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기업들이 국제사회의 선박 황산화물(SOx) 배출규제 대응에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외항선박의 탈황장치 설치에 3조원을 넘는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다.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들어가는 만큼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환경규제 이후 국적 선박의 저유황유 수요는 1100만t을 웃돌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황산화물 배출 규제 대응책은 스크러버 설치와 저유황유 사용, LNG 연료 사용 등으로 나뉜다.
스크러버는 기존 연료인 저가의 고유황유를 계속 쓸 수 있는 건 장점이지만 설치에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고유황유와 저유황유의 가격 차이가 클수록 스크러버 설치가 유리한 이유다.
저유황유를 사용하는 방법은 연료유만 갈아타면 돼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통한다. 하지만 아직 정유사들이 생산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공급이 원활하지 않는 데다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LNG 연료 사용은 선박 기관을 아예 새롭게 바꿔야 해 선박을 신조하지 않는 이상 효과적인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 아직까지 LNG벙커링 시설을 갖춘 항만이 많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국내 해운사 자사선 600척 스크러버 설치 대상
한국선주협회가 국내 외항선사 자사선 1016척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처럼 저유황유 가격이 고유황유의 1.5배 수준일 경우 596척의 선박이 스크러버 설치에 적합한 것으로 파악됐다. 스크러버를 설치할 수 없는 1만t 이하의 소형선박 304척과 저유황유 사용이 유리한 18년 이상 노후선 116척을 제외한 숫자다. 선복량으로 따져 전체 6200만t(재화중량톤)의 78%인 4850만t이 스크러버 설치 대상이다. 현재 고유황유 가격은 t당 450달러로 저유황유(675달러)의 3분의 2 수준이다.
선종별로 보면 벌크선이 187척 2430만t으로 가장 많고 화학제품운반선(케미컬선) 110척 440만t, 컨테이너선 100척 450만t, 자동차선 49척 110만t, 초대형유조선(VLCC) 30척 940만t, LNG선 27척 230만t, LPG선 17척 80만t 등이다.
설치비용은 총 27억2800만달러(약 3조730억원)로 집계됐다. 최대 척수를 자랑하는 벌크선이 11억5200만달러로, 전체 비용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이어 컨테이너선 4억300만달러, 케미컬선 3억8100만달러, VLCC 2억4000만달러, LNG선 1억7500만달러, 자동차선 9800만달러, LPG선 7600만달러 순이다.
척당 평균 설치비는 VLCC가 800만달러로 가장 높았다. 배 한 척에 100억원에 육박하는 설치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반면 자동차선은 가장 저렴한 200만달러 선으로 조사됐다.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등은 400만~600만달러대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의 연료유 가격이 유지될 경우 스크러버 설치비 회수 기간은 평균 2.3년으로 분석됐다.
선주협회는 탈황장치 설치 대상 선박 중 장기운송계약에 투입되는 93척을 뺀 503척에 정부의 대출 지원 또는 보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선박의 전체 설치비용은 21억4250만달러, 한화로 2조4100억원 안팎이다.
장기계약 선박의 경우 화주 측에서 운임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설치비를 지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상은 발전사 49척(3억500만달러), 가스공사 27척(1억7550만달러), 포스코 17척(1억500만달러) 등이다. 포스코는 이미 선사 4곳과 스크러버 설치 협약(MOU)을 체결했다.
선주협회는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예측한 것처럼 저유황유 가격이 고유황유의 1.2배 수준일 때 스크러버 설치 선박은 570척, 설치비용은 26억1800만달러(약 2조9500억원) 안팎으로 추산했다. IMO는 향후 t당 연료 단가를 고유황유 450달러, 저유황유 540달러로 전망한 바 있다. 연료 가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저유황유 이용이 다소 유리하다. IMO가 전망한 유가 환경이라면 고유황유 사용을 통한 스크러버 설치비 회수기간은 5.9년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
2020년 한 해 국내서 저유황유 320만t 쓸듯
그렇다면 2020년 황산화물 배출 규제가 시행된 이후 국내 선사가 쓰게 될 저유황유는 얼마나 될까? 지난 한 해 용선 425척을 포함한 국적외항선대 1441척에서 쓴 연료는 총 1270만t 정도였다. 지난해 연료 평균단가 351달러를 대입해 국적선사들이 1년간 쓴 연료비를 계산하면 약 5조원 정도가 나온다.
선주협회는 국적선대의 스크러버 설치 일정을 토대로 규제 시행 첫해인 2020년에 1121만t의 저유황유 수요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연료비 규모는 현재의 저유황유 가격으로 계산하면 75억6700만달러(약 8조5200억원)에 이른다. 환경 규제로 한 해 3조5000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 중 국내 항만에서의 저유황유 수요는 320만t 정도로 전망된다. 22억700만달러(약 2조4800억원)어치다.
국적 선대에서 스크러버 설치 대상 선박은 용선 포함 845척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스크러버 설치를 확정한 건 279척에 불과하다. 91척이 올해와 내년 사이, 188척이 2020~2023년께 설치를 마치는 일정이다. 566척의 선박은 아직 방향을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내년까지 스크러버 설치를 마치는 91척을 뺀 1330척의 선박은 저유황유를 쓸 수밖에 없다.
선주협회는 이 같은 조사자료를 근거로 국내 정유사에서 높은 연료 수요에 대응해 원활한 저유황유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생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해운사 정유업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지 않으면 2년 후 선박 연료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협회 김영무 부회장은 “선박 사용연수를 20년으로 잡았을 때 선령 18년 미만인 선박이 탈황장치 설치가 유리하다”며 “다만 스크러버를 많은 선박이 설치하더라도 국내에서 300만t 이상의 저유황유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국내 정유업계의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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