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안전운임제 재도입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가운데 제도 찬반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는 기존 안전운임제에서 실효성을 높여 재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 측은 시장 자율성을 더 강조한 표준운임제 도입을 고수하고 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기사들의 적정 운임을 법으로 보장해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방지하고 교통 안전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던 제도다. 화주→운수사, 운수사→차주 사이에서 각각 안전운송운임, 안전위탁운임을 부과하고 위반 시 제재한다. 이 제도는 지난 2020년부터 3년 간 한시적으로 시행된 후 2022년 12월 말 일몰됐다.
국토교통부는 후속작으로 표준운임제를 도입할 예정이었으나 관련 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표준운임제는 기존과 동일하게 컨테이너, 시멘트 2개 품목에서 운수사-차주 간 위탁운임을 의무 부과하지만, 화주와 운수사 간 운임을 강제하지 않으며 화물차주의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넘어가면 운임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형태다. 화주는 운수사에 운임 지급 의무가 없어지기 때문에 더 저렴한 운임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안전운임 법안 4건 무더기 발의
제도가 일몰되고 1년 반 정도 지난 올해 하반기부터 정치권에서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과 홍기원 의원, 윤종군(더불어민주당)·황운하(조국혁신당) 의원, 윤종오(진보당) 의원이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골자로 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정감사가 끝난 11월부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화물연대는 지난 10월10일 서울 용산구에서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운임제 재도입을 주장했다. 10월19일에는 전국 16개 지역본부에서 동시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일몰 조항 없는 안전운임제 재도입 ▲안전운송원가 고시 품목과 차종 확대 ▲안전운임위원회 대표위원 간 동수 보장 ▲안전운임의 구체적 현장 적용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위한 부대조항 법 근거 마련 등을 화물 운임제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지난 3월에도 같은 이유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화물연대 측은 “안전운임제 일몰 후 화물운송 산업 현장은 물량 감소와 운임 하락으로 노동자들이 극심한 소득 감소를 겪고 있으며, 위험 운행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표준운임제는 화주 책임과 처벌 조항 삭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며, “(7월) 여당 김정재 의원이 발의한 법안 또한 지입전문회사에 유리하게 지입제 조항을 개정하고 화물노동자의 차량 소유권을 보호하는 조항을 대거 삭제한 구조개악”이라고 비판했다.
화물연대는 이후 11월2일 열린 대규모 정책대회에서도 ‘안전운임제의 제도적 확대 입법 추진, 점진적 지입제 폐지 및 화물노동자 보호 방안 마련’ 등을 과제로 발표했고, 이어 11일엔 국회의사당 앞에서 화물노동자 100명이 삭발을 단행하는 등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안전운임제 재도입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면서 화주(수출기업)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난 9월 한국무역협회(KITA)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출기업의 절대 다수인 91.4%는 안전운임제가 재도입되면 운임이 최소 10% 이상 오를 것으로 추정하며 물류비 부담이 가중 될 거란 우려를 표했다.
설문에 응답한 498개 수출기업 가운데 72.5%(매우 반대 18.3%, 반대 54.2%)는 재도입 반대 의사를 밝혔다. 또한 72.7%는 안전운임제가 시행되면 수출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으며, 안전운임제를 찬성한 기업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인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기존에 시행된 안전운임제가 운전자의 사고율을 낮췄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19.5% 29.5%는 ‘전혀 효과 없음’, ‘효과 없음’이라고 답했으며, 36.1%도 ‘잘 모르겠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2년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앞두고 화물연대와 정부 측 쟁점이 된 사안도 교통 안전 개선 효과였다.
