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6-14 14:22
월드컵 경기만큼 중심항만 경쟁 또한 치열하다.
지난 5월 우리나라의 현대상선이 회원사로 있는 New World Alliance는 유럽~중국서비스의 기항지를 로테르담항에서 앤트워프항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또 세계 최대 정기선사인 Maersk-Sealand사에 이어 세계 3위의 에버그린사도 금년 8월까지 싱가포르항에서 말레이시아의 탄중펠레파스항으로 기항지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로테르담항과 싱가포르항은 각각 연간 10만TEU와 350만TEU에 달하는 막대한 컨테이너물량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싱가포르항은 싱가포르항만공사9PSA)에 대한 선사들의 지분참여허용, 선박입항료 감면조치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계획까지 발표했으나 막상 선사들을 비롯한 관계 당사자들은 이러한 유인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실 이들 두 항만은 그동안 주요 간선항로에 위치한 천혜의 입지조건, 세계 최고수준의 항만인프라, 효율적인 피더 네트워크 등에 힘입어 각각 유럽과 동남아시아의 중심항만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누려왔다.
최근까지도 이들 두 항만은 선진 항만건설 및 운영지식을 배우기 위한 벤치마킹 대상으로서 항만관계자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그렇다면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항만들인 로테르담항과 싱가포르항이 이같은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철환 책임연구원은 한마디로 이들 두 항만이 기존의 경쟁우위에 만족한 채 변화하는 고객들의 요구를 정확히 인식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데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해운기업들은 2년 전부터 지속돼 온 해운시황 침체로 적정 이윤확보가 어렵게 되자 비용절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따라 자신들이 기항하는 항만에 대해 보다 저렴한 항만이용료를 부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항만은 지금까지 인근 경쟁항만들보다 훨씬 높은 항만이용료를 고집해 왔으며 이것이 결국 세계 최고의 항만이라는 명성에 치명상을 입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반면 로테르담항의 경쟁항만인 앤트워프는 내륙쪽에 위치한 지리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가장 저렴한 하역료를 무기로 선사유치에 성공하고 있으며 함부르크항은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과 동유럽이라는 새로운 시장개척을 통해 로테르담항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속적인 물량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로테르담항과 달리 이들 두 항만은 지난 2년간 연평균 8~12%의 물량증가를 기록했다. 탄중 펠레파스항 역시 싱가포르항이 세계 최고의 항만생산성 제공이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동안 싱가포르의 절반에 불과한 저렴한 항만이용료와 전용터미널 제공을 통해 세계적 선사들을 연이어 유치, 개장한 지 불과 3년만에 세계 26위 항만으로 급부상했다.
이같은 세계 항만들간 치열한 경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선 아무리 뛰어난 입지여건과 시설을 갖춘 항만이라도 변화하는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경쟁항만의 매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항만마케팅 전략은 항만의 주요 고객인 선사들이 처한 해운시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즉 해운시황이 호조를 보일 때는 서비스 차별화가 중요한 마케팅전략이 되나 해운시황 침체기에는 무엇보다 저렴한 항만이용료가 강력한 무기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항만들도 현재와 같은 해운불황기에는 비용우위확보에 노력하되 향후 해운시황개선에 대비해 경쟁항만들과 차별화된 부가물류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이들 항만들의 중심항만에 대한 도전이 더욱 거세질 것인지 아니면 기존 중심항만들이 명예확보를 위해 어떠한 전략으로 대반격에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한철환 책임연구원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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