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30 11:42

목포~상하이간 국제 여객선 힘찬 첫 ‘고동’

지난 11월 20일, 기자는 어슴푸레 날이 밝아올 무렵 3박4일간의 여정을 위한 묵직한 여행가방을 끌며 동교동 부근에 정차해 있는 고속버스로 향했다. 버스 안에는 여행을 위해 새벽 찬바람도 마다하지 않은 각종 해운ㆍ물류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저마다 달뜬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주)골드웨이 초청으로 기자와 함께 목포항으로 떠나는 일행들. 이날 오후 목포국제여객터미널에서는 (주)상하이크루즈의 목포~상하이간 역사적인 정기 직항로 개설이 예정돼 있었다.
(주)상하이크루즈는 이번 항로개설을 추진한 합작법인으로 골드웨이, 동남해운 등 국내 3개회사와 중국 측 2개사의 자본금으로 설립됐다. 버스는 서울을 떠나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며 별다른 체증 없이 가볍게 목포에 닿았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이번 항로개설에 중요한 추진배경이 됐다. 상하이크루즈측은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이 중부지방과 서해안지방의 對중국 수출ㆍ입 물동량 유치에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전주, 지리산 등 한국의 대표적 관광지에 중국인 관광객들을 모을 수 있으리란 예상을 항로개설의 전략적 동기로 삼았다.
20일 오후 2시, 서울에서 출발한 일행은 떠들썩한 축제가 벌어지는 목포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취항을 축하하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들, 색색깔의 애드벌룬, 목포시는 오후1시부터 각계인사를 모시고 목포시민들의 열렬한 성원 속에 이번 취항을 자축하고 있었다. 이러한 풍경 속에 묵묵히 기품있는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RUS(러스)'호, 갑판 곳곳에는 행사가 자못 재미있는 듯 무리지어 구경하는 러시아 선원들이 눈에 띄었다. 'RUS'는 러시아국적의 배로 상하이크루즈가 3년계약으로 빌린 용선.
이어서 골드웨이, 동남해운 등 상하이크루즈측 국내대표와 유정석 해양수산부 차관, 김홍일의원, 임인철 전남도 정무부지사, 전태홍 목포시장 등은 500여명의 목포시민들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드디어 테이프를 끊었다.

RUS호, 긴 여정 길에 오르다

오후 6시, 축제의 분위기는 사그라들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질 무렵 일행은 세관을 마치고 러스호에 승선, 뚜우-하는 힘찬 고동소리와 함께 상하이항으로의 처녀 출항길에 올랐다.
러스호의 내부 인테리어는 러시아국적 배인 만큼 다소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또 음악살롱, 레스토랑, 사우나, 풀장, 면세점, 나이트, 카지노 등 장시간 여행의 무료함을 달랠만한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오후 6시 30분, 객실에 여장을 푼 후 저녁식사를 알리는 선내 스피커의 안내방송이 있어 승객들은 모두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은 넓고 쾌적했다. 밀려오는 승객들에도 불구하고 여유자리가 충분해 모두 편안하게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약간의 뱃멀미를 예상한 터라 만반(?)의 준비를 한 나는, 그러나 다행히 커다란 요동 없이 유유히 흘러가는 러스호에 몸을 맡긴 채 끝없는 밤바다를 만끽했다. 다른 승객들은 간단한 술로 여흥을 돋우며 또는 선내 위락시설을 이용하며 러스호에서의 첫 날 밤을 보냈다.
21일 아침, 러스호 승객들은 졸지에 한 시간 젊어졌다. 러스호가 밤사이 중국영해로 들어선 까닭에 시간을 한 시간 늦추라는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전해진 것이다.
문득 아침 바다풍경이 궁금해진 나는 갑판으로 나갔다. 밤새 쉬지 않고 달려온 러스호는 과연, 중국영해 한가운데에 있었다. "목포항의 바닷물도 이랬던가?" 러스호는 사방의 황토빛 물결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황토빛 바닷물의 진풍경을 보다가 나는 문득 상해항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중국시간으로 21일 오후 4시, 약 23시간의 항해 끝에 러스호는 드디어 상하이항에 들어서고 있었다. 갑판위에 승객들은 저마다 상해항의 풍경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느라 여기저기서 플래쉬 터뜨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뿌옇게 흐린 상해의 하늘아래 러스호는 상하이항을 동서로 나누는 황포강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폭이 좁은 황포강을 사이에 두고 다양한 선사의 크고 작은 배들이 즐비했고 그 너머 보이는 상하이에는 이국적인 느낌의 빌딩들이 또한 즐비했다.

