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더러 잊혀질 법도 하련만 70년세월을 훌쩍 넘기고도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아, 아직도 문득 필자 같은 고전 매니아들의 가슴을 온통 설레게 하는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1899~19570)’와 ‘잉그리드 버거만(Ingrid Bergman/1915~1982)’이 열연한 전설적인 그 영화 ‘카사브랑카(Casablanca)’는 삽입곡 ‘As Time Goes By’의 선율과 함께 사그라들지 않고 샌드페블의 뇌리를 적신다.
특히 ‘시카고 선타임스’ 기자와 영화평론가로 최초의 퓰리처비평상을 수상한 경력에, 오바마대통령마저 올 4월 그의 타계를 애도하며 “그는 영화의 매력을 잡아내 우리를 마술의 세계로 데려다 준 비평가였다”고 극찬한 ‘로저 에버트(Roger Evert)’가 “처음보는 사람보다 다시 보는 사람이 훨씬 더 집중해서 보는 영화가 바로 카사블랑카”라고 하지 않았던가.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연예 및 헐리우드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Variety)’가 ‘100년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100인’ 중의 한사람으로 험프리 보카트를 뽑았던 기록도 ‘카사블랑카’가 세계최고의 고전명작이란 객관적 평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우스개 한마디. 이 작품 출현과 에버트와 필자는 모두 1942년산으로 임오생, 말띠 동갑이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 남쪽으로 약 90km 정도 떨어진 대서양 얀안에 위치한 최대의 상업 및 행정 관광 경제도시다. 포루투칼인들이 바닷가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모습을 보고 ‘카사비앙코’라 한 것을, 다시 스페인이 지배하게 되면서 ‘하얀집’ 이라는 의미의 ‘카사블랑카’ 로 고쳐 부른 것이 오늘날 이 도시의 지명이 됐다고 한다. 그리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이 배우시절 ‘험프리 보거트’와 이 영화의 주연배역 경합 끝에 탈락한 얘기와 더불어 제목은 ‘카사블랑카’였지만 당시 이 지역도 전쟁터였기에 모로코에서 지명만 빌려 왔지 실제는 ‘워너 브라더스사’의 스튜디오와 헐리우드 세트장 촬영으로 보거트와 버거만은 이곳에 발도 들여놓지 않고도 더욱 현장감 넘치게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단 에피소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41년 12월. 프랑스의 식민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무력으로 전 유럽을 석권한 독일은 전격전이라는 기동력과 화력을 결합시킨 전술로 그때까지도 제 1차세계대전의 앉은뱅이 전쟁을 염두에 둔채, 참호전을 예상한 프랑스를 일거에 무너뜨린다. 독일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제 1차대전의 영웅 ‘페탱원수’를 국가 수반으로 하여 독일에 항복한다.
굴욕적인 항복을 거부하고 ‘드골장군’은 영국 런던에 자유프랑스의 망명정부를 세운다. 분명 프랑스의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페탱정부였으나 한편으론 나치 독일의 동맹국인 상황이었다. 프랑스의 동맹국이자 점령자인 독일은 모로코에도 진출해 있었지만 프랑스의 비위를 크게 상하지 않게, 형식적으로나마 프랑스 경찰에게 치안을 맡겼다.
당시 중동에 위치한 요지, 카사블랑카는 전란과 나치를 피해 유럽서 리스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의 기항지로 몹시 붐볐고 이곳서 ‘아메리카나’ 란 카페를 경영하는 미국인 ‘릭 브레인(험프리 보거트)’은 전쟁의 와중에도 떼돈을 버는, 이곳서 한가락 하는 유지였다. 어느 날 밤, 반 나치의 거물 ‘빅터 라즐로(폴 헨레이드)’와 그의 아내 ‘엘사(잉그리드 버그만)’가 릭의 클럽에 찾아온다.
이들 부부는 릭에게 맡겨진 여권을 부탁하러 온 참이었는데 엘사를 본 릭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두사람이 한때 파리에서 연인사이로 꿈같은 사랑을 나누다가 엘사가 약속을 어겨 릭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헤어졌기에 릭과 일리자는 서로를 보는 순간 옛사랑의 불꽃이 삽시간에 가슴을 뒤흔든다. 이들의 깊은 사연을 알고 있는 피아니스트 ‘샘(듈리 윌슨)’은 두 사람의 지난 기억을 헤집듯 옛 추억의 곡을 연주하여 이들을 더욱 설레고 놀라게 한다.
