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해운산업 침체로 많은 선사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략물자에 대한 국적선 수송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발전용 석탄이나 원유, 철광석 등의 대량 화물에 대한 수송마저 외국선사들에게 넘길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 해상물동량 83억t 중 대량화물은 57%에 이를 만큼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연간 5억4천만t의 수입물동량 중 67%인 3억6천만t이 대량화물 수송이다. 대량화물 전용선 규모는 총 71척, 1029만DWT로, 선주협회 회원사 보유 선복량 2988만DWT(753척)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수입된 대량화물은 한국전력 6093만t, 포스코 7500만t, 가스공사 2800만t 등이었다. 이중 전용선으로 전체의 42%인 7022만t이 수송됐고 나머지는 장기수송계약(COA)이나 단기용선을 통해 이뤄졌다. 선사들은 지난해 전용선으로 약 17억달러의 운임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형화주 3곳은 지난 2004년 국제입찰을 첫 실시한 이후 외국선사, 특히 일본선사의 수송시장 참여를 확대하고 있어 국내 해운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한전은 일본 3대 선사와 장기수송계약(COA) 및 전용선 수송계약을 체결했으며 계약을 통해 수송되는 화물량은 총 1억t에 이른다. 한전 자회사인 남동발전은 연간 2천만t의 발전용 석탄을 수입하고 있으며 이중 일본 MOL에게도 수송 일부를 참여시키고 있다. 연간 1200만t의 석탄을 도입하고 있는 서부발전도 최근 일본선사와 운송계약 5건을 체결해 해운업계 안팎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포스코는 일본선사들과 3건의 수의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게다가 벨기에 클라이마르(Kleimar)사와 지난 2004년 COA를 체결했으며, 올해까지 총 300만t의 수입화물을 들여오게 된다. 가스공사는 연간 수입화물 2800만t 중 50%인 1400만t을 국적전용선(FOB)으로 수송하고 있으며 50%는 외국선사(CIF)에 맡기고 있다. 가스공사는 4척의 전용선을 새로 투입할 계획이다.
日 상선대 한국의 5배
일본선사들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는 이유로 한국선사들이 외형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데다 선가경쟁력 등에서도 매우 열악한 점이 지적된다.
일본상선대는 3674척, 1억7천만t으로, 우리나라 1083척, 3801만t의 5배 규모다. 특히 현재 NYK, MOL, 케이라인 등 일본 대형 3개 선사의 선뱍량은 1억3700만t이며, 벌크선 보유량만 3600만t으로, 우리나라 전체 선단 규모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영업실적에서도 한국해운업계를 압도한다. 지난 2007년 일본 3대 선사의 매출액 규모는 총 67조3천억원으로, 한국 해운업계 전체 매출액인 34조원의 2배 규모를 자랑한다. 이들 선사의 영업이익 규모도 4조5천억원으로 한국(2조원)보다 2배 이상 많다.
연간 선박 비용 면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뒤진다. 지난 2004년 한전 COA 입찰 당시만 해도 양국 전용선 비용을 따져본 결과 일본 선박이 연간 70만달러 저렴한 것으로 추산됐다. 연간 120만t 운송을 기준으로 했을 때 t당 58센트가 저렴한 것이다. 당시 입찰 가격은 일본이 5.53달러, 한국이 5.76달러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한국은 선박 척당 자본비 447만달러가 소요된 반면, 일본은 387만달러로, 일본이 60만달러 낮았다. 금리가 우리보다 연 3% 가량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원비는 한국이 9500만달러였던 반면 일본은 60만달러로, 역시 일본이 35만달러 우위를 보였다. 일반관리비면에선 한국이 11만달러로 일본보다 25만달러 낮았다.
지난해 전용선 비용에선 일본이 한국보다 연간 기준으로 20만달러 저렴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간 120만t을 수송한다고 했을 경우 t당 17센트가 싼 것이다. 일본은 자본비와 선원비에서 각각 20만달러, 10만달러 낮았고, 우리나라는 일반관리비에서 10만달러 우위를 점했다.
일본은 선가 상환기간이 12년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는 6년이나 더 긴 18년이라는 점도 경쟁력 차이를 낳게 한다. 일본 선사들은 원가상환이 끝난 선령 13년의 선박은 해외 시장 진출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선사들이 2000년대 들어 한국 시장 진출 공세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NYK가 한국의 대량화물 수송시장 진입을 위해 지난 2004년 6월 NYK벌크쉽코리아를 설립했으며 케이라인과 MOL도 대리점 역할을 강화해 공격적인 영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 3사는 내년까지 총 55척의 선박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어서 영업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NYK는 18조8천억원을 들여 218척의 선박을 짓고, 케이라인은 16조2천억원으로 180척, MOL은 157척을 각각 신조할 계획이다.
