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본사를 둔 국적 선사인 팬스타라인닷컴이 국내 최초로 컨테이너선을 이용해 북극항로를 횡단하는 상업 운항을 벌인다. 팬스타그룹은 북극항로 시범 운항에 투입된 2700TEU급 컨테이너선 <팬스타아크로>(PANSTAR ACRO)호가 지난 8월22일 저녁 9시25분께 부산신항을 출항했다고 밝혔다.
<팬스타아크로>호는 앞으로 북극항로를 거쳐 영국 펠릭스토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폴란드 그단스크를 차례로 기항한 뒤 다시 부산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8월30일부터 9월7일까지 베링해 축치해 동시베리아해 랍테프해 카라해 바렌츠해 노르웨이해 등의 북극항로를 통과한 뒤 9월9일 펠릭스토항, 11일 로테르담, 15일 그단스크를 잇달아 기항하는 일정이다. 유럽 순회를 마친 이 선박은 9월19일부터 27일 사이에 북극해를 다시 통과해 출발한 지 45일째 되는 10월5일에 부산항에 입항한다.
10년만의 북극항로 시범운항
이 선박은 시범운항에서 총 939TEU의 컨테이너를 선적했다. 실제 상품이 담긴 컨테이너 737개와 빈 컨테이너 202개다. 팬스타는 45개 물류기업(포워더)에서 85개 화주의 수출화물을 모집했다고 전했다. 품목별로, 화학제품이 43%인 363TEU, 중고차가 17%인 141TEU, 자동차부품이 13%인 113TEU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금속제품 제지 등의 화물인 걸로 알려졌다.
도착지별로 분류하면 네덜란드 로테르담행 화물이 419TEU로 가장 많고, 폴란드 그단스크행 화물이 399TEU로 뒤를 이었다. 영국 펠릭스토로 가는 화물은 19TEU에 그쳤다. 팬스타는 돌아오는 배편에선 화주 소유의 빈 컨테이너(SOC) 1300개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선사 측은 화물을 운송하면서 북극항로의 기술·환경·상업적 활용 가능성을 비롯해 화주와 물류기업의 이용 수요를 파악할 계획이다.
국적선사가 북극항로에 배를 띄우는 건 2016년 이후 10년 만이다. 특히 컨테이너선이 상업 목적으로 북극항로에 도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국내 선사가 북극항로를 운항한 건 총 5차례다.
지난 2013년 현대글로비스가 스웨덴 스테나해운의 내빙선을 빌려 러시아 노바텍의 나프타 4만4000t을 우스트루가에서 광양항으로 운송했고 2015년 들어 CJ대한통운이 자사 중량물운반선을 투입해 아랍에미리트 무사파항에서 러시아 야말반도 노비항으로 4000t의 극지용 해상 하역설비를 실어 날랐다. 2016년엔 SLK국보가 용선한 내빙선을 이용해 울산항에서 선적한 석유화학 플랜트 설비를 북극해를 거쳐 카자흐스탄 파블로다르로 보냈고 팬오션이 자사 중량물 운반선으로 LNG 플랜트 설비를 인도네시아와 중국에서 러시아 야말 반도 샤베타항으로 수송했다.
<팬스타아크로>호의 취항으로 정부는 국정과제로 수립한 북극항로 개척 정책을 실제 해운 현장에서 실현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월 출범한 북극항로 활성화 민관협의회와 함께 3분기 출항을 목표로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준비해 왔다. 이에 맞춰 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한국해운협회는 지난 5월 공모를 통해 팬스타라인닷컴을 시범운항 선사로 선정했다.
이수호 해양수산부 북극항로추진본부장은 “이번 시범운항은 실제 선박과 화물을 통해 북동항로의 활용가능성을 검증하는 첫걸음인 만큼 안전과 국제 규범 준수를 최우선으로 마지막까지 세심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북극해 해빙 면적이 역사적으로 적은 수준이란 점은 시범운항 사업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미국국립빙설정보센터(NSIDC) 분석에 따르면 8월15일 현재 북극해 해빙 면적은 562만㎢로 조사됐다. 평년의 730만㎢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자, 1979년 위성관측 시작 이래 역대 9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팬스타아크로>호 서명원 선장은 “해빙 수준이 낮아 염려스럽지만 지난해 데이터를 검토한 결과 8월31일경엔 완전히 해빙이 돼서 길이 열릴 걸로 기대하고 있다”며 “해빙이 완전히 돼지 않았을 땐 항로를 우회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봉항로 대비 운항기간 절반 단축
북극항로는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는 핵심 대체항로로 꼽힌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부산항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을 잇는 북극항로의 운항거리는 약 1만3000km 정도다. 전체 노선을 운항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20일 정도다.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전통 노선에 비해 거리는 7000km, 운항 기간은 10일 정도 짧다. 요즘 중동사태로 선사들이 이용하고 있는 희망봉항로에 비해선 거리는 1만3400km, 운항 기간은 20일가량 줄일 수 있다. 팬스타는 이번 시범운항에서 운항거리 감소에 따른 연료비 절감 결과도 검증할 예정으로, 기존 항로에 비해 30% 수준의 연료비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중국 광저우원충조선에서 건조된 <팬스타아크로>호는 파나마에 국적을 두고 있고 한국선급(KR)에서 검사 증서를 취득했다. 선주배상책임보험(P&I 보험)은 영국 스탠더드에 가입해 있다. 팬스타는 이 선박에 탄 승무원 20명 가운데 선장 기관장 기관부 핵심 사관을 모두 내국인 해기사로 구성했다. 특히 극지 운항 경험이 있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현 항해사가 1등 항해사를 맡아 선장을 보좌한다.
선사 측은 아울러 전 항해사관에게 극지 기초교육을 실시하고 선장과 1항사에게 직무 교육을 추가로 하는 등 안전 운항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특히 이번 항해에는 팬스타엔터프라이즈 조선해양사업 부문 권재근 대표가 직접 승선해 저온 환경의 기관 운용, 선체 거동, 연료 소비 특성 등 극지 운항 기술 데이터를 확보할 예정이다. 권 대표는 한국선급(KR) 유럽지역본부장을 지낸 선박 엔지니어링 전문가로, 2016년부터 팬스타그룹의 조선해양사업부문을 지휘하고 있다.
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컨테이너선 시범 운항인 만큼 안전을 최우선으로 무사히 다녀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운항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나면 운항 경험과 확보한 데이터를 토대로 향후 아시아-유럽 북극항로 정기 서비스 구축의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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