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18 13:47
"제발 좀 사람 살게 해주세요."
17일 오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다 해충인 '깔다구'가 주택과 횟집 등 생계터전을 덮쳐 수년째 고통을 겪고 있는 경남 진해시 웅촌동 괴정.수도마을 주민들은 이날 현장을 찾은 강무현 해양수산부 차관에게 분노어린 호소를 털어놓았다.
강 차관이 김태호 경남지사와 김학송.김영덕 국회의원 등과 함께 깔다구 사체가 바닷물에 쌓여 악취가 진동하는 신항 준설토투기장 침출수 배출구 쪽에 들어서자 몰려온 어민들은 "해양부 간부들에게 이 썩은 바닷물을 한사발 마시게 해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며 격앙된 감정을 노출했다.
이날 행사를 주도한 진해 출신 김학송 의원은 괴정마을 수협어판장에서 강 차관을 세워놓고 "국책사업 신항만 공사를 한다고 이곳 주민들은 쥐꼬리만한 보상비 받고 땅을 내놓았는데 돌아온 것은 깔따구 피해요, 환경피해"라고 강조한 뒤 "깔다구 때문에 거미, 제비, 잠자리, 철새까지 마을로 몰려 오는 등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준설토 투기장과 신항 공사장, 해안가 숲 곳곳에는 하늘에서 땅으로 길게 이어진 깔따구 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낮에는 숲이나 돌무덤 등에 숨어 있던 깔다구들이 밤이 되자 수만마리씩 떼를 지어 전깃불을 보고 마을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저녁만 되면 이같이 몰려드는 깔다구 떼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주민들은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과 같다해서 '용오름 현상'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진해시의회 모 의원은 "깔따구의 증식 속도가 너무 빨라 최근까지 사체가 준설토투기장 바다 위를 새카맣게 물들인 적이 있었다"며 "습도가 높은 날에는 깔다구떼들이 더 극성을 부려 주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수도마을 일부 여성 주민들은 강 차관이 도착하자 깔다구 사체가 가득 담긴 그릇을 내보이며 "제발 좀 살게 해달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신항 명칭을 둘러싼 지역 주민들의 섭섭함도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수도마을 주민 대표는 "신항 땅 대부분을 내놓은 진해 시민에게 돌아온 것은 깔다구 피해로 생계터전을 잃은 것 뿐"이라며 "그런데도 해수부는 신항명칭을 '부산신항'이라고 기정사실화해 진해시민을 무시하고 있다"고 몰아 세웠다.
김태호 지사는 "경남도는 그동안 수십차례에 걸쳐 신항 명칭문제와 해충 피해대책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인 뒤 "오늘 현장을 방문한 강 차관 등이 진해 시민의 고통을 제대로 파악, 정부측에 전달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학송 의원은 "해양부가 신항 명칭 등 신항 관련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주민들은 공사 저지 등으로 맞서는 등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주민들의 고강도 불만을 차분하게 청취하던 강 차관은 "현장에 와 보니 주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며 "빠른 시일 내 성실하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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