 BDI가 견조한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에서 해운시장의 낙관적인 전망이 점쳐지기도 한다.

한달새 9·12위 선사 잇달아 법정관리 신청

이 같은 긍정적인 시장 분위기에서 최근 국내 중견 부정기선사들의 잇따른 몰락은 더욱 강도 높은 충격이 되어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달 들어 해운업계는 업계 9위 선사와 12위 선사(매출액 기준)의 연이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을 지켜봐야 했다.

지난해 1조7천억원의 매출액을 일궈 해운업계 10위권 기업으로 당당히 진입했던 대우로지스틱스는 하루 아침에 법정관리 기업이란 불명예를 짊어지게 됐다. 대우로지스틱스의 법정관리 신청은 지난 3월 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를 인가받은 삼선로직스(해운업계 7위)에 이어 두번째 사례다.

대우로지스틱스는 지난해 건화물선 20여척을 용선한 뒤 해운시황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전략적으로 추진했던 마다가스카르 농지개발 사업의 좌초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회사 정상화를 위해 포스코에 인수제안을 요청했으나 해운업계의 반대에 부딪혀 성사시키지 못했다.

대우로지스틱스는 지금까지 부산 신항의 1호 물류센터 건립과 인천항 한중합작 물류센터 개설, 광양항내 공동물류센터(황금물류센터) 운영 등 활발한 물류사업을 벌여 왔다. 대우인터내셔널을 비롯해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등 옛 대우그룹을 화주로 두고 있는 것도 안정적이다.

지난 2004년 진출한 해운업이 몇 년간 초호황을 누리면서 매출액도 매년 몇 배씩 껑충 뛰었다. 지난 2003년 578억원이었던 매출액은 2006년 2058억원으로 3배 이상 성장했으며, 2007년 7054억원에 이어 지난해엔 1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업황 하락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선박투자를 무리하게 감행했다가 급격한 자금난에 빠지게 됐다. 결국 성장동력 역할을 했던 해운업이 회사의 발목을 잡고 만 셈이다.

대우로지스틱스의 법정관리 신청을 두고 포스코 인수를 반대했던 해운업계에도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운업계는 대우로지스틱스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포스코측에 인수제안을 하자 대형 화주 물량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포스코는 현재 물량 10% 가량을 대우로지스틱스에 맡기고 있다. 포스코측는 해운업계의 반발이 거세자 잠정적인 인수포기를 선언하고야 말았다. 인수·합병(M&A)이 무위로 돌아간 직후 대우로지스틱스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결국 해운업계는 포스코의 인수를 무산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대우로지스틱스의 정상화를 위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 셈이다.

현재 대우로지스틱스는 회사 정상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산 신항에 건립한 연면적 1만6천㎡ 규모의 물류센터(BIDC) 지분 80.2%와 컨테이너조작장(부산신항CFS) 지분 전체, 인천항에 설립한 물류창고(한중물류) 지분 50%를 각각 매각할 계획이다. 이중 신항 물류시설은 D사가 창고 운영에서 발생한 부채 600억원 가량을 떠안는 조건으로 200억원에 인수하기로 사실상 확정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일엔 티피씨코리아가 용대선문제로 인한 채무부담을 감당할 수가 없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터져 나왔다. 지난 2001년 설립돼 올해로 8년째를 맞은 티피씨코리아는 지난해 8825억원의 매출액과 418억원의 영업이익으로 해운업계 12번째에 올라 있는 중견기업이다. 티피씨코리아는 설립 이후 원목선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사업을 벌여 매년 꾸준한 성장을 일궈왔다. 특히 지난해엔 해운업의 호황을 타고 2배 이상의 매출액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선대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사선 6척, 23만9천t(재화중량톤) 가량이다.

티피씨코리아는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선대금을 성실하게 지급해 왔으나 거래선사로부터 채권을 원활히 회수하지 못한데다 시황도 지지부진하자 심각한 자금난에 맞닥뜨린 것으로 파악된다. 티피씨코리아측은 최근 채무 문제로 회사 계좌는 물론 선박들이 가압류 돼 사실상 사업진행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견실한 것으로 평가돼 왔던 이 회사도 결국 해운업계 부실화의 큰 원인으로 지목받는 용선사슬의 굴레를 비켜가지는 못한 셈이다.

