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04 11:41

유엔, 해상화물 운송협약 초안 마무리

기존 협약과 많이 달라 선사ㆍ하주등 적극적 대책 요구돼


지난해 봄부터 협약초안에 대한 심의작업을 진행해온 유엔의 해상화물 운송협약이 지금까지 주요 쟁점에 대한 논의를 끝내고 초안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KMI에 따르면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는 1996년부터 해상화물의 국제운송에 있어 현행 거래관행과 기존 법률 간의 차이점을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 2002년부터 해상화물 운송협약 제정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동 위원회는 각국의 기존 국내법과 국제협약이 여러 부분에서 현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 같은 문제점이 결국 화물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할 뿐 아니라 거래 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UNCITRAL은 이 같은 문제점의 해소를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왔다. 결국 동위원회는 기존협약과 차별되고, 내륙과 항공운송에관한 규범을 참고로 한 새로운 협약을 제정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같은 협약 제정작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국제 운송법 실무 작업반(working group)’을 구성, 2002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원화된 기존협약
유엔이 새로운 협약을 제정키로 한 것은 기존협약의 경우 제정된 지 20여년이 지나 복합운송과 같은 새로운 제도와 전자선하증권의 발행 등 환경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더욱이 기존협약은 선사의 책임한도규정을 1978년 이전 기준에 맞추고 있어 그 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동시에 받아왔다.
선사와 하주가 선박을 이용하여 화물을 운송하는 경우 서로에게 요구되는 권리와 의무 등 책임관계를 규정한 것이 이른바 해상운송규범이다. 이 규범은 국내법과 국제협약으로 구분되는데, 해운산업의 경우 국제적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이에 관한 다양한 국제협약이 제정됐다. 또 해운국과 하주국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 같은 국제협약을 비준하거나 임의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를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상법 제5편 해상편(제789조의 2이하)에 이와 관련된 규정을 두고, 선사와 하주의 책임관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국제협약은 제정된 지가 상당히 오래돼 새로운 기술발달과 환경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특히 복합운송이 일반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선하증권을 전자적인 방법으로 송부하고 있는 현실을 따라 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그러나 기존협약이 갖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제정주체가 국제해법회(CMI)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로 이원화돼 있는 점이다. 즉 국제해상화물운송규범은 CMI의 헤이그-비스비규칙과 UNTAD의 1978년 함부르크규칙 체제로 양분돼 있다. 이 협약 가운데, 헤이그-비스비 규칙은 해운선진국의 입장이 비교적 많이 반영돼 선박소유자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돼 있는 반면, 함부르크규칙은 이 같은 기존 시스템에 반기를 든 이른바 당시 비동맹그룹 등이 중심이 돼 제정했기 때문에 개발도상국과 하주의 이익이 더욱 고려된 협약이다. 따라서 이 같은 문제점 때문에 국제해상운송규범의 현대화와 통일화가 절실하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유엔의 국제운송법 작업반은 2000년부터 사무국에서 작성한 협약 예비안을 토대로 지금까지 2차례에 걸쳐 협약 제정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협약 예비안은 총 17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제1차 작업반 회의에서 논의를 효과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쟁점을 8개항으로 정리했다.
이 같은 쟁점 가운데, 화물의 Door-to-Door 원칙의 수용여부, 항해상 과실과 화재면책의 폐지여부, 운송인의 책임한도 등이 주요 현안이다.
이 같은 쟁점은 작업반 회의에서 어느 정도 입장이 정리되겠지만 협약초안이 작성된 이후 본안 심의과정에서도 여전히 현안으로 부각될 것이 확실하다. 그만큼 어떤 안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해운국과 하주국의 이해범위가 크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작업반은 지금까지 개최된 2차례의 회의에서 주요 쟁점에 대한 1차적인 논의를 거의 끝냈으며, 금년 3월 회의에서 협약예비초안의 심의를 모두 마친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 양협약 비준없이 혼용
