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3 11:07

마리나, 더 이상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해운강국 이점 살려 마리나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사진제공 = (주)서울마리나

●●●세계관광기구(UNWTO)는 2030년 세계 관광인구가 58% 늘어난 18억명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흥미로운 발표자료를 내놨다. 지속적으로 성장할 관광산업 10가지 중 5가지 이상이 해양관광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나 마리나 등 해양관광산업이 크게 주목받을 전망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미래산업의 주요 이슈로 해양관광산업을 꼽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더디게 따라가고 있다. 국가별 레저선박을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일본과는 29배 차이가 나고 고소득인구수가 비슷한 덴마크와 비교해도 5배 차이가 난다. 전 세계적으로 마리나 항만은 약 2만300여개가 조성돼 있으며 동아시아에 700여개가 분포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32개가 전부다.

긍정적인 소식은 성장추세가 가파르다는 점이다. 2013년 기준 국내 레저선박은 약 1만여척이 등록됐지만, 2014년에는 1만3000여척으로 성장했다. 레저선박에 필요한 조종면허는 매년 14%씩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이런 추세라면 2020년경에는 2만척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자연조건도 마리나산업의 성장을 거든다. 레저 선박을 만들 수 있는 세계적인 조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점도 강점이다.

2019년까지 거점마리나 조성

지난달 27일 개최된 제4회 동아시아 마리나 포럼에서 해양수산부의 권순욱 해양레저과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마리나를 국민 여가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크게 세 가지 전략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부족한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첫 번째다.

현재 레저선박이 계류 가능한 시설은 1750선석으로 수요의 13%를 충족하는데 그치고 있다. 2019년까지 추정되는 수요는 9400척으로, 먼저 2000선석을 추가로 준비할 계획이다. 권순욱 과장은 ‘거점마리나’ 조성 계획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6개 거점형 마리나와 소규모 마리나를 연계해 이를 활용한 동북아 마리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마리나 관광의 대중화를 이끌기 위한 활동도 진행 중이다. 권순욱 과장은 마리나 산업 발전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이 마리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라며 “사람들에게 마리나가 사치성 레저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어, 해양레저 활동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직접 체험을 통해 마리나를 긍정적인 활동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마다 해양스포츠대회, 학생 대상 체험 프로그램, 서핑 및 스킨스쿠버 등 새로운 분야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기술개발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는 신사업으로 떠오르는 메가요트 개발에 210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안정적인 내수 시장이 필요하다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국내 레저시장을 정비하려는 계획이다. 또한 레저시장 활성화를 돕기 위해 부담이 컸던 지방세 기준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하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권순욱 과장은 “마리나 산업 활성화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관광 소비가 활성화되는 경제 선순환 구조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한국마리나 산업 육성을 위해 아낌없는 정책적 지원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마리나는 ‘거들뿐’, 수익의 70% 지역경제로

세계해양산업협회(ICOMIA, 이하 아이코미아)는 흥미로운 통계 결과를 내놨다. 마리나를 이용하는 선주들은 연간 6000유로(한화 약 739만원)를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중 선박과 관련된 지출은 3분의1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외식 등 부대서비스 이용에 사용되고 있었다.

아이코미아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피터 얀센은 “마리나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광객들이 ‘오래 머물면서’ 돈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체류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익은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인근 지역사회의 경제도 활성화된다. 아이코미아에 따르면, 마리나는 선석 25개당 1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4개 선석 별로 1개의 간접고용을 이끌어 낸다. 100개의 선석은 200만유로를 창출해, 선석이 많을수록 효과가 크게 늘어난다.