M&A, 패스트트랙 등 생존 몸부림

법정관리 이외에 중소선사들의 M&A나 금융지원 신청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창명해운은 금융권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신속하게 유동성을 지원하는 패스트트랙(Fast track)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패스트트랙은 원리금 상환을 연장해주고, 이자율을 인하해주는 금융지원 프로그램으로, 창명해운은 이를 통해 신조선 건조와 용선거래로 발생한 유동성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창명해운은 현재 선박펀드 포함 19척의 신조선을 발주해 놓은 상태다. 이중 오리엔트조선에 발주한 6척의 경우 발주취소 등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창명해운 관계자는 “채권단과 패스트트랙 승인을 큰 틀에서 합의했다”며 “세부적인 내용을 놓고 협의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견 부정기선사인 선우상선과 자회사인 선우ST(옛 봉신)는 지난 3월 해운시황 급락에 따른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투자관리자문업체인 KTIC홀딩스에 매각됐다. KTIC홀딩스는 선우상선의 대주주였던 정인현 회장으로부터 지분 77%를 인수해 두 회사의 경영권을 이양했다. 지난해 7989억원의 매출액으로 국내 14위 선사인 선우상선은 자회사 선우ST의 지분 54.44%를 갖고 있다. 선우상선은 지난해 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파크로드로부터 선박 7척을 조기반선 받으며 용선료 지불 불능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상장사인 선우ST는 지난해 777억원에 이르는 파생상품손실을 입었다고 공시하는 등 자금난을 겪어왔다.

다만 KTIC는 채권자측과의 용선료 협상, 향후 사업전략 등의 문제로 선우상선의 M&A를 아직까지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KTIC측 관계자는 “아직 M&A가 진행 중이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50% 이상 진행된 걸로 보면 된다. 인수 후 어떻게 부가가치를 낼 수 있도록 할 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또 LED(발광다이오드) 솔루션 기업인 써니트렌드가 진양해운 지분 51%를 인수한 것도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써니트렌드는 진양해운 인수를 위해 2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진양해운이 써니트렌드 지분 5.04%를 보유한 주요 주주 중 한 곳이란 점에서 이번 M&A는 사실상 진양해운의 우회상장과 자금난 해소를 노린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용선사슬 여전히 발목…D해운·S사 100억대 상사분쟁

BDI 흐름이 선사들의 BEP(손익분기점) 마지노선인 3천선을 돌파하고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중견 선사들이 연쇄적으로 쓰러지고 있는 데는 용선사슬관행이 한 몫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용선거래가 평균 5~6단계까지 사슬처럼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하위 용선사가 도산하게 되면 그와 거래한 용선사들도 자금회수를 하지 못하게 돼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티피씨코리아도 앞서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선로직스 등으로부터 450억원 가량의 채권을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D해운과 S사가 용선거래대금 문제로 국제상사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D해운은 최근 미국 뉴욕법원에 1천만달러(약 120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S사는 냉동벌크선을 중심으로 사업을 성장시켜오다 최근 몇 년 사이 건화물선 부문 확대를 꾀해왔으나 시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시황이 호전됐다고 하나 BDI 상승이 케이프사이즈 시장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소형선시장은 시황 상승의 수혜를 거의 받지 못한다는 점도 중소선사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한 원인이다. 중소선사들의 경우 대부분 케이프사이즈 선박보다 작은 파나막스나 핸디사이즈 선박을 통해 사업을 벌이고 있어 최근의 시황상승은 남의 집 얘기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업계는 한진해운이나 STX팬오션, 현대상선, 대한해운 등 대형선사들마저 지난 1분기 동안 최대 1천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한 상황에서 중소선사들의 영업환경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시황상승은 중국의 철광석 사재기가 한몫한 것으로 케이프사이즈 시장쪽에 편중돼 있다고 봐야 한다”며 “중소선사들은 소형선 영업이 대부분이라 BDI 지수가 최소 4천포인트 이상은 올라가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선사들은 또 정부가 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벌이고 있는 선박펀드형 해운업 구조조정에서도 비켜나 있어 금융지원이 사실상 막혀 있는 상태다. 캠코는 지난 6월 선박매각 신청을 받아 총 62척을 매입대상으로 확정지었으며 이중 17척을 이번 달에 우선 매입키로 했다. 1차 매입선박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모두 대형선사 선박들로만 구성됐다.

캠코에 선박을 판다해도 선박 가격이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매입가격이 클락슨이나 펀리 등 해외 6개 전문평가기관이 제시하는 시장가격에 따르는 것이어서 선박을 매각하더라도 해운 호황 당시의 높은 선박인수대금을 갚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와 관련 J선사 관계자는 “선박 가격이 지난해 최고 수준과 비교해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져 있다”며 “지금 캠코에 판다고 해봐야 선사들이 밀린 채무를 해소하고 운영자금을 마련하는 데는 여전히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들이 지난 해운사 등급 판정 때 B등급을 받았던 곳들”이라며 “금융권이 B등급 맞은 선사들을 기피해 돈줄이 마르고 있다. 이럴려면 등급을 왜 매긴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한국선주협회의 회원사들은 늘어난 것으로 파악돼 해운업에 대한 기업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협회는 단성해운, 디엠씨마리타임 등 폐업한 7곳이 회원사에서 제명된 반면 코리아엘엔지트레이딩, 장금마리타임 등 11곳이 새롭게 가세해 전체 회원사는 올초 총회 때 보다 4곳이 늘어난 168곳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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