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8-23 11:00
화재와 운송인의 면책
- 서울고등법원 2002. 6. 14 선고, 2002나 9501 구상금 -
※ 사실관계
원고는 소외 B맥주 주식회사(이하 'B맥주'라고 한다.)와 맥주에 대하여 적하 보험계약을 체결한 보험자이고, 피고는 B 맥주와 이 사건 적하(즉, 맥주)를 녹동항에서 성산포항까지 운송하기로 하는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한 해상운송인이다. 피고는 해상운송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이 사건 적하의 운송을 N운수와 계약을 통하여 운송하기로 하였고, N 운수는 자신의 임차 선박(이하 '이 사건 선박' 이라고 한다.)에 이를 싣고 성산포항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도착 당시 폭풍주의보가 발효되어 있어, 이 사건 선박에서 적하의 양하는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이 사건 선박 우현 옆으로 어선들이 밧줄로 묶여 있었다. 그러던 중, 우현 옆에 묶여 있던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위 불길이 이 사건 선박으로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하여 이 사건 적하인 맥주가 전부 멸실되었다.
이에 B맥주는 원고에게 적하보험계약에 기하여 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하였고, 원고는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B맥주가 가지는 이 사건 적하에 대하여 가지는 모든 권리를 대위 취득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피고는 위 화재는 상법 제788조 제2항에 의하여 면책이므로, 이러한 청구는 부당하다고 항변하였다.
Ⅰ. 서 설
해상 운송은 망망대해를 운송하는 것이므로, 그에 따른 위험의 발생 역시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위험 역시 해상 운송인이라면 그 분야의 전문가이므로, 원칙적으로 그 책임이 있으나, 해상운송인의 전문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위험 역시 발생할 여지가 있다.
본 사안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화재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 사안의 쟁점 역시 화재로 인하여 화물이 멸실된 경우 운송인이 면책되는지 여부 즉, 상법 제788조 제2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양 당사자의 주장 또한 엇갈리고 있으며, 판례 역시 위 상법 규정의 개정에 따른 해석을 놓고 원심과 항소심에서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화재로 인한 경우의 보험자의 면책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고, 개정 상법의 내용을 알아본 후에 개인적으로 느낀 본 판결의 의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Ⅱ. 화재에 대한 운송인의 면책
1. 개 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법은 '운송인은 선장, 해원, 도선사 기타의 선박사용인의 항해 또는 선박의 관리에 관한 행위 또는 화재로 인하여 생긴 운송물에 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면한다. 그러나, 운송인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화재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함으로써 화재에 대하여 운송인의 면책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화재라고만 명문화 함으로써, 그 해석에 대한 견해가 갈리고 있으며, 본 사안에서 원고 및 피고의 주장이 상반된 것도 이에 기인한 것이다. 그 주장 요지는 항을 바꾸어 살펴본다.
2. 원고의 주장 - 선박 내에서의 화재만 해당
원고는 '상법 제788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운송인의 면책사유인 화재는 선박 내부에서의 화재에 국한된다'라고 주장한다. 즉, 외부로부터 전이될 수 있는 화재는 충분히 예측하여 진화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사유까지 면책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3. 피고의 주장 - 화재의 유형은 무관
한편 피고는 본 조문이 예전에 '선박에서의 화재'라고 규정하다가 개정되어 단순히 화재라고만 규정하게 된 것은 헤이그ㆍ비스비 규칙을 받아들여 개정하면서 면책 범위를 보다 넓힌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단서 규정에서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경우에는 면책을 부인함으로써, 분명 화재의 태양은 무관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천명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4. 판례의 태도
한편 판례는 그 판결요지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상법 제788조 제2항이 '선박에서의 화재'를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다가 헤이그ㆍ비스비 규칙을 받아들여 단순히 '화재'로 개정하였는데, 이는 선박 내에서의 화재나 다른 곳에서 옮겨 붙은 화재가 면책사유로서의 타당성을 동일하게 수반하고 있으므로, 이를 구별할 필요가 없고, 명문상으로도 그 구분이 없어졌으므로, 단순히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 운송인이 면책된다고 보아야 한다.' 라고 판시함으로써 상법 개정의 의의 등에 부합한 피고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Ⅲ. 사 견
원고는 상법 개정 이전의 판례 및 상법 규정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해상에서의 화재는 선박 내에서 발생한 화재든 선박 외부에서 옮겨 붙어 발생한 화재든 화재가 가진 위험은 동일하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별개로 취급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헤이그ㆍ비스비 규칙을 수용하여 현재 상법상 규정 역시 단순히 '화재'를 운송인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시점에서 원고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견지에서 피고의 주장을 인용한 법원의 판단은 개정 상법의 진의를 살핀 정당한 판결이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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