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태평양(EAP) 지역의 늘어나는 물동량에 대응하려면 이 지역 항만에 2040년까지 약 1800억달러(약 250조5000억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120억달러(16조7000억원)에 이른다. 기존 항만 시설 확충뿐 아니라 자동화·디지털화 등 운영체계 개선까지 투자 범위가 넓어지면서 항만 경쟁력의 기준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은행은 최근 발간한 ‘항만, 선박, 연료: 동아시아·태평양 해운의 효율성·안전성·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컨테이너 교역량이 앞으로 10년간 연평균 3.5~4%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역내 컨테이너항만은 2040년까지 약 3억TEU의 처리능력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
해사물류통계 ‘동아시아·태평양 항만 투자수요(2025~2040년)’ 참고)
컨테이너 처리능력 확충에 필요한 투자액은 약 900억달러(125조3000억원)로, 연평균 60억달러(8조3500억원) 수준이다. 건화물과 액체화물 처리시설까지 더하면 전체 항만 투자액은 연간 120억달러로 늘어난다. 전체 투자수요의 약 65%는 중국, 25%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 5개국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밖에 해운 탈탄소화에 대응한 대체연료 공급망에 관한 투자도 요구됐다. 세계은행은 2040년까지 3가지 투자 방식을 제시했다. 역내 전반에 대체연료 저장·벙커링·안전시스템을 구축하는 경우 약 12억달러(1조6700억원), 일부 국내 항만에 선별적으로 투자하면서 지역 거점항 활용을 확대하는 경우 약 5억달러(6900억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주요 거점항을 중심으로 기본적인 안전시설만 구축하는 경우에는 약 5000만달러(700억원)가 들 것으로 봤다.
세계은행은 단순한 항만 시설 증설을 넘어서 혼잡 완화, 대형선박 수용, 자동화·디지털 시스템 확대 등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주요 컨테이너항은 스마트 선석 예약 시스템과 통합 통관절차, 자동화 하역장비 등을 활용해 항만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싱가포르 PSA 투아스항은 지휘센터 자동화와 예측 기반 자원배분을 통해 야드와 선석 운영을 최적화하고 선박 대기시간과 운영 차질을 줄인 사례로, 말레이시아 포트클랑항은 인공지능 기반 교통관리와 자동게이트 시스템을 도입해 트럭 회전시간을 18% 단축한 사례로 제시됐다.
보고서는 아태지역에 세계 컨테이너 물류를 주도하는 대형 항만이 밀집해 있는 점을 짚었다. 지난해 기준 상하이항은 5506만TEU, 싱가포르항은 4466만TEU의 화물을 처리했다. 이들 항만을 포함한 아태지역 주요 항만은 세계 컨테이너 교역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 (
해사물류통계 ‘상위 25개 컨테이너항(2024년 기준)’ 참고)
아울러 세계은행은 2023년 집계한 컨테이너항만성과지수(CPPI) 상위 20개 항만 가운데 13곳이 이 지역 항만이었다고 강조했다. 역내 주요 컨테이너항이 접안시간, 컨테이너 처리속도, 선박 회전시간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이 같은 항만 경쟁력은 동북아 지역에 대형 항만과 촘촘한 항로망이 집중된 구조와도 맞물린다. 세계은행은 중국 일본 한국 등에 처리능력이 높은 항만이 밀집해 있으며, 주요 항만 상당수의 연간 선박 통항량이 총톤수(GT) 기준 6억~10억t에 이르고 일부는 12억t을 넘어선다고 분석했다. 연간 기항 횟수도 1만6000~3만2000회에 달해 단거리·피더·연안항로가 촘촘하게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부산항은 동북아 항만 축을 구성하는 주요 국제 허브항만으로 다뤄졌다. 세계은행은 부산항을 싱가포르항, 상하이항과 더불어 첨단 기술과 높은 생산성, 글로벌 연결성을 갖춘 항만으로 평가했다. 효율성, 안전, 디지털 통합 측면에서도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거나 이를 웃도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부산항은 상하이·싱가포르·홍콩뿐 아니라 로테르담·앤트워프·로스앤젤레스와 함께 컨테이너 처리 생산성 비교 대상에도 포함됐다.
한편, 세계은행은 컨테이너항의 경쟁력이 시설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근 선사들은 비용, 속도, 서비스 신뢰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물류 생태계가 잘 구축된 항만에 서비스를 집중한다는 분석이다. 이들 항만에는 물류센터와 자유무역지역, 부가가치 물류서비스도 함께 발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처럼 운영 효율성과 배후 물류기능을 아우르는 물류 생태계가 앞으로 항만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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