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09-16 00:00
김진원(미국 오리건주정부 주한 대표부 대표, 중부대학교 국제통상학부 겸
임교수)
나라 안에선 밤잦없이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향한 “용들의 경쟁”이 한
창인데, 나라 밖 미국에선 급기야 한국의 자동차 사장에 대한 통상법 슈퍼
301조를 적용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이에 맞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
겠다고 한다. 아마 한미간의 무역분쟁은 피할 수 없는 형국인 듯 싶다. 이
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세계 유릴 초강대국이자 최대시장인 미국을 상대하는
데 다음과 같은 방법은 어떨까? 사실, 미국 사람들과 교류하다보면 과연 그
들이 우리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하는 점에서 의구심을 갖게 된다
. 이점에선 최근 모 언론기관이 마련한 대통령 출마자와의 TV토론회 석상에
서 한 후보가 미국은 한국을 어떤 의미에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한 말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아마 제한된 시간 탓에 그 후보가 세세히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다음과 같은 점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한국 경제가 60~70년대의 절대빈곤ㅇ르 벗어나 한창 산업화 될 무렵
미국 언론들은 앞다투어 “한강의 기적”이니, “제 2의 일본”이니 또는
“한국인이 몰려오고 있다”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때 우리는 특
별한 생각없이 기뻐만했다. 사실 이는 기적이 아니고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한 노력의 결실이며 이는 그들 미국인들이나 다른 선진국 국민들이 편안히
먹고 즐길 때 우리는 허기를 달래가며 근면하게 일했으며 월남전 참전의 목
숨과 바꾼 대가요, 중동의 뜨거운 사막에서 땀 흘린 대가요, 특히 사업에
종사하는 기업가들도 자기 나이 이상으로 늙어 보일 만큼 밤낮으로 일한 당
연한 노력의 결과이다. 게다가 대다수 미국 농민들은 한국이 미국의 잉여농
산물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라는 것을 모른다. 이는 베풀고도 생색내지 않는
우리의 겸양 탓이 아니라 홍보 부족이 더 큰 이유이다. 어쩌면 “로비”
활동 부족인 지도 모른다. 아직도 로비활동이라는 것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정부고관이 연방정부 수도인 워싱턴에 황망히 달려가서 저명인사와 악수
하고 사진 찍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한국판 로비”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이는 미국의 정책 결정과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서 나온 석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은 철저하게 평범한 유권자들의 소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그들이 자기 지역 출신 의회 의원들에게 편지 전
보, 전화 등을 통해 그 의원들이 의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때 가장 강력하
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의 대미 홍보활동이나 또는 로비활동이라는
것이 어떠해야하는 지는 자명하다 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런 미국사회의
바닥 홍보활동을 위한 세계 어느 나라도 가지고 있지 못한 훌흉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의 슬픈 역사의 소산이지만 미국에는 아직도 약 2백
만명에 달하는 6.25 참전 용사들이 있다 한다. 가끔, 미국의 어떤 회합이나
파티 석상에서 만나는 그들은 지금도 “김치, 판문점” 등의 한국 말을 또
렷하게 기억하며 대부분이 자기 조국 다음으로 한국을 아끼는 찬한파 인사
들이다. 대부분이 60대 후반인 그들은 연륜이나 경륜으로 보아 모든 분야에
지도급 위치에 있는 부누들이 맣다. 그들의 대부분은 전쟁의 폐허에서 그
들이 피땀흘려 목숨 걸고 싸운 대가의 보람을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자랑하고 싶어한다. 만일 우리 정부가 그들의 소재를 파악해 전쟁의 폐허속
에 열심히 일한 덕에 이제 이만큼이라도 살게됐다는 화보와 함께 국가원수
의 이름으로 그들의 지난날 노고에 충심으로 감사한다는 개인적인 편지 한
장씩을 보냈다고 상상해보자. 아마 그들은 감격해서 눈물이라도 흘릴것요
나아가서 한국이 곤경에 처해 미국의 이해나 도움이 필요할 때 성심껏 도와
주고 싶을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들에게는 대개의 경우 아직도 년만한
부무님이 상아 계실 수도 있고 부인·아들 딸·며느리 사위도 있을 것이며
손자 손녀는 곧 유권자가 되리라. 따지고 보면 한국편이 돼 줄 수 있는 유
권자의 수는 엄청나게 많을 수 있다는데 우리 자신도 놀랄 것이다. 그들이
만약 자기네 지역구 의원들에 한국에게 불리한 입장을 취하지 말라고 편지
등을 보낸다고 상상해 보자. 아마 그 효과는 가히 엄청날 것이다. 비용도
우편료만 들으면 되니 가장 경제적인 로비 및 홍보 활동이며 고마운 옛 친
구에게 어려운 때의 고마움을 전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충
분하다. 누가 이일을 불법이요 음성적인 로비활동이라 하겠는가. 이런 맥락
에서 본다면 6.25 전쟁직후인 1955년 10월 맨처음 미국 오리건 주 남쪽 작
은 도시에 살던 해리 홀트 씨가 8명의 혼혈고아 입양부터 시작한 해외 입양
아 수가 전세계에 살던 근 13만4천여명에 달한다는데, 그들의 효과적인 활
용방법과 아울러 6.25 참전 16개국 용사 들, 한국에 근무한 적이 있는 주한
미군 용사들, 그리고 평화봉사단원으로 나름대로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다
고 자부하고 있는 아들을, 실로 우리 고유의 인적 자산으로 귀하게 여겨 적
극적으로 활용해 보지 않겠느랴고 제안한다면 지난친 논리의 비약일까? 아
마, 그들은 기꺼이 우리의 훌륭한 민간외교관이요, 우리 제품의 변함없는
애용자가 되는 것을 마다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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