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항은 지난해 물동량 2억t을 처리하며 전국 3위를 차지했다. 액체 화물에선 단연 최고 자리에 올라있다. 지난해 물동량의 97%가 액체 화물로 채워졌다. 점유율 32%를 확보하고 있는 SK부두는 울산항이 설정한 글로벌 오일허브 전략의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기자는 서울을 출발한 지 3시간반 가량 지나 SK에너지 울산 부두에 도착했다. 지난 1965년에 설립된 SK에너지는 하루 84만배럴의 원유를 정제하며 단일 석유제품 출하율 1위의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SK에너지 부두의 첫 인상은 자부심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국내 최대 액체화물 수출과 미군 항공유 저장탱크를 독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조정실 입구를 장식한 전경 사진에서 부두의 위상을 읽을 수 있었다. 조정실 근무는 4조 3교대로 24시간 진행된다. 1개조의 인원은 9명 정도다. 각 부두에는 관리자가 항시 대기해 선박 접안 후 안전 관리와 원활한 작업에 힘쓰고 있다.
근무 교대가 이뤄지는 오후 3시, 조정실 문을 열었다. 빠른 교대를 위해 인수인계가 한창이다. “만나면 미소!”, “우리는 함께한다!” 곳곳에서 구호와 함께 손바닥을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SK에너지 팀원들은 하이파이브로 인사를 대신한다. 2~3년 전부터 해오던 인사가 어느새 사내문화로 자리 잡았다. 현장 안내를 맡은 최환수 과장은 넓은 현장을 최소 인력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정실을 둘러보다 한 편에 위치한 CCTV 화면이 눈길을 끌었다. CCTV를 통해 현장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부두 관계자는 “기본적인 시설 관리 시스템과 알람 기능이 터치 하나면 가능해졌다”고 말을 뗀 후 부두의 전반적인 현황을 풀어놨다.
SK부두는 24시간 시설 관리가 가능하다. 각 부두 외에도 출입문이나 외곽 지역에 CCTV가 설치돼 철저한 안전·항만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조정실에서 CCTV 화면 알림을 통해 배관이나 시설물 온도, 기름 유출, 배관 압력, 미세 먼지 농도 등을 수시로 확인한다. 사고가 발생하면 알람이 울리고 직원들이 현장으로 곧바로 출동하게 된다. 출하와 수출 과정도 생생히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선박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조정실 담당자가 밸브를 누르면 자동으로 저장 탱크가 열리고 화물이 실린다. 이후 사전에 설정된 상한선까지 화물이 차면 탱크는 닫힌다. 최 과장은 “현장 업무는 부두 순찰과 제품 저장 탱크 관리가 주된 업무”라고 설명했다.
초대형 선박 접안과 맞춤형 물류로 ‘경쟁력 확보’
SK부두도 전 세계 항만 시장의 조류인 자동화 시스템 도입에 합류했다. 업무 효율 제고와 제품 가격 경쟁력 확보에 더욱 힘쓰겠다는 취지다. 동행한 전영일 대리는 항만 자동화를 통한 24시간 관리, 가격 경쟁력 확보와 맞춤형 2차 공정을 부두의 주된 경쟁력으로 꼽았다.
선박이 막 들어오고 있는 8부두로 향했다. 1995년 준공된 8부두는 최대 16만9500t까지 제품 선적이 가능하다. 1t 트럭 16만9500대를 선적할 수 있는 것이니 실로 엄청난 규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 길이 280m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제티 부두 형태인 SK 8부두
860만㎡(260만평)에 달하는 부두를 한 눈에 담기 위해 갱웨이타워(선박 승선 시설)로 올라갔다. 8부두는 육상에서 바다 쪽으로 쭉 뻗어있는 형태다. 이를 일컬어 ‘제티부두’(입출하 부두)라 부른다고 한다. 온몸을 파고드는 칼바람에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자의 속마음을 눈치챈 듯 전 대리는 “추위는 익숙해질 기미가 없네요”라며 현장 업무자들의 고충을 털어놨다.
이어 그는 해상에 위치한 원유부이를 가리켰다. 초대형 원유선(VLCC)의 경우 해상에서 하역이 이뤄진다. 바다에 떠있는 유조선에 실은 원유를 SK2, SK3 부이로 옮긴 뒤 연결된 470㎞ 길이의 해저 송유관을 통해 육상 저장시설까지 끌어오는 식이다. 전 대리는 “제품 수송비 절감을 위해선 초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상에서 가져온 원유는 자체 블랜딩(배합) 시설을 거친다. 이 곳에선 액체 화물의 2차 가공이 이뤄진다.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고도화 과정이다. 계절적 수요를 비롯한 다양한 요구 사안을 반영해 디젤이나 휘발유 경유 등을 생산한 뒤 이후 저장탱크로 옮기거나 수출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최 과장은 “가공처리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SK부두가 상당한 국가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명을 듣던 중 바다 저편 볼록 솟은 돔 형태의 탱크가 눈에 들어왔다. 최 과장은 50만배럴짜리 미군 전용 항공유 저장탱크라고 소개했다. 국내에서 SK가 독점 제공하고 있는 시설이다. 저장된 액체 화물은 미군이 이용하고 탱크와 제품 관리는 SK에서 담당한다.
▲배 외부에 표시된 흘수 눈금
갱웨이타워에서 내려와 액체 화물을 하역 중인 배 앞으로 향했다. 배 외부에 적힌 눈금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배의 수심을 나타내는 수치다. 이 눈금을 보고 액체 화물의 최대선적량을 가늠할 수 있다. 컨테이너 화물은 선적량을 무게로 나타내지만 액체 화물은 배 내부 청소·개조 등으로 적재량이 유동적이다.
▲액체화물을 하역하고 있는 로딩암
이어 최 과장은 로딩암(송유관과 배를 연결하는 장비)을 가리켰다. 컨테이너 화물은 안벽 크레인이 하역을 담당하지만 액체 화물의 경우 별도 로딩암이 마련돼 있다. 8부두는 로딩암을 최대 3개까지 동시에 운영할 수 있어 선박 접안 시간을 최소화했다는 설명이다.
8부두를 나서자 좁은 통로 양 옆을 가득 메운 파이프에서 흰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이 보였다. 갑자기 펑하고 터지는 건 아니냐는 기자의 호들갑에 전 대리는 “액체 화물 온도를 고온으로 유지시켜주기 위한 스팀”이라며 “특히 겨울에는 유동점 이상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스팀을 많이 넣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SK에너지 부두 운영률은 67%에 달한다. 부두 운영 최고치인 70%에 육박하는 수치다. 전 대리는 “일자 형태의 접안 공간과 과감한 투자 역시 SK부두의 주된 성공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 이시은 기자 se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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