릭은 과거에 이루지 못한 미완성의 옛 사랑을 되찾기 위해 일리자를 붙잡아 두고픈 생각으로 번민하기 시작한다. 엘사의 남편 라즐로는 침략자 독일에 격렬히 항거하는 항쟁운동의 선봉에 선 애국투사였다. 남편의 투옥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일리자를 파리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졌던 릭은 여유롭고 호쾌한 사업가로서 비애와 고독으로 몸부림치던 그녀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점령한 영혼의 약탈자였다.
그러나 마침 독일군이 진군하자 릭은 홀로 파리를 떠났다. 엘사는 남편이 포로수용소에서 탈주하다가 투옥되어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함께 가기로 한 릭과의 언약을 어기고 그대로 남았고 이는릭에겐 사랑을 배반한 결과가 됐다. 한편 파리를 함께 떠나자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던 엘사였지만 그녀의 고상하고 단아하며 순박한 아름다움과 미소 가득한 여성미의 매력에 흠뻑 취했던 옛 사랑의 추억은 릭의 뇌리를 떠날 줄을 몰랐으나 막상 이같이 극적인 해후가 이뤄지게 되자 몹씨 혼란스러워한다.
엘사 부부는 이곳을 빠져나갈 통행증을 건네받기 위해 릭의 가게를 찾게 된 것. 그러나 당초 릭이 가진 통행증으로 남편을 미국으로 탈출시켜주는 대신 자신은 릭에게 남겠다고 했던 엘사에게, 사랑의 기로에 선 릭은 오랜 번민끝에 눈물을 먹음고 이렇게 종용한다.
“반대의 선택을 했을 경우,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당신은 결국 후회할 수 밖에 없을 것” 이라고. 그래서 파리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엘사를 영원히 잃지않는 유일한 길은 카사블랑카에 남겠다는 그녀를 남편과 함께 떠나보내는 수 밖에 없다고 일방적으로 중대한 결심을 하게된다.다시는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겠다는 마음을 접고 그녀의 고귀한 여인상과 우국적인 남편을 위해 헌신적인 아내로서의 위상을 지키도록 돕기 위해 릭은 끈질긴 나치의 눈을 피하여 냉소적이면서도 낭만적이기도 한 ‘르노 경찰서장(클로드 레인즈)’을 구슬러 두 사람이 탈출할 패스포트를 아슬아슬하게 준비한다.
이윽고 이별의 시간이 닥치자 온갖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릭과 엘사는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엘사가 트랩을 오를때 총격소리가 들리는 최후의 순간, 담배를 입에 문채 릭은 이룩하여 사라지는 비행기를 한동안 바라보며 명화 ‘카사블랑카’만이 갖는 헤어짐의 라스트 신으로 오래 사랑받는 최후를 연출한다.
매일 달라지는 대본때문에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는 날까지 자신이 남편 헨레이드와 떠나게 될지, 연인 보가트와 남게 될지를 몰랐다던 버그만은 결국 항공기로 하늘 멀리 떠나고 보가트를 사막에 남겨놓은채 대단원을마무리하는 담대함. 그리고 사랑을 담은 아름다운 시, ‘As Times Goes By’ 음악선율이 배경으로 흐르는 동안 두사람을 비추는 달빛으로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가기 전의 단순했던 삶으로 그들을 옮겨가던 장면의 연출은 거장 ‘마이클 커티스(Michael Curtiz)’감독에게 가장 완벽한 캐스팅으로 가장 훌륭한 불휴의 명작을 만들었다는 찬사세례를 받기에 충분했던 작품으로 남게했다.
‘머레이 버넷’과 ‘조안 엘리슨’ 이 함께 쓴 원작, ‘모두가 릭의 가게로 몰려든다(Everybody Comes to Rick’s)’를 커티즈 감독은 복잡하고 교모한 스토리를 설명에 무게를 두고 중간의 파리 회상장면을 중심으로 구성해 시나리오작법의 모든 규칙을 깨뜨렸고 오스카 최우수영화상, 각본상, 감독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어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Here’s looking at you, kid)’ 란 명대사와 함께 헐리우드의 술꾼모임 ‘랙팩’을창단한 174cm의 단신에 폭주가인 보가트가 실제로 삶을 마감할때 “스카치에서 마티니로 바꾸는 게 아니었는데” 라고 남긴 마지막 말은 지금도 기억에 새롭고 ‘험프리 보가트’는 ‘아프리카의 여왕’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은 ‘개스등’에서 각각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바 있으며 오래전 타계한 이들과 함께 ‘카사블랑카’는 영원한 명화의 전설로 남아, 화면속의 감격과 감동을 오래도록 고스란히 이어갈 것이란 평판에 필자도 공감한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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