우리나라의 경우, 상법 제5편 해상편 ‘물건운송’ 규정에서 운송의 종류를 비롯, 해상운송인의 책임과 송하인의 의무 등에 관한 사항을 자세히 두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송하인은 당사자 간의 합의 또는 선적항의 관습에 의한 ‘때와 장소’에서 운송인에게 운송물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운송인은 수령한 물건을 주의의무를 다해 운송한 다음, 양륙항에서 수하인에게 인도해야 한다. 이 같은 기본원칙을 위반하는 경우 계약 당사자, 즉 운송인과 송하인 등은 법률에 정해진 바에 따라 일정한 손해배상을 부담하는 형태로 상법이 짜여져 있다.
우리나라의 이 같은 상법 해상편 규정은 앞에서 헤이그-비스비 규칙과 함부르크 규정을 정식으로 비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규정을 혼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상법에 규정하고 있는 운송인의 책임한도는 국제협약의 규정보다 낮다. 즉, 화물이 멸실ㆍ훼손된 경우 운송물의 매포장당 또는 선적당위당 500SDR(특별인출권)의 금액을 한도로 운송인의 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 이 규정은 에이그-비스비 규칙에서 정한 해상운송인의 책임한도인 화물 포장당 666.67SDR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또한 우리나라 상법은 함부르크 규칙에서 인정하지 않은 항해과실과 화재면책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는 헤이그-비스비 규칙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상법이 이도저도 아닌 규칙을 혼용하는 바람에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해상법 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상법의 해상편을 헤이그-비스비 규칙으로 통일하자고 주장해왔다.
국제해상화물 운송협약 제정작업은 금년 3월 24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제 11차 실무작업반 협상이 끝나면, 사실상 초안 심의작업이 종료되는 셈이다. 협약제정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사무국은 3월 회의 결과를 7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되는 UNCITRAL회의에 상정해 승인받은 후 본격적인 협약심의작업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의 회의가 협약의 모양을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이었다면, 앞으로는 각국이 자국의 이해를 반영하는 치열한 협상이 기다리고 있다.
KMI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국제협상에 대비한 사전대책 마련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 먼저 협약 연구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번 협약은 전통적인 해상운송법에서 벗어나 전자문서의 효력 등 신기술의 진보를 법규범에 수용하는 사항 등이 포함돼 있으므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참여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의 협약 대책안을 사전에 마련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해상운송인의 책임한도, 항해과실과 화재 면책 특권 등을 둘러싸고 우리나라 선주와 하주간에도 혼란이 야기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이 협약은 운송인과 하주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할 사항이 많으므로 양자의 의견을 수렵하는 데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와함께 협상 대표단을 지속적으로 파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2회에 걸친 작업반 회의에 1회 참석에 그치는 등 이 협상작업에 대한 참여가 저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국익을 국제협약에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서는 초기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따라서 연 2회 열리는 이 협상에는 해양수산부와 외교통상부의 관계관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고, 학계, 업계, 관련 연구기관 등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KMI는 지적했다.
한편 국제해상화물 운송협약의 제정작업에 보조를 맞춰 우리나라 상법 해상편의 개정필요성도 검토해야한다.
KMI에 따르면 국제해상운송협약이 제정되는 경우, 이를 국내에서 시행하기 위해서는 상법(제5편 해상편)의 개정이 이뤄져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법해상편의 경우 1962년 상법 제정이후 1991년의 한 차례 개정에 그쳐 해상운송인의 책임한도 인상, 복합운송에 관한 규정 신설, 전자문서의 효력 인정 등 현실적인 변화를 수용할 필요성이 있다. 때마침 한국해법회를 중심으로 해상편의 개정작업안을 마련하고 있으므로 정부와 함께 이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다만 이 같은 상법 개정작업은 관련업계의 폭넓은 의견 수렴과 동의를 전제로 추진돼야 하며, 결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KMI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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