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가 국내 도입하는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을 외국 선사에 맡기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국내 해운업계의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7월 연간 200만t 규모의 LNG 도입 계약을 카타르 판매자가 운송을 책임지는 DES(착선인도) 조건으로 체결해 LNG 수송권 해외 유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당시 해운협회는 가스공사에 공식 항의 서한을 보내 LNG 수입 운송에 국적선사 이용을 늘려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가스공사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전용선 방식으로 국적선사에게 수송권을 맡기는 FOB(본선인도) 조건을 줄이고 DES 방식의 거래를 늘리고 있다. 카타르 셸 토털 등 대부분의 LNG 판매자들이 자가 수송을 전제로 LNG 판매 단가를 할인해 주고 있어 DES방식이 가격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가스공사는 해운업계의 항의에 “신규 천연가스 도입 계약을 체결할 때 국내 일자리 창출, 국적선 발주 등의 부대 효과를 반영하고 있지만 가스요금 인하를 위해 경제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3위의 LNG 수입 대국이다. 영국 해운조사기관인 S&P글로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4640만t의 LNG를 수입해 8140만t의 중국, 7500만t의 일본 다음에 위치했다.
우리나라 전체 LNG 수입량의 82%를 가스공사가 담당한다. 수송 방식은 DES 조건이 우세하다. 현재 가스공사가 체결한 장기 LNG 수입 계약 중 DES 방식은 2040만t으로, 1940만t의 FOB보다 100만t가량 많다. 비율로 따지면 51 대 49 정도다.
가스공사는 1986년 인도네시아와 첫 LNG 장기 도입 계약을 맺은 이후 한동안 수송을 전적으로 외국선사에 맡겼다. 당시엔 국적선사들의 LNG 수송 경험이 전혀 없던 상태였다.
하지만 에너지 수송 안보 차원에서 국적선사를 육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대두됐고 1994년 현대상선(현 현대LNG해운·HMM)과 한진해운(현 에이치라인해운) 유공해운(현 SK해운)이 LNG 수송 시장에 진출했다. 첫 운송을 맡은 선박이 모스(MOS·갑판 위에 화물창이 탑재된 구조)형의 12만7000㎥급 LNG선 <현대유토피아>호였다.
이후 가스공사가 LNG 도입 계약을 대부분 FOB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국적선사 점유율도 크게 늘어났다. 2004년엔 LNG 장기 도입 물량 1700만t 중 82%인 1400만t을 국적선사가 책임졌다. 현재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시장 확대를 배경으로 벌크선 전문 해운사였던 대한해운과 팬오션까지 LNG 수송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가스공사는 2010년대 이후 비용 절감을 내세워 다시 외국적 선사에 수송을 맡기기 시작했고 국적선 비중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중국은 FOB 비중 확대
문제는 앞으로 외국 선박의 LNG 수송이 더 크게 늘어날 거란 점이다. 해운협회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2025년부터 DES 조건의 수송 물량을 2400만t까지 확대하고 FOB 물량은 1050만t으로 줄일 계획인 것으로 파악된다. DES 비중은 70%로 대폭 늘어나고 FOB 비중은 30%로 곤두박질 치는 셈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과 일본은 오히려 자국적선 이용을 늘리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일본은 30% 수준인 FOB 비중을 2025년까지 47%까지 확대하는 한편 화주와 선사 간 강력한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는 구상이다. 중국도 31%인 FOB 물량을 점차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 국가는 자국 해운을 보호하고 전략 물자 수송 주권을 강화하고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가스공사의 최근 행보와 극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에너지 안보를 고려해 LNG 해상운송 방식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LNG 안보 토론회에서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부연구위원은 “세계 각지에서 가스 수급과 관련한 중대한 위기가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려면 도입사가 선박을 직접 확보하고 관리하는 FOB 방식을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수입사가 자국 선박과 자국 선원으로 LNG 운송을 관리 통제하면 위기 대응력이 높아지고 전쟁 시에도 강제 동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향후 FOB 방식이 증가하면 국내 LNG선 선원 고용은 현재의 1200명에서 2300명으로 증가하지만 FOB가 감소하면 선원 고용은 100명대까지 곤두박질 칠 거”라고 말했다.
아울러 “1994년부터 2019년까지 LNG 도입 단가를 조사한 결과 FOB가 DES보다 t당 2.4달러 저렴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가격 경쟁력 차원에서 DES를 선택한다는 가스공사 주장이 사실과 다른 점을 꼬집었다.
“전용선 비용은 가스공사 부채서 제외 필요”
토론자로 나선 해운업계 관계자들도 가스공사에 FOB 계약을 늘려줄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김세현 해운협회 이사는 “가스공사는 LNG 안보 위기 대응 차원과 국제적 추세, 국내 조선소와의 상생을 고려해서 전용선 비중을 최소 7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전용선 신규 계약으로 발생하는 부채를 공기업 경영평가와 재무위험기관 선정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가스공사가 현재의 한국 선원 전체 고용 규모 이상을 신규 FOB 계약으로 유지한다는 약속을 전제로 한국인 선원을 우선 승선시키도록 한 가스공사의 ‘수송계약조건의 기본원칙’을 ‘사관’ 또는 ‘사관과 부원 약간명’ 식으로 수정해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스공사 LNG 수송에 참여하고 있는 에이치라인해운의 권기흥 선원노조 위원장은 “FOB 수송 컨소시엄을 구성해 신규 도입 물량에 공동으로 지분 투자함으로써 수송권 확보를 놓고 국적선사끼리 분쟁하는 걸 예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이와 함께 해양진흥공사는 친환경 LNG선 신조 지원을 확대해 가스공사와 선사의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안 하려고 하면 변명이 보이고 하고자 하면 방법이 보인다는 말처럼 하고자 하면 방법은 나올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가스공사 신국철 도입영업본부장은 “2026년에 사할린 150만t, 말레이시아 200만t, 인도네시아 70만t 등 420만t의 계약이 종료되는데 새로운 계약은 공급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 확보를 전제로 FOB 방식을 적극 검토하겠다”며 “2029년에 액화수소 수송 선박 3척을 처음으로 신조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과거 LNG선처럼 FOB로 가는 방식이 되리라 예측된다”고 말했다.
그는 LNG 도입을 FOB로 법제화하는 방향에 대해선 “FOB를 강제하면 선택지가 제한되기 때문에 공사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해양수산부 허만욱 과장은 최근 불거진 요소수 사태를 예로 들면서 LNG 공급망 구축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수부 가스공사 해운기업 등이 참여하는 전담조직(TF) 구성을 제안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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