마리나는 그 자체로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어렵다. 슈퍼요트가 새로운 고수익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선박 1~2척을 보관하는 것만으로는 수익성이 떨어진다. 얀센 사무총장은 슈퍼요트를 사는 사람들은 과시욕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 마리나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일반인을 중심으로 마리나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트 이용 고객을 위한 전용 공간도 필요하지만, 회원전용 마리나로 만들면 안 된다”며 “마리나를 계류공간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보트를 타는 ‘즐거운 경험’을 판매한다고 생각하면 관점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또한 아름다운 시설을 갖춘 마리나는 사람들의 삶을 증진하는데도 기여한다. 유럽은 개방을 통해 마리나를 공공시설로 구축하고 있다. 식당 등 마리나의 부대구역은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공개돼 배가 없어도 누구나 찾아올 수 있다.

유럽은 정부가 마리나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공익 차원에서 지역경제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함이다. 얀센 사무총장은 “민간 투자자가 임대해서 사용하도록 하거나, 정부가 일부 출자해서 지분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체류기간이 길수록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여러 행사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광고와 추천보다는 직접 경험했을 때 보트를 구매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보물섬 이야기를 응용한 체험관, 해양관련 영화 상영, 박물관 기획 등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고령화되는 산업 이용 연령을 끌어내리는 방안도 요구된다. 어린이,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사람들을 유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은 후에 보트를 구매하도록 돕는 장기적인 마케팅의 일환이 될 수 있다.
 
▲ 지난 11월27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해양수산부 주최 및
한국마리나협회 주관으로 '제4회 동아시아 마리나 포럼'이 개최됐다.

마리나 개발, 정부 개입이 중요

싱가포르보팅산업협회의 와이 피 로크 회장은 마리나 개발에서 ‘위치’를 강조했다. 방파제 설치, 준설 공사 등 초기 공사에 상당한 비용이 지출되므로 자연적으로 보호되는 지역은 시작부터 많은 돈을 절감할 수 있다. 마리나를 조성할 수 있는 공간은 환경 보호 규제 등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마리나는 20~30년 장기 투자를 요하는 거대 프로젝트이기에 민간자본만으로 진행했을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로크 회장은 “한국의 경우 산업이 초창기 단계라 민간투자자들이 투자를 두려워할 가능성이 높다”며 “안정적인 기반이 갖춰졌을 때 민자로 이전하면 민간투자자 입장에서도 안전한 투자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초기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또 다른 역할은 마스터플랜 구축이다. 로크 회장은 “한국은 현재 관련법 개정에도 나서는 등 전국 단위로 마스터플랜을 개발한 점이 굉장히 고무적”이라며 산발적으로 마리나를 조성해 엉망이 된 사례가 많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어항을 플랫폼으로 마리나산업 개발해야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는 999개의 아름다운 어항이 자리하고 있지만, 해양관광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어촌어항협회가 1500명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어촌·어항 관광은 “바닷가의 횟집에서 회를 먹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해양레저·체험프로그램·축제 등의 활동보다는 경관감상, 음식관광에 편중된 관광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건일엔지니어링의 이수정 국토계획본부 이사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해양관광산업은 인프라 부족으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지만, 여가시간이 늘어나며 해양레저 관광도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0년대 전까지 방파제 설치 등 어업기반시설을 중심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했지만, 현재는 물류 유통과 관광레저 등 지역 특성에 맞춰 어항을 개발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어촌마리나역 개발사업이다.

어촌마리나역은 어업과 해양 레저 활동이 공존하는 해상 간이역을 의미한다. 시범적으로 2017년까지 16개 마리나 시설을 마리나역(驛)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해상관광 및 지역관광루트를 다각화하고자 한다. 어촌마리나역에 필요한 수리 시설, 쇼핑 배후단지 등 문화시설은 가급적 어항의 기존시설을 최대한 공유해, 어항을 중심으로 해양레저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돕는다.

어항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어촌계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촌·어항을 개발해도 그 지역에는 ‘지역민’이 살고 있다. 외부인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침범한다고 생각한다면, 공간을 내어주지 않고 충돌이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

이수정 이사는 “정부가 아무리 사업을 추진해도, 어촌계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역 활성화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어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내어주고,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채윤 기자 cy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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