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2일 밤, 부산신항 3부두에서 2758TEU급 컨테이너선 <팬스타아크로>호가 북극항로를 향해 닻을 올렸다. 85개 화주사의 화학제품·중고차·자동차부품 등 939TEU를 싣고 베링해협을 거쳐 영국 펠릭스토, 네덜란드 로테르담, 폴란드 그단스크를 기항한 뒤 10월 초 부산으로 돌아오는 약 45일간의 항해다. 우리 선박의 북극항로 운항은 컨테이너선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약 1만3000㎞로 수에즈운하 항로보다 약 7000㎞가 짧다는 점에서, 홍해 등 일반적 항로의 정세 불안 국면의 대체 항로로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주목할 것은 위 항해가 개별 선사의 모험적 시도로만 남지 않도록, 그 뒤를 법령이 뒤따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해양수산부는 2026년 6월16일 공포돼 2026년 12월17일 시행을 앞둔 「북극항로 활용 촉진 및 연관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의 시행령 제정안을 마련해 2026년 8월10일부터 9월21일까지 입법 예고 중이다. 종전 국무총리 훈령에 근거해 운영되던 북극항로추진본부의 설치 근거가 법률로 상향되고, 그 구성과 지휘·감독 관계가 시행령에 규정된 것도 이번 제정안의 특징이다. 북극에서의 경제활동 진흥에 관한 국가의 시책 수립 의무는 이미 법률에 명문화돼 있었으나(극지활동 진흥법 제10조), 이제 그 집행 경로가 구체화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연관산업’의 범위 확대다. 제정안은 법 제2조 제3호 하목의 위임에 따라 법률이 열거한 13개 산업군에 준하는 산업으로 선박관리산업, 건설산업, 엔지니어링산업, 원자력 관련 산업을 추가했다(안 제2조). 극지운항 선박의 기술적·상업적 관리, 항만배후단지 조성, 극지 대응 설계·감리, 극지항해용 선박의 추진체계 및 북극권 에너지 개발과의 연계성이 그 근거다. 이에 따라 재정·금융 지원 시책의 적용 범위가 종래 해운·항만·물류 중심에서 상당히 넓어지므로, 선박관리업체, 항만·배후단지 시공사, 극지 대응 설계·감리 기업 등은 자사 사업이 ‘북극항로 사업자’에 해당하는지를 미리 검토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계획과 조사의 틀도 촘촘해졌다. 기본 계획에는 북극항로 정보플랫폼 구축·운영, 연관 산업 통계의 작성·관리, 법령 및 제도개선에 관한 사항이 추가됐고(안 제3조), 연도별 실행 계획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해 매년 3월 31일까지 확정한 후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도 통보된다(안 제4조). 실태조사의 범위는 시장동향 및 사업체 현황, 법령·제도 현황, 항만·물류 및 안전운항 기반 시설, 운항·물류 실적 및 운송 수요, 연구개발 추진 현황, 전문인력 현황 등 여러 영역으로 구체화됐다(안 제5조). 추진체계 측면에서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북극항로위원회와 해양수산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실무위원회가 가동되며, 실무위원회에는 재정경제부 등 여러 부처가 참여한다.
기업 지원의 창구가 될 북극항로종합지원센터는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지정할 수 있도록 명시하되, 전담 조직·전문인력 요건을 갖춘 공공기관·정부 출연연구기관도 지정 대상에 포함했고, 지정 및 지정 취소 사실은 고시하도록 했다(안 제12조). 연구개발(법 제12조), 전문인력 양성(법 제13조), 국제협력사업(법 제15조)은 공공기관 등에 위탁할 수 있고, 수탁기관과 위탁 업무의 내용 역시 고시된다(안 제13조).
시사점은 분명하다. 이 시행령의 실질적 기능은 의무 부과가 아니라 계획·조직·전문기관을 통한 ‘지원’의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데 있으므로,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 대응이 아니라 지원 수혜와 사업 참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 시행령 제정안에 따르면 실제 지원 내용은 기본 계획과 연도별 실행 계획을 통해 비로소 구체화되는바, 재정·금융 지원을 기대하는 기업은 실행 계획의 3월31일 확정 시한을 고려해 전년도 하반기부터 사업 계획과 소요를 구체화해 관계 기관과 협의할 필요가 있겠다. 나아가 확정된 실행 계획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도 통보되는 구조를 고려하면, 부산·울산·광양·인천 등 항만 소재 지방자치단체의 전략 수립 단계에서부터 기업의 투자 계획을 연계하는 접근이 상당히 유효할 것으로 판단된다.
<팬스타아크로>호의 45일은 결국 데이터로 남는다. 그 데이터가 기본 계획과 실행 계획으로 돌아오고 다시 정부 등 재정·금융 지원으로 이어질 때, 북극항로는 한 척의 도전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제도의 논의에 앞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이 순간 극지의 해빙 사이를 헤쳐 나가고 있는 선원들이다. 상선 항해사로 대양을 항해했던 경험을 가진 필자는 <팬스타아크로>호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 등 모든 선원의 무사한 항해와 안전한 귀항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들이 남기는 항적(航跡)이 곧 우리 해운의 다음 항로를 여는 자산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