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엔 비가 올것 같았다. 초보 기타연주자에겐 생소한 Eadd9이라는 코드로 시작하는 ‘여수 밤바다’의 전주처럼 수습기자는 취재 초행길에 나섰다. 납빛 구름은 이방인에게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를 들려주겠노라며 넉넉한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여수엑스포역에선 실제로 ‘여수 밤바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방인을 맞은 여수지방해양수산청 직원은 “이 노래가 여수의 애국가”라고 알려준다. 여수와 광양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여수신북항 - 2019년엔 관용선 182척 수용
여수엔 비가 내렸다. 여수엑스포역에서 낙포 관공선부두로 이동하는 새, 중층부의 수증기는 액체로 변해 바다를 조우했다. 해를 마주하는 것보다 되레 유순한 소량의 가랑비가 얼굴 표면에 떨어졌다. 제한된 출장시간으로 밤바다를 볼 수 없다면, 낮바다엔 비가 내려야 했다. 초여름 오후의 무더운 열기는 ‘여수 밤바다’의 창작자가 노래한 바다가 아니었다. 밤바다가 아니라면 비가 내리는게 옳았다.
2012년 여수엑스포 개최로 여수신항은 박람회장에 편입됐다. 기존 부두가 폐쇄되면서 지난달 기준, 164척(관공선 43척, 역무선 121척)의 선박이 여수·광양지역 11개 장소에 분산 접안돼 있었다. 엑스포 개막 후 2년 여 시간이 흘러, 여수신항을 대체하기 위한 여수신북항 개발사업이 지난달 15일 착공에 들어갔다. 2880억원이 투입되는 건설사업은 외곽시설과 계류시설로 구분된다. 여수신북항은 기존 신항에서 북쪽으로 8km 가량 떨어진 위치에 외곽시설 1360m(방파제 860m, 방파호안 500m), 계류시설 1200m(관공선 및 역무선부두 470m, 해경부두 500m, 물양장 152m, 친수호안 80m)로 구성될 예정이다. 공사가 2019년 완료되면 182척의 관용선이 접안할 수 있게 된다.
▲관공선 <푸르미2>호 내부
광양항의 여천지역에 위치한 낙포 관공선부두에 이르렀다. 선장과 항해사를 포함, 다섯명이 18t급 관공선에 승선했다. 출항한지 10분이나 지났을까. 인지하지 못한 사이, 관공선은 여천지역에서 광양지역의 경계로 매끄럽게 진입한다. 어느 지역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기자를 위해 항해사가 부두의 명칭과 기능을 설명한다. 코일을 전담하는 RO/RO부두, 석탄과 철광석 등의 제철원료를 하역하는 원료부두, 열연과 냉연 등의 철재를 다루는 제품부두, 악기상에도 선적이 가능한 전천후부두, 그리고 잡화를 처리하는 중마일반부두를 스쳐간다.
▲광양항 RO/RO부두, 제품부두, 전천후부두 (배치순)
광양항 - 비컨테이너 부문 1위, 작년 2억1395만t 처리
“1등인데 잘 몰라줘요.” 광양항 관계자의 넋두리다. 지난해 비컨테이너 화물 2억1395만t을 처리하며 국내 1위에 자리한 광양항은 올해 1분기에도 5129만t을 하역, 해당부문 선두를 지키고 있다. 2위 울산항의 1억8631만t(2014년 기준)에 견줘도 2763만여t의 차이를 보인다. 특히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철광석수입 3327만t(전년대비 12% 상승)과 국산 자동차수출 928만t(전년대비 102% 상승)이 두드러진 성과를 나타냈다. 하지만 ‘세계 10대 항만순위’와 관련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컨테이너 물동량 기사와 달리, 비컨테이너 실적은 지면에 공개되는 빈도가 현저히 낮아 대중이 인지하기 어렵다. ‘TEU’에 비해 ‘t’을 접할 기회는 적다.
관공선은 연간 233만8335TEU(2014년 기준)를 처리하는 광양항 컨테이너부두에 도착했다. 기자가 방문한 2-1단계 컨테이너 부두는 5만t급 2선석, 2만t급 2선석의 접안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문사다리를 올라타고 기항중인 모 국적선사의 1600TEU급 컨테이너선에 승선했다. 부산, 울산, 광양을 거쳐 칭다오로 향하는 배다. 광양항엔 기자가 방문한 목요일과 일요일에 기항한다. 이 날, 낮 11시30분경 접안한 선박은 오후 4시45분에 출항하기 위해 각 96TEU 및 105TEU 양·적하 컨테이너를 처리 중이었다.
5개층의 계단을 올라, 본선의 브리지(Bridge·선교)에 도달했다. 조타장치, 레이더, 통신장치 등의 설비를 갖춘 선박의 운항통제소다. 브리지에서 내려다 본 전망엔 컨테이너 크레인(C/C) 22열 두대와 18열 세대가 분주하게 양·적하 작업을, 하역인부가 컨테이너에 래싱(Lashing·고박)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광양항 컨테이너부두 2-1차 HSGT
선교에서 7개층을 내려가 기관실에 들어섰다. 기관실은 여느 중소기업 혹은 개척교회의 주차장보다 방대했다. 주기, 발전기, 보조기관, 보일러 등 주요 기계류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기관사는 계기류의 회전속도, 이상 진동, 온도, 배기색 변동, 윤활유 소모량 등을 점검한다. 엔진 상태를 조절하는 것은 물론, 기관의 주유량과 보일러 수압 및 증기압 상황을 확인한다. “차나 배나 얼추 원리는 비슷합니다.” 1급 기관사는 거대한 기관실을 자동차 엔진의 확장판으로 비유했다. 진입 1분여만에 턱 부위에 땀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열기와 습기는 집중력을 저하시킬 만큼 후텁지근했고, 소음은 기관사의 설명을 청취하기 어려울 만큼 요란스러웠다.
기관실을 벗어나 에어컨이 가동되는 회의실로 진입했다. 대기의 변화에 느슨해진 기력이 금세 활기를 되찾는다. 항해사, 기관사 몇 분과 짧은 담소를 나눴다. 21명의 선원 중 한국인은 단 5명, 중국·미얀마 등지에서 온 16명의 외국선원이 항해에 동참하고 있었다. 기항 중엔 어떻게 여가시간을 보낼까. “광양항 시멘스센터(선원회관)는 할 게 별로 없어요.” 익명의 운항 관계자가 입을 열었다. “와이파이도, 소액의 환전도 안된다”며 “LTE 무제한 데이터 요금을 이용하는 어느 한국선원이 테더링을 제공해 겨우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들은 소통이 필요했다. ‘여수밤바다’의 화자와 달리, 외국선원들에겐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불러낼 사람이 없었다.
서서히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 본선은 다시 칭다오를 향한다. 지난 2년 사이 세계박람회가 여수신항을 편입했다면, 여수신북항이 준공되는 4년 후엔 또 어떤 변화가 있을까. 182척의 관용선을 수용한 신북항에도 ‘여수 밤바다’가 들려올까.
< 김성웅 기자 sw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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