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브랜드로 장수하는 포워더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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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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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항역은 지난 1965년부터 항공화물운송을 시작한 이래 69년엔 한국에서는 두번째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대리점 자격을 얻으면서 항공사 AWB(항공운송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해상포워딩은 70년대 초반엔 재키매더, 단자스, 쉥커등이 한국에 연락원을 두고 대리점 체제로 영업을 했다.
이후 76년에 해상주선업 면허가 발급됐고 첫 면허업체로 제일항역을 비롯해 26개사가 출범했다. 당시 면허기준에 3개국 이상 대리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과 텔렉스를 보유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중에 텔렉스는 외국과 연락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게 항만청 직원의 주장이었는데, 포워딩업계는 ‘당연한 것’을 왜 기준으로 삼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첫 면허업체 26개사중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업체는 제일항역, 협운기업, 고려컨테이너터미널, 남성해운, 삼영익스프레스, 세방, 일양, 천우통운등 11개 기업이다.
이후 섬유등 수출입 물량이 많아지면서 주선업체가 계속 늘어 80년대초엔 50여개업체까지 이른 것으로 기억된다.
초창기 해상운송 주력 운송품목은 섬유였다. 가죽자켓이나 신발, 옷 등이 미주나 유럽쪽으로 많이 나갔다. 가령 OEM(주문자생산)으로 한국에서 생산해 이탈리아로 수출하는 방식이었다.
80년대 중반엔 씨엔에어(Sea&Air) 서비스에도 눈을 돌려 부산-북미루트나 부산-블라디보스토크, 부산-자카르타 루트를 개발해 유럽 운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선 복운업계가 대외개방의 파고에 휩쓸리면서 생존전략으로 해외진출에 눈을 돌렸다. 제일항역도 92년에 베트남 하이퐁에 진출해 화물유치에 힘쓰기도 했다. 당시 베트남에 처음 갔을 때 그 곳은 포워딩이란 개념이 아예 없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거기서 항공운송장(AWB)이 무엇인지, 하우스B/L이나 마스터B/L이 무엇인지, FIATA(국제복합운송협회연합)·IATA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면서 베트남 업무를 진행했었다. 때문에 베트남으로 출장을 가면 현지에선 나를 ‘티처 리’라고 불렀었다.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도 하우스B/L을 몰랐다. 소련 해체 후 독립국가연합(CIS)이 새로운 운송루트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진출을 모색하기 위해 95년에 우즈벡에 들어갔더니 하우스B/L을 인정 안해서 진땀을 뺀 적이 있다. 우즈벡은 자체 항구가 없기 때문에 이란 반다르압바스 항을 자신들의 게이트항으로 하기 위해 이란간 철도를 건설했었다.
90년대 이후로 포워더들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생산공장이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으로 넘어가더니 다시 중국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또 이탈리아 의류 브랜드의 OEM 생산도 동유럽으로 넘어가 이들 국가에서 생산해서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형편이다.
때문에 지금은 한국만 보지 말고 필요한 오지를 찾아 진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제일항역도 90년대 중반 고려합섬이 하바로프스크로 공장을 옮겼을 때 같이 들어가기도 했다. 이후에 베트남으로 이전했을 때도 함께 했다.
포워딩을 오래하면서 기억에 남는건 업체수가 많아졌다는 거다. 하지만 초창기 회사로서 지금 영업하는 곳은 몇개 안된다. 지금은 포워더 개념을 넘어서 로지스틱스 개념인데 이같은 시대의 변화를 읽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함에도 이를 잘 못했기 때문이다. 제일항역은 앞으로도 고유브랜드로 계속 나아가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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