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3 10:06

여울목/ 지역주의에 매몰된 해사법원 설립 이슈

최근 해사법원 설립이 해운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운 5위, 조선 1위, 무역 7위의 경제대국이자 연간 1만척 이상의 선박들이 드나드는 부산항을 가지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해상사건을 외국에서 처리해 왔다. 국내 해사분쟁의 90%가 영국 등 외국 법원에서 다뤄지면서 연간 3천억원의 소송비용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해사법원이 설립되면 해상사건의 전문적인 판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 이후 창원지법에서 이 선사의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BBCHP)을 가압류한 일이 있었다. BBCHP 선박을 사선으로 인정하는 해운업계의 일반적인 인식과 동떨어진 결정이었다. 해사법원 설립으로 법관의 전문성이 강화된다면 이 같은 사례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해상법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도 한 효과다. 가까운 중국은 10개 해사법원과 34개 해사지원에 570명의 전담판사가 배치돼 연간 1만6000여건의 해상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해상법 전문교수가 200여명, 해상변호사가 1000여명에 이를 만큼 법률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중국이 새로운 해상법 중심지로 부상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70여명 남짓한 해사전문변호사가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해사법원 설립 논의가 무르익고 있는 상황에서 본원 소재지를 둘러싼 지역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부산과 인천은 정치인들을 내세워 해사법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건 부산이다. 부산을 지역구로 하는 김영춘 의원과 유기준 의원은 지난 2월과 3월 해사법원을 부산에 설치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부산이 한국 해운산업의 허브라는 게 이유였다.

선수를 빼앗긴 인천은 정유섭 의원(부평갑)을 내세워 맞불을 놨다. 정 의원이 3월 말 발의한 법률안은 국내 해사사건의 80% 이상이 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해사법원을 인천에 두도록 했다.

지역 갈등이 깊어지자 해법학회는 수도권을 대표해 서울에 1심과 2심을 담당하는 해사법원 본원을 두고 부산과 광주에 지원을 두는 내용의 중재안을 제시했다.

해사법원 설립 논의가 한국해운의 건설적인 발전은 도외시된 채 지역주의와 포퓰리즘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항만지역에 해사법원을 설치하는 건 선박가압류나 유류오염사고 선박충돌 화물무단반출 등 해사물류 분쟁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법률 수요자가 물리적인 거리의 제약으로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점도 간과돼선 안된다. 해사법원의 이용자인 선사나 물류·화주기업, 해상전문변호사 등의 지역적 분포를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국제물류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내 포워더의 75%가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다.

아울러 가정법원이 전국 6개 도시에 설치돼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삶과 밀접한 가족 내 분쟁을 관할하는 사법기관이기에 전국 각지에 설치해 원활한 법률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해사법원은 해운항만 분쟁이나 국제운송계약, 기업 파산, 선박건조 및 수리 등의 다양한 소송을 관할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특정지역 한 곳에 설치하는 것보다 주요 지역에 다양하게 분포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치·지역주의적인 접근, 기계적인 형평성보다 수요자와 법률서비스 이용자, 한국 해운항만물류산업과 국내 해상법 발전의 관점에서 해사법원 설립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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