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06 14:42
(서울=연합뉴스) 이윤영기자 = 세계 시장에서 자동차, 철강 등에 이어 조선 업종에서도 기업간 인수.합병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는 현재 구축돼 있는 조선업계의 판도를 크게 바꾸기 위한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설비통합 및 협업체제 구축으로 원가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여 조선소 스스로의 경쟁력을 보다 높인다는 차원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미국 테러사태 이후 위축된 조선시장 경기가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장재편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 `1위' 굳히는 한국 =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이 세계 1-3위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난해 사상 최대물량(로이드 통계기준)을 건조, 전 세계 선박 건조량의 37%를 차지하는 위력을 보여줬다. 특히 단일 조선소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현대중공업의 경우 99년 말부터 위탁 경영해 오던 국내 4위권(세계 5위권) 규모의 삼호중공업을 최근 인수키로 결정, `중공업 그룹'으로서의 몸집을 더욱 불렸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이미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현대미포조선까지 포함, 연간 건조물량이 총 600만t에 달함으로써 세계 시장점유율도 현재 15%대에서 20%대 이상으로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인수를 통해 세계시장 1위 자리를 보다 확고히 하는 한편 삼호중공업의 대외 신뢰도를 높이고 선대운용도 보다 유연히 함으로써 양사 모두에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 재기 노리는 일본 = 일본에서는 7대 대형 중공업체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논의만 돼 오던 조선부문 통합 작업이 오는 10월부터 가시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2월 조선부문 통합에 합의한 히타치와 NKK는 양사가 각각 50%의 지분을 출자, 매출액 1천500억엔 규모의 조선부문 통합법인 `유니버설 조선'을 오는 10월1일 발족시킨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IHI는 조선부문을 분리, 스미토모 중공업과 함정 전문회사인 `마린 유나이티드(MU, Marine United)'를 오는 10월 설립할 예정이며 스미토모는 함정부문을 MU에 양도한 후 나머지 상선부문도 내년 4월까지 분사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당초 IHI와 조선부문을 통합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가와사키 중공업도 오는 10월 조선 부문을 분리, 100% 자회사인 `가와사키 조선'을 신설할 예정이다. 이렇듯 조선소들간 활발한 통합 움직임은 세계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뺏긴 일본 업체들이 각각의 특화된 설비를 서로 통합, 시장 대응력을 키우고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즉, 조선소마다 주력선종 위주로 생산 능력이 특화돼 있는 일본 업체들의 경우 `대량생산' 방식이 각광을 받았던 과거에는 괜찮았으나 선박의 종류나 선주들의 요구가 다양해진 최근의 시장환경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
한국조선공업협회 유병세 부장은 "일본 업체들의 경쟁력 회복 노력에는 세계 시장에서 더 이상 한국에 밀릴 수 없다는 위기감도 상당부분 작용했다"며 "지난해 일본이 우리나라를 제치고 수주량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일본 역시 우리에게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마지막 자존심 지키는 유럽 = 우리나라와 일본 조선소간 인수. 합병이 주로 자국 내에서 이뤄지는 것과 달리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국경을 초월한 제휴, 협업 움직임이 활발하다.
조선공업협회의 시장동향 자료에 따르면 최근 노르웨이의 Kvaerner그룹과 독일 Aker RGI가 조선부문을 합병키로 합의, 유럽 최대이자 세계 4위 규모의 조선소가 탄생할 전망이다. 특히 EU국가들은 한국 조선업체들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다며 반덤핑 제소입장을 그 동안 끊임없이 제기해 온 바 있어 이른바 `범 유럽 조선소' 구축을 통한 제재 움직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또 이같은 움직임은 조선산업의 `종주'격인 유럽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세계시장의 70% 이상을 내준 상황에서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크루즈 선박 건조에 대한 한국업체들의 진입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y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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