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최대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벼랑 끝에 몰렸던 중견조선기업들이 올해는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리띠를 졸라맨 기업들의 자구노력과 적기에 선박이 인도되면서 지난해에 비해 적자 규모를 줄였기 때문이다.
일단 숨통을 틔운 기업들이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불투명한 시황 전망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가 일감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국내 대형조선사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6곳 중 5곳 영업적자 줄여…현대미포 ‘흑자전환’
올해 상반기 6곳 중 5곳의 중견조선기업들은 영업적자 규모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적자를 메우고자 고군분투했던 조선사들의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것이다.
적자를 줄여나간 기업들의 필두엔 현대미포조선이 있었다. 현대미포조선은 조선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냈다. 현대미포조선은 올해 상반기 11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지난해 상반기 -3197억원에서 흑자로 턴어라운드 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석유제품운반(PC)선, 가스선을 중심으로 생산성이 향상된 것이 흑자달성의 배경이다.
기업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렸던 현대삼호중공업의 영업손실 폭은 축소됐다. 현대삼호중공업의 영업이익은 -1745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 -2176억원에 견줘 적자폭이 줄었다. 반면 순손실은 -1771억원으로 확대됐다. 매출액은 11%의 두 자릿수 성장으로 2조2169억원을 벌어들였다.
적자를 가장 많이 털어낸 기업은 STX조선해양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202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STX조선해양은 올해 -255억원으로 손실을 최소화했다. STX조선해양은 2013년 11~12월 두 차례의 출자전환을 통해 최대주주가 채권금융기관으로 변경되며 2013년 11월26일자로 STX기업집단에서 제외된 바 있다. 2014년 이후 구조조정 등을 통해 2013년 1조5032억원에 달했던 영업손실 규모는 상당 부분 축소됐다. STX조선해양 측은 “채권단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고 지연됐던 건조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면서 자금흐름이 원활해지며 수익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올해 초대형 컨테이선을 잇따라 수주한 한진중공업의 반기 영업손실은 53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손실 규모 -221억원에 비해 2배 이상 확대됐다. 순손실도 875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커졌다. 반면 매출은 6.1% 증가한 987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최대 7년간 경영지원을 받는 성동조선해양의 영업손실은 대폭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손실 약 1400억원에서 올해는 약 80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성동조선해양 측은 “2008년 이후 시설투자로 인해 손실이 났다”며 “현재는 정상적으로 인도물량이 나오면서 수익이 나고 있다”고 밝혔다.
대선조선도 영업손실 낙폭을 줄이며 실적상승 대열에 합류했다. 대선조선은 지난해 191억원이었던 영업손실을 올해 87억원으로 줄였다. 반면 매출액은 11.7% 하락한 1154억원을 기록했으며 순이익은 -163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헤비테일 발주로 선박이 인도되면서 영업손실을 줄인 것이 실적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벌크선 수주급감이 실적부진 이끌어
현대미포조선을 제외한 중견조선기업들은 적자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적자 규모를 줄였지만 흑자로 돌아서기가 쉽지 않은 모양새다.
중견조선기업들에게 적자를 안겨준 주범은 벌크선이다. 과거 중견조선기업들은 효자품목인 벌크선과 탱커를 중심으로 수주잔고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2012년 유럽발 위기로 선주들의 발주문의는 눈에 띄게 줄었고, 조선사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건조량 또한 매년 급감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국내 중형조선사는 2010년 한 해에만 74척의 벌크선을, 2011년에는 88척을 건조(인도)했다. 하지만 2012년 하반기 들어 분기별로 두 자릿수의 건조량을 보였던 벌크선은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쳤다.
궤를 같이해 2012~2013년의 벌크선 건조량은 각각 72척 19척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단 9척만의 선박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조선사들의 경영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2012년 이후 급감했던 탱커 건조량은 지난해 들어 차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탱커라는 일감마저 없었더라면 조선사들의 피해는 가중됐을 것으로 보인다.
저가수주도 중견조선사들의 경영악화를 불러왔다. 조선업계는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와 중국 등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도크로 인해 조선사들이 저가수주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010년 이후 시황이 좋질 않다보니 무리한 저가수주를 펼친 조선사들의 경영실적이 아직까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적개선 빠르면 2017년
중견조선사들이 완연한 기지개를 켜기 위해서는 상당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빠르면 2017년께나 시황이 회복될 것으로 조선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상반기 조선사들이 내놓은 암담한 성적표는 빠른 시일안에 시황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올해 상반기 국내 중형조선소의 수주량은 39만9천CGT(수정환산톤수)로 1년 전에 비해 63.5%나 급감했다. 특히 2분기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한 선박은 단 3척(컨테이너선 1척·탱커 2척)에 그쳐 조선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중형조선이 극심한 부진을 보인 또다른 원인은 국내 대형조선소와의 경쟁에서 비롯된다. 사상 최대의 적자규모를 보이며 어려움을 보이고 있는 국내 대형조선사는 유조선 수주범위를 확대하며 중견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중형조선의 수주부진은 전 세계 시장의 극심한 부진에 따른 발주물량 부족에도 원인이 있으나 신조선 시장이 어려워지며 일부 대형 조선소들이 중형선박을 수주한 점도 영향이 있다”고 밝혔다.
실적개선은 수주실적 등을 고려할 때 의미 있는 개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벌크선에 이어 탱커의 수주량이 전분기 대비 감소하며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수출입은행 측은 “중소형 컨테이너선에서 여전히 시장회복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시황회복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2017년부터 제품운반선과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시황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며 내년까지는 다소 어려운 시황을 전망한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실적개선에 대해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종별로는 원유·컨테이너 교역량 증가에 따른 중대형 유조선·초대형 컨테이너선과 같은 일반 상선 발주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중견 조선기업들은 매출 성장을 통해 적자 폭을 줄여 2016년부터 흑자로 돌아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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