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한진해운에 200억원이 투입됐으면 살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정부와 관료 간 의사소통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국회 여야 원내대표가 모여 조선해운 특위를 만들었으면 한다.” 한 국회의원은 한진해운 사태 1년을 맞아 진행된 세미나에서 정부와 국회의 한진해운 구조조정에 대한 정책적 무능을 질타했다.
‘한진해운 사태 1주년, 법적쟁점과 도약 방안’을 주제로 진행된 제 3회 항만·물류법 세미나가 지난 30일 국회 의원회관 제 2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와 인천항만공사(IPA)가 주최하고 안상수 국회의원이 주관한 이날 세미나는 한진해운 사태 1주년을 돌아보고 한국해운이 개선해야 할 문제점과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법학교수회 정용상 회장은 “한진해운 사태의 재발을 막고 우리나라 정기선해운의 발전과 화주 보호를 위한 입법적·법정책적 방안을 마련하는데 동참할 것”이라며 “해운업계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업계 특성을 고려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계속기업가치 높았다”
한진해운은 연 매출액 7~8조원 대의 세계 7위 선사였다. 오늘로 1년을 맞은 지난해 8월31일 법정관리를 신청해 하루 뒤인 9월1일 개시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한진해운의 기업가치는 어땠을까.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는 당시 한진해운의 청산가치는 1조8000억원이라고 밝혔다.
반면 계속기업가치는 법정관리 신청 후 하역비 용선료 미지급 등으로 인한 선박 압류위험에 노출돼 있어 추정이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한진해운이 지불해야 할 각종 비용이 누적되면서 부채규모가 당초 6조원에서 30조원으로 불어났고 이로 인해 전략적제휴그룹(얼라이언스) 퇴출, 화주·선주의 신용도 하락, 터미널 이용 제한 등 향후 영업재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 또 하역지연으로 인한 화주들의 손해배상과 선박 계약해지에 따른 선주들의 손해배상으로 발생한 회생채권 및 공익채권 증가로 재무위험 요인도 불어났다.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이날 토론 패널로 참가한 삼일회계법인 손병구 상무도 계속가치 추정이 어려웠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손 상무는 “당시 한진해운의 청산가치는 30%에 불과했고 계속가치가 높은 점에서 (정부의)재정투입이 필요했다”며 “회생절차 과정에서 한진해운이 강점을 보이는 익스프레스 서비스 등을 긍정적으로 보려 했지만 계속가치 추정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계속가치 추정이 어려운 점에 대해 손 상무는 ‘마지막항차에 대한 문제’와 ‘밀린 하역비용’ 등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항해 중인 한진해운 선박이 세계적으로 입항 거부를 당하면서 발생한 클레임 문제다. 당시 한진해운이 실어 나르던 화물의 가치는 약 14조원에 달했다. 화주의 클레임이 10%만 청구돼도 1조4000억원의 손해배상액이 발생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배상액을 두고 공익채권과 회생채권 중 어떤 걸 적용해야 하냐에 대한 갑론을박만 오가면서 허송세월을 보낸 점이다.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1조4000억원의 절반을 긴급수혈해도 기업의 내실이 튼튼하지 않아 사실상 기업경영은 어려웠다.
마지막 항차에 필요한 하역비용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당시 한진해운 선박이 마지막 항차에서 지불해야 할 하역비용은 약 6000억원이었다. 한진해운 측은 터미널운영사와의 협상으로 이 비용을 4000억원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상 회사장부에는 3000억원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가지 문제가 기업 가치에 반영돼 한진해운을 침몰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납기일 지연따른 화주 피해 눈덩이
한진해운 선박들이 전 세계 주요 항만에 입항거부를 당하면서 화물운송 지연에 따른 피해도 상당했다. 이종덕(고려대 박사과정) 발표자는 “화물의 직접적·결과적 손해 외 한진해운 사태에서 화주가 부담할 추가 비용항목에 대해 공익채권 인정 여부가 불투명했다”며 “한진해운 마스터BL(M/BL) 약관 15조는 운송지연으로 인한 간접손실 배상책임을 명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추가비용은 운송 지연을 만회하기 위해 화주가 자구책으로 대체수단을 사용했을 때다. 화주로선 운송지연을 막기 위해 타 선사로 재선적하기 위한 컨테이너 재작업 비용, 그에 따른 대체 선사비(해상운임), 대체 선적위한 항내 화물이동 비용(ship-back), 하역비용, 최종 목적지 변경(COD)에 따른 내륙운송비, 긴급운송을 위한 항공 철송 등 이종운송수단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만 했다.
공컨테이너 반납 관리에 따른 추가비용도 화주의 부담이었다고 지적했다. 목적지에서 컨테이너 화물을 빼내고(devanning) 나면 한진해운이 공컨테이너를 의무로 회수해야 했지만, 도착지 운송사에 대한 미수금 발생(채무불이행)으로 운송사가 공컨테이너 회수를 포기했다. 공컨테이너 반납이 늦어지자 무료 장치기간 이후 발생한 추가비용까지 화주들이 지불해야 했다. 여기에 한진해운 회생절차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섀시 리스비용까지 덤으로 부담해야만 했다.
국제물류주선업자(포워더)도 운송에 대한 책임부담을 놓고 피해가 컸다. 실화주와 포워더 간 계약관계가 미흡해 영업논리 상 누가 책임지느냐가 불분명했기 때문. 상법 116조에 따르면 운송주선인은 개입권을 행사하거나 119조 2항에 따라 운임을 정해 계약운송인으로서 운송 인수가 가능하다. 또 운송주선인이 화주에게 발행하는 하우스B/L과 실제운송인이 운송주선인에게 발행하는 마스터B/L을 대조해보면 책임관계가 명확해지지만 실제 서류상 기재된 운송주선인이 화물을 처리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종덕 발표자는 “법적으론 책임관계가 명확하지만 현실에선 운송주선인의 개입권 행사여부 및 운송 인수의 배상책임관계가 불분명하다”며 “이번 사태에서 영업논리로 인해 실제 화물을 처리하지 않은 운송주선인이 손해배상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포워더를 위한 법적 보호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종덕 발표자는 운송주선인의 법적 보호를 위한 방안으로 실제운송인과 화주 간 마스터B/L 상 계약관계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제도화할 것을 제안했다. 또 화물을 실제 처리하지 않고 그를 단순 주선만 했던 포워더가 무분별하게 손해를 배상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화주가 실제운송인에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보험제도 가입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김인현 교수는 “한진해운 사태와 같은 미연의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 포워더 법인 등록요건으로 1억원의 보증보험을 가입하고, 보상최고금액이 낮은 만큼 이를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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