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40도를 넘나드는 살인 더위는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8월 15일 기준 온열질환자 수는 4301명, 이 가운데 사망자는 48명으로 집계된다. 연평균 4.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남재철 기상청장은 얼마 전 언론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고, 21세기 후반에는 지금보다 4.7도 가량 기온이 높을 것으로 관측했다. 특히 다가오는 겨울에는 평균기온 회귀에 따라 만만치 않은 한파가 불어 닥칠 가능성도 점쳤다.
장기간 폭염에 이어 매서운 한파까지 예고되면서 옥외 근로자의 근무여건은 더욱 악화되는 실정이다. 배달앱 배달의민족이 집계한 7월 전체 주문수는 2000만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0만건(58%) 증가했다. 온라인쇼핑 주문량도 늘었다. G마켓과 옥션, G9를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가 폭염이 절정에 이르렀던 7월13일~8월12일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식품, 가전, 건강 등 주요 품목은 두 자리 수 증가세를 보였다. 폭염이 장기화되면서 온라인쇼핑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현상은 배달직의 업무증가로 연결된다. 4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와 더불어 에어컨 실외기와 아스팔트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도심은 ‘찜통’이 따로 없다. 숨이 턱턱 막히는 두터운 헬멧을 쓰고 배달을 나서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깝다. 맥도날드는 배달원에게 최저임금과 함께 배달 건당 수수료 약 400원 제공하고 있는데, 비나 눈이 오는 악천후에는 위험수당 명목으로 100원을 더 지급한다. 맥도날드 배달원들은 장기간 이어진 살인 더위에 폭염수당 100원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맥도날드 글로벌 고성장 마켓 조 엘린저 사장은 이달 한국을 방문해 모든 고객에게 ‘필 굿 모먼트(Feel Good Moment)’를 선사한 직원을 선정해 격려했다. 그는 고객을 최우선으로 노력하는 매장의 직원들 덕분에 맥도날드가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폭염을 뚫고 고객을 대면하는 배달원을 격려하는 문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폭염에 특수를 노리는 기업과 힘겨운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는 근로자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최악의 한파가 찾아오고, 또 다시 폭염이 반복되도 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건 현장 근로자의 몫이다. 그렇게 견디다 못해 하나 둘 직장을 떠나면 그 자리는 외국인 근로자가 채울 테고, 그렇게 기업은 마른 수건을 쥐어짜며 이윤을 창출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취업 비자를 받은 외국인 근로자(동포 비자 포함)는 101만8419명에 육박한다. 자국민의 실업난은 증가하는데, 외국인 근로자는 증가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해답의 일부는 사회지도층의 그릇된 노동인식에서 엿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 엄용수 의원은 최근 농림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법 적용을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농가소득이 하락하는데 최저임금이 인상돼 농가의 고충이 크기 때문이란다. 이런 식의 인기영합주의 임시방편 땜질 정책이 과연 한국경제와 농업발전에 도움이 될까?
정부는 지금이라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은 모두에게 이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면 이해당사자를 설득하고, 정책의 타당성을 납득시켜야 한다. 모두를 포용하려는 정부의 가치는 존중하지만 지금의 후진적인 노동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 자신은 물론, 후손들의 삶의 질은 더욱 퍽퍽할 수밖에 없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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