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6-18 17:29

평택항 시대, 그 전망과 과제(1)

-평택항 개발과 국가경쟁력-
설 봉 식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평택항 시대, 그 국제무역항의 꿈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지난 1986년 12월 LNG선의 처녀 입항을 계기로 항만개발이 시작된 후 어언 15년이 지난 오늘날 이 땅에 저 아름다운 항구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항구도시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금문교로 잘 알려진 항구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만에 그 입지를 정하고 있는 세계적인 미항(美港)이다. 샌프란시스코는 태평양을 건너 온 많은 선적 화물을 하역하여 미국 대륙으로 수송하고 나아가서 뉴요크 등지를 거쳐 대서양으로 가는 랜드 브리지의 시발점이기도 한 곳이다. 1749년에 금광이 개발되면서 급성장된 샌프란시스코는 번영된 미국의 오늘을 만든 큰 항구도시인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오클랜드로 이어지는 베이 브리지도 그렇고 그 만을 둘러싸고 개발된 크고 작은 도시들을 생각해 볼 때 서해대교와 아산만 주위에 있는 평택, 당진, 아산 등과 같은 미래의 도시가 있는 평택항은 분명 한국의 샌프란시스코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동북아 물류의 새로운 기지로

다 아는 바와 같이 삼면이 바다인 우리 경제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계속 늘어나기만 했던 많은 수출입 물동량을 바다 길을 통해 보내고 또 받아 왔다. 물론 대륙으로 가는 북한 쪽의 길이 막혀 있는데도 그 이유가 있지만 총 수출입 물동량 중 99.7%나 되는 많은 국제화물을 항만을 통해 처리해야만 했다. 문제는 우리 경제가 그 많은 물동량을 부산과 인천, 그리고 광양 등 몇 개의 항구에 의존하고 있는데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항만 물동량이 매년 12% 이상 증가하고 있으며, 그 동안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동남아지역과의 무역거래에 크게 의존해 왔던 우리 경제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EU 및 동부유럽 등지와의 무역거래가 보다 더 확대되면서부터 동북아 지역과의 물류 규모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IMF 경제위기 이전 미처 수출입 물류를 처리하지 못해 한달 이상의 체선 및 체화 현상으로 인해서 국가경쟁력이 떨어져 심각한 항만 SOC의 애로를 겪었던 그 때를 잘 기억하고 있다. 안산 공업단지에서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부산항에 정박한 선박에 수출화물을 선적하기까지 드는 물류비가 부산항에서 미국 LA까지의 수송비에 버금갈 정도로 그 물류비 부담이 컸던 것이다. 인천항에 화물을 하역하지 못하고 대기했던 크고 작은 화물선들이 한 때는 인천 앞 바다에서부터 아산만 부근에까지 정박해 있을 정도로 항만시설이 부족했다.
어느 외국인 학자의 우려는 귀담아들을 만 하다. 우리 경제가 이미 선진국 그룹인 OECD에 가입하기는 했으나 앞으로 SOC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으면 선진국 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이나 경부고속전철의 건설도 시급하다. 그렇지만 항만 적체로 인한 국가경쟁력 저하를 더 이상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다. 1998년 이후 IMF경제위기의 악영향으로 항만 물류의 수요가 일시적으로 감소하긴 했으나 경제회복과 더불어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견되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평택항 개발과 국제무역항으로의 성장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제 평택항은 동북아 물류의 새로운 기지이며, 우리 경제의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튼튼한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느린 항만개발 속도

일직이 외국인들은 한국인을 '빨리 빨리 !' 라는 이미지로 이해해왔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한국인의 이미지가 달라진 감이 없지 않다. 특히 느린 이미지의 중국인들은 초고속의 경제성장과 달러벌이 붐 속에서 그들 이미지가 달라져 오히려 한국인들이 왜 그토록 느리냐고 질타한다고 한다. 옳은 말인 듯 싶다.
얼마 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상하이를 방문하여 하늘도 땅도 놀랄 만큼 변했다고 했다. 급격한 변화는 상하이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개방과 공업화 및 경제성장의 대장정 속에서 북쪽으로는 다롄에서부터 남쪽으로는 광저우에 이르는 마치 활과 같은 중국 연안의 크고 작은 항구들이 경쟁적으로 항만시설의 확충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황해를 거쳐 화살을 쏘듯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또는 EU와의 경쟁에서 그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인들의 스피드에 비해 평택항 개발의 속도는 너무나 느리다. 평택항은 1997년 12월에 그 개발의 1단계 사업으로 3만톤 급 4선석을 완공했으나 금년 말까지 이루어져야 할 2단계 사업이 계획된 14선석 중 2선석만 개발되고 있을 뿐, 4단계 항만개발 계획에 따라 접안 시설 62선석을 개발하는 데는 앞으로도 10여년의 세월이 흘러야 가능할 정도로 갈 길이 멀다. 당초 평택항을 동북아무역의 거점 항만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으로 초기 투자는 정부가 주도하고 점차 민간참여를 유도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IMF경제위기 속에서 민자부두의 사업연기와 공단전용 부두의 건설 지연 등 그 항만개발의 속도가 매우 느린 것이 사실이다.

정부투자를 늘려야

정부의 SOC투자는 주로 도로와 철도에 집중되고 항만에 대한 투자의 비중이 10%에도 못 미칠 정도로 미미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한다. 삼면이 바다이고 수출입 물동량의 대부분을 항만을 통해 처리해야 하며, 그 항만물류에 대한 수요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항만에 대한 정부투자는 더욱 늘려야 하지 않겠는가 ! 평택항 개발도 단순한 지역개발 차원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소득 및 투자 그리고 고용유발 효과가 매우 큰 항만개발을 위한 최우선의 재정투자를 배려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SOC투자는 먼 훗날에나 그 정책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어쩌면 인기 없는 정책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민심이나 역사의 평가가 얼마나 준엄한 것인가를 인식하고 비록 현재에는 인기가 없으며, 눈에 띠지는 않으나 미래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항만개발을 위한 예산의 확대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골드 러시의 평택항 시대, 아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이 땅에 새로운 꿈의 도시, 평택항으로 급성장되리라는 예견을 할 때 더욱 그러하다.
흔히 우리는 작고 값싼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정부의 예산낭비나 지나친 규제는 안 된다. 다만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국민들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크고 값비싼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평택항 개발이 최우선의 정책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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