상하이엔 황포강이 있다

상하이항에 처녀 입국하는 러스호, 입국신고에 다소 시간이 걸려 우리는 상하이항에 들어서고도 한참 후인 21일 오후 5시경에야 상해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어 우리는 다음 날인 22일 오전부터 가이드와 함께 본격적으로 상하이 관광에 나섰다.
황포강의 동쪽에 위치한 ‘포동’은 매우 현대적이고 높은 빌딩들이 많다. 그 중 꼽는 것은 세계 세 번째, 아시아 제일의 높이를 자랑하는 ‘동방명주’. 뜻을 풀이하면 ‘동방의 밝은 구슬’이란다. TV수신탑으로 그 기하학적 모양과 특이한 색깔이 눈길을 끄는 동방명주는 상하이의 명물. 이토록 질서정연하고 깨끗한 포동시가 근 10년 안에 이뤄진 것이라는 가이드의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포동은 거대하게 느껴졌다.
또한 포동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황포강 서쪽의 ‘포서’는 포동과는 달리 비교적 좁은 도로에 건물도 오래된 것들이 많다. 특히 거리의 건물마다 속옷, 겉옷 할 것 없이 대나무나 막대에 널려 삐죽이 나온 빨래들은 포서의 진풍경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상해는 비가 자주오고 습도가 높아 눅눅하기 때문에 쨍하고 해가 나기라도 하면 바깥으로 빨래 말리는 일은 예사란다. 또 가이드는 이곳 포서도 몇 년 안에 포동처럼 구획 잡힌 현대적 도시로 변모할 것이라 했다.
동방명주와 마주하고있는 황포강 건너엔 ‘외탄’이라는 곳이 있다. 동쪽으로는 황포강에 면해 있고, 서쪽으로는 상해시 인민정부 청사를 비롯한 대형빌딩들이 늘어서 있는곳으로 상해의 정치,경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들 건축물은 서양의 복고주의 건축양식을 따른 것으로 그 숫자, 집중도, 다양성면에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것이다. 버스를 타고 외탄을 지날 때 나는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황포강가에는 황포공원이 있는데 1886년 영국이 조성한 공원으로 상하이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공원으로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22일 오후5시에 상하이항에서 출항하기로 돼있던 일정이 상해당국의 출항 불허로 다음날인 23일로 연기되었다. 상해당국에 의하면 황포강은 폭이 좁아 어둑해질 무렵인 오후 5시에 출항을 하게 되면 주위 배들과의 충돌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일정은 3박4일에서 졸지에 4박5일이 되었다. 사실 장장 하루가 걸려 도착했던 상해시를 겨우 몇 시간 보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터라 바뀐 일정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덕분에 우리에겐 조금 더 관광할 시간이 주어져 22일 저녁엔, 상해의 명동이랄 수 있는 ‘난징루’를 가게 됐다. 상하이항에서 10여분 걸어 택시를 타고 다시 10여분 들어가면 난징루에 도착. 탁 트인 대로 양옆으로 각종 쇼핑몰과 상점들이 즐비했고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과연 가이드의 말대로 상해는 야경이 끝내줬다. 낮에는 조금 밋밋해보였던 동방명주도 밤하늘에선 신비한 색을 발하고 있었고 주위의 풍경 또한 아름다웠다. 23일 오전11시, 예정대로 러스호는 상하이항을 떠났다.
뚜우-하는 우렁찬 고동을 울린 러스호는 예인선을 따라 뱃머리를 천천히 돌렸다. 21일 상해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 달리 상해의 하늘은 더욱 맑고 쾌청해보였다. 몇 일간 상해시에 정(?)이라도 든걸까. 나는 왠지 서운한 맘에 멀어지는 상해시의 이 모양 저 모양을 카메라에 또 가슴속에 차곡차곡 담느라 마음이 분주한 가운데 귀국길에 올랐다.
한편 목포~상하이라는 새로운 항로가 개설됨에 따라 기대를 걸고 이번 취항에 참여한 소상인(보따리상인)들도 저마다의 수확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상하이크루즈의 순항은 계속 된다

귀국길에 러스호에서는 상하이크루즈취항기념, (사)국제해양수산물류연구소의 주관하에 ‘서남권 물류 활성화를 위한 선상토론회’라는 주제의 선상 좌담회가 있었다. 국제해양수산물류연구소의 이종수 사무국장의 사회로 이뤄진 동 좌담회에선 각계 인사들이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향후 상하이크루즈를 통한 목포시 등 서남권의 발전방향에 대해 모색하는 시간이 되었다.
상하이크루즈, 러스호의 첫 출항, 첫 입국, 모든 것이 처음이라 조금씩 서투른 면이 없지 않았고 또 조금씩 개선해야할 여지가 보이기도 했지만 “처음이니까…”하는 생각에 그런 점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앞으로 목포~상하이간 크루즈는 두 번째, 세 번째 출항을 시도할 때마다 분명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아울러 목포시를 동북아 거점도시로 발돋움 시키리란 목포시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상하이크루즈의 순항은 계속될 것이라 기대해 보며 이런 뜻 깊은 여행에 초청해준 골드웨이측에 감사를 전한다.
글·박자원기자 (jwpark@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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