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7 18:19
동남아해운의 전신인 동서해운시절인 82년 2월에 입사한 남극영부장은 처음엔 인천항에서 화물감독직으로 근무했다. 더불어 서울의 영업력이 미치지 못하는 인천 남동공단을 중심으로 소규모하주들을 상대로 영업활동도 겸했다.
“화물감독 재직시 배가 만선해서 나가면 그리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물론 그 화물들 중 제가 영업한 것은 미미하지만 만선으로 출항하는 배를 보는 것은 그 자체로 벅찬 감동을 동반하죠.”
인천항 화물감독으로 있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90년에 있었던 시멘트 파동이라고.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신도시개발을 목적으로 중국과 동남아일대에서 과도한 양의 시멘트를 들여온 일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다른 화물선들은 입출항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 동남아해운은 지난 84년 해운산업합리화 과정에서 5개 국적선사가 통폐합되면서 새로이 설립됐다. 하지만 67년에 설립한 동서해운이 전신임을 감안한다면 올해로 35주년을 맞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3년 전 조직개편을 하면서 인천지역에 영업팀이 생겨, 그 팀을 맡아서 영업활동을 하다 작년 2월에 이쪽 본사로 옮기게 됐어요. 본사 영업은 사람도 많고, 업체도 많아서 솔직히 부담이 많이 됩니다.”
남부장의 지론은 영업사원은 회사의 대표성을 띄기 때문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하주를 만나야 한다는 것. 따라서 실제 자신의 고객임을 언제나 숙지하고 사랑ㆍ신뢰로서 접근한다면 하주들의 닫혔던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린다고 남부장은 강조한다. 부장이란 직분이라 관리능력도 또한 요구되는데 남부장이 생각하는 부장으로서의 역할은 임원과 사원을 연결하는 것. 이때 임원에겐 사원편에서, 사원들한테는 회사편에 서서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팀원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반대 입장을 취해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중간관리자가 잘 컨트롤해야 사원들과 회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거죠.” 동남아해운이 서비스하는 지역은 한일항로서부터 서남아시아를 아우르는데 여기서 남부장은 한중항로에서 서남아시아쪽을 총괄하고 있다.
“애로사항이라면 운임사정을 들 수 있습니다. 현재 동남아항로운임이 바닥권입니다. 취항선사들이 저마다 채산성유지도 어렵다는 하소연을 많이 해요. 하주분들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고 서로 상생하려면 어느 정도의 적정운임까지는 이해를 해주셨음 좋겠어요.” 올해 방통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다시 중문과 3학년으로 편입한 남부장은 배우는 데는 연령제한이 없다고 강조한다. 무슨 일이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남부장의 생각이다.
“영업도 마찬가지에요. 근성을 가지고 장기간을 보고 영업해야 합니다. 한두달해서 실적 안난다고 포기하거나 또 운임을 깎아서 물량유치를 생각한다면 절대 발전이 없어요. 오랜 기간을 가지고 신뢰를 쌓아나간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장담합니다.”
아들이 해병대에 입대해 아들과 해병대 선후배가 됐다는 남부장. 꼬리곰탕이나 설렁탕을 잘 끓여 어쩔 땐 가족 식사를 손수 준비하기도 한다는 그의 여유로움 속에서 바닷사람의 넉넉한 미소를 엿볼 수 있었다.
글·이경희기자(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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