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1-07 17:24

꿈꾸는 사랑의 언어-물고기 자리

비디오 가게의 젊은 여주인과 단골 손님의 사랑...얼핏보면 흔한 사랑이야
기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누구에게나 특별하게 다가온다. 영화 〈물고
기자리〉의 주인공 애련에게는 더욱 그렇다.
애련은 비디오 숍을 경영한다. 그녀의 친구는 영화, 그리고 수족관의 열대
어 한 마리뿐. 손님 한사람, 한사람에게 자상하게 비디오를 골라주며 외로
움을 잊으려 하는 애련. 그런 그녀에게 손님 동석이 다가선다. 프랑스 영화
를 좋아하며 어딘가 남과 다른 친근함을 풍기는 그. 어느새 그녀의 하루는
그에 대한 기다림으로 채워진다.
동석과 가까워지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애련. 그는 음악을 작곡하며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중성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음반 회사에서
퇴짜를 맞고 있다는 그. 함께하는 시간이 잦아지고 나누는 이야기가 깊어질
수록 애련은 점점 더 그에게 몰입하는 자신을 느낀다. 자신의 생일에 커플
시계를 사서 그에게 선물하는 애련. 동석은 그녀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 사
랑과 그리움의 노래를. 애련은 행복에 빠지며 그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오랜 망설임 끝에 마침내 사랑을 고백하는 애련. 하지만 동석의 반응은 뜻
밖이다. 그에겐 이미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으며 애련과 자신은 단지 마
음이 맞는 친구일 뿐이라고. 동석과 그의 연인의 다정한 모습 뒤에 애련의
쓸쓸한 얼굴이 보인다. 그가 바라보지 않아도 너무나 절실한 사랑이기에 쉽
게 그사랑을 접지못하는 애련. 그녀의 일상은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 그를 위해 신선한 주스를 사고 그의 애인을 만난다.
“당신은 동석씨가 아니라도 되잖아요. 근데 나는 그사람이라야 해요. 제발
그사람을 떠나주세요”
혼자서 바라보는 사랑이기에 애련은 더욱 절망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이 ‘애련’역의 영화배우 이미연의 연기이다. 머
리를 질끈 묶고 청바지 차람에 운동화를 신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늘 만나는 비디오 가게의 여주인이다. 전혀 배우 자신과 배역의 갭을 느낄
수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이미연은 영화 내내 우리를 사로잡는다. 가게를 열
고 손님을 만나는 무심함에서, 혼자서 지나가는 연인을 바라보는 쓸쓸함,
그를 만나고 기다리며 지우지 못하는 얼굴의 동요까지 이미연의 연기는 어
떤 멜로의 히로인보다 넓은 감정의 폭과 섬세한 결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녀의 사랑이 길을 잃으면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게 될 때 몇
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온 몸이 젖은채로 길을 걷는 장면, 그의 방바닥에
깨어진 유리파편들을 밟고 피를 흘리면서도 감각을 인식하지 못하는 장면
등은 애련의 슬픔과 절망이 그대로 전달되는 이미연 연기의 절정이다. 한국
여배우 중 가장 큰눈을 가진 여배우. 가장 맑은 웃음을 가진 여배우로 꼽
혀오던 그녀가 그 큰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픔의 여왕으로 탄생했다.
쌀쌀한 가을날, 조금은 특별한 사랑이야기, 그러나 슬픈 사랑이야기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기쁨도 주지만 사랑 때문에 우리
는 너무 많은 아픔을 겪는다. 하지만 아픔의 모양은 각기 다른 법. 언제 우
리에게도 이런 사랑이 다가올 지도 모른다. 그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생
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애련은 사랑이 주는 아픔과 상처까지 다 받아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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