한국교통연구원의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 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를 바탕으로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일평균 12시간 이상 운행을 하는 컨테이너·시멘트 운송 차주의 비율과 월 평균 업무시간이 모두 줄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제도 시행 이후 안전운임제 대상 차량이 포함된 화물차의 교통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는 되레 늘었다”며 “또한 2021년 화물차 과적 단속 건수(사업용 특수자동차 기준)는 7497건으로 제도 시행 전인 2019년 7502건과 얼추 비슷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안전운임 대상 견인형 화물차의 사고 건수는 2019년 690건, 2020~2022년 각각 674건 745건 679건(평균 699건)을 기록했다. 안전운임제도가 일몰된 2023년에도 685건의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집계돼 이 제도와 교통사고가 무관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수출기업들은 지입제 등 화물운송 시장의 폐단이 근절돼야 한다는 점엔 한목소리를 냈다. 건전한 화물운송 시장 조성을 위한 선행 조건을 묻는 질문에 33.2%는 지입제 폐단 근절 등을 통한 근본적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지입제는 개인 화물차주가 자신의 화물차에 운송회사 명의의 영업용 번호판을 달고 영업하는 대신 그 대가로 지입료를 내는 화물차 제도를 말한다. 도로 안전을 위해서도 다단계 화물운송 시장 구조 개선 정책이 필요하다는 응답(37.2%)이 나왔다.
여권 “운임제 시행이 되레 대형운송사에 도움”
지난 10월24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엄태영 의원은 5개 운송사에서 제출받은 실적 자료를 바탕으로, 화물차주의 소득을 보장해준다는 취지로 도입된 안전운임제가 되레 대형 운송사들의 이익 도모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했다.
엄 의원에 따르면,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현대글로비스 코레일로지스는 안전운임제 시행 전보다 시행한 3년 동안 100억원에 달하는 마진(이윤)을 더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운임제 도입 전인 2019년 1510만원이었던 운송사들의 1000TEU당 마진은 2020년 1740만원, 2021년 1810만원, 2022년 1950만원으로 매년 상승했다. 도입 전후를 비교하면 29% 오른 셈이다.
(해사물류통계 ‘5대 대기업 운수사의 안전운임제 시행 전후 운임료 내역’ 참조)
엄 의원은 특히 운송 물량이 많은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이 수혜를 봤다고 지적했다. 자료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의 운송 마진은 2019년 1090만원에서 2022년 1680만원으로 55% 급증했고, 롯데글로벌로지스는 1700만원에서 2430만원으로 43%, 한진은 1500만원에서 2040만원으로 37% 올랐다.
반면 연간 운송량이 작은 코레일로지스는 2019년 3320만원에서 2022년 3290만원으로 되레 0.8% 감소했다. 또한 현대글로비스는 제도 시행 전엔 마진을 남겼지만 정부가 화물 운송을 중개하는 포워더(국제물류주선업)로 분류해 운송운임과 위탁운임을 동일하게 책정하도록 지도하면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노마진 정책을 펼쳤다.
엄 의원은 “운송 마진률을 일률적으로 보장한 안전운임제 때문에 규모가 큰 대형 운송사일수록 더 많은 이익을 챙겼다”며 “대기업을 적대시하는 연대 측이 오히려 대기업을 배불려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화주→운수사 운임과 운수사→차주 운임을 모두 강제하다 보니 운수사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마진(약 11.7%)을 일률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문제란 주장을 펼쳤다. 이날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운임제도 혹은 택배 종사자 권익을 보호하자는 주장은 영세 종사자들을 위한 것”이라며 지난 운임제도의 허점에 동의했다.
운송업계에선 이 같은 주장이 현장과 동떨어진 실적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는 반응이다. 한 운송업계 관계자는 “실제로는 영세 운송사들이 더 많은데 자회사 물량이 많은 대기업의 실적만으로 판단하는 건 현장과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운송운임에 운송사가 들이는 비용을 제대로 반영했는지도 의문이 든다”면서, “운송사 마진은 단순히 운송운임에서 위탁운임을 뺄 것이 아니라 이 운송 비용을 제외하고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컨테이너화물 운송시장에서 전체 화물운송운임의 90% 이상은 차주에게 위탁운임형태로 하불되고, 나머지 10% 수준에서 운송사의 몫이 결정된다. 여기서 운송사에게 배분된 10%도 온전히 운송사의 수익이 아니라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들어간 종합 운영 비용으로 대부분 빠져 나간다. 운송사의 몫은 차주 원가, 차주 소득, 타이어비, 유류비 등 기타 운영 비용과 더불어 운송사 이윤과 원가를 모두 포괄한 개념이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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