日·대만은 자국선사에만 수송 맡겨
해운업계는 일본과 대만 등 경쟁국가는 자국 선사에만 전략화물수송을 맡긴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만과 일본은 지명 경쟁입찰과 수의계약방식으로 외국선사의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 공기업의 해상운송서비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조달협정 적용에 제외된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황진회 박사는 “일본은 정기선 운임의 60%, 부정기선 운임의 88%를 자국 하주로부터 취하고 있는 반면 한국 선사들은 정기선 운임의 20%, 부정기선 운임의 40%만을 국내 화주로부터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에선 1970년 이후부터 일본 상선대의 적취율을 65% 이상으로 유지해 일본 해운기업들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며 “일본 3대 선사들은 자국 화물 수송을 통해 세계 일류선사로 출범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국내해운업계는 2018년까지 140척의 전용선을 신조발주해 운영할 경우 265억달러의 운임수입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140척, 약 153억달러의 신조 수요가 내수기반이 취약한 국내 조선산업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조선소의 내수 비중은 10% 미만으로, 일본 50%, 중국 20%와 비교해 크게 낮은 실정이다.
또 해운기업은 건조비용을 절감하고 경영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데다 선박건조비용을 저금리로 차입할 수 있다. 화주기업은 조달비용을 줄이고 수송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국적선 수송의 장점으로 지적됐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전략물자 국적선 수송방안 정책 제안’ 간담회에서도 이같은 내용은 이어졌다.
STX팬오션 정갑선 전무는 지난해 10척의 전용선이 외국선사에 맡겨진 것을 들어 “지난 4년간 해운호황이라 국적선사들이 대량화물 수송에서 일본 선사들과 경쟁해 여력이 없었다”고 말하고 “화주들이 올해 전용선을 발주했다면 1억1500만달러짜리 선박을 안 짓고 7천만달러 선박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해 전용선 계약시 시기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송비 절감, 시기선택도 중요
대한해운 박상용 상무는 “명분에 호소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화주) 지원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10년 이상 장기수송할 때 항비 면제나 감면, 수입관세 일부 유예 등 지원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국적선 이용의 정책적인 지원을 건의했다.
이에 대해 화주측에선 국적선사들이 경쟁력 향상에 소홀한 것이나 지난 몇 년간 해운호황 시 전략물자 수송을 외면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동서발전 사업처 박현철 처장은 “발전사들은 공기업이라 국제 경쟁입찰을 배제하면 재무건전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안정적인 연료수송이라고 했는데 지난해 유연탄 수송 입찰할 때 운임이 너무 올라 입찰 들어온 선사들이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남동발전 연료팀 이용재 팀장은 “국적선사들의 파트너십과 맨파워가 좋다”면서도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COA 계약시 일단 낙찰하고 나서 시황 올라가자 계약 이행을 안 해 발전사를 어렵게 했었다”며 꼬집었다.
포스코 석탄구매그룹장 전중선 부장은 “수송 안정성으로 보면 국적선사나 외국선사나 큰 차이 없다”며 “국부유출을 생각해야 하지만 경쟁력을 생각하면 경제성을 생각 안할 수 없다”고 말해 국적선사들의 경쟁력 제고를 주문했다.
가스공사 자원본부장 장석효 상무는 선사측 지인 얘기를 빌어 “LNG가 활황일 땐 찬밥이고 어려울 땐 효자노릇한다고 하더라”며 “앞으로 나오는 물량은 국적선을 이용할 계획인데, 선사들도 잘 나갈 때도 (화주들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지난 호황 때의 외면을 에둘러 말했다.
이에 대해 SK해운 김성규 벌크선 영업본부장은 “국적선사들은 단기 비용 경쟁에 급급해 장기 축을 못 만드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며 “일본은 운임이 일시적으로 비싸더라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그는 화주측에도 “지나치게 저가로 입찰하다보면 선사부실을 초래하고 서비스 질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해 적정가에 의한 입찰 진행을 요청했다.
현대상선 최형규 상무는 “국적선사들은 원가와 서비스 경쟁력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하주 신뢰와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 백대현 상무는 “외국선사들을 철저히 배제하면 논란이 일 수도 있으므로 장기에만 외국선사 배제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며 “대만전력사들 처럼 최저가를 외국선사들이 써냈으면 국적선사에 이 운임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방법도 (국내 화주들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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