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바다와 함께 해왔다. 바다를 잘 경영한 국가는 절대강국이 되어 세계를 호령하며 국부를 축적했다. 본지 편집위원인 청운대학교 김학소 교수는 그의 저서 <해양산업 부국론>에서 오늘날 세계 해양산업의 규모는 매년 급속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0년에는 14조달러(약 1경559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 선진국은 해양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연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체계적인 글로벌 시스템을 만들어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해양산업은 정부의 소극적인 정책으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단 평가다. 특히 해양력은 세계 12위 규모로 평가되지만, 세부 산업별로 들여다보면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어 해양강국으로서의 성장이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한진해운의 파산으로 한국 선대 규모가 줄고, 국내 항만을 이용하는 노선이 감소하면서 시장의 입지가 좁아져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다 글로벌 선사들 간 협력이 강화돼 해운사간의 물동량 확보 경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본지는 지난달 내우외환의 어려움에 빠진 한국해양, 그 중에서도 글로벌 해운시장의 M&A(인수합병) 가속화로 직접적인 위기에 직면한 한국해운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망했다. 취재는 국내 해운산업에서 실무와 이론을 두루 겸비한 다수의 해운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진행됐다.
▲자료 : 해양산업 부국론
한국해운 ‘신뢰’를 잃었다
한국의 해운산업은 한진해운 파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한국해운의 국제신용도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됐다는 평가다. 지난 2월 월마트가 한국 해운사와 다시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진해운 때문이 아니라, 한국정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1990년대부터 한진해운과 거래를 해왔던 월마트는 연간 해운 물동량 10% 가량을 한진해운에 맡겨왔다. 운임으로 따지면 3000만달러(약 350억원) 규모로 파악된다. 이는 루머로 일단락 됐지만, 해운업계 내에서도 한국해운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한진해운 사태로 발발된 한국의 국제신용도 하락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정부가 한진해운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 비춰볼 때, 한국선사는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국제적인 시각이 존재하며, 이로 인해 선사들은 화주와 장기계약을 맺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관측된다.
극단적으로는 한국해운의 신뢰회복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해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진해운 정도 규모의 선사가 등장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 정도 여력이 있는 선사가 없다는 것. 한진해운이 보유했던 수송력, 네트워크, 영업력 등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A 교수는 “한진해운은 역대 어느 해운사도 갖지 못했던 육해공을 망라하는 좋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고, 서비스 만족도가 글로벌 최고 수준이었다”며 “이를 견제한 글로벌 해운사들이 한진해운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해운 ‘정부’ 역할이 중요
국제신용도가 떨어진 한국해운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정부가 해사(海事)산업이라는 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해운과 조선, 금융 등을 함께 연계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공생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동시에 해양 정책을 일원화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방식은 대통령직속 ‘국가해양위원회’를 조직하거나, 해운과 조선을 산업통상자원부로 묶는 등 다양한 방식을 제안했다. 기타 의견으로는 청와대 내에 해양 또는 물류와 관련된 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업무를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있다.
궁극적으로 정부의 정책 일원화로 각 산업간 시너지 효과가 발생해야 한다는 것. 일본의 경우 선사와 화주의 유대관계가 잘 형성돼 있어, 국제입찰을 하더라도 자국 선사에 유리한 방향을 제시한다. 그런데 연간 벌크화물 수입량이 많은 우리나라의 한국전력이나 포스코의 경우 원가절감을 이유로 외국선사에 운송권을 넘기고 있다. B교수는 “한전의 유연탄 수입량이 연간 1억3천만톤 정도 되는데, 국내 해운사가 운송하는 비율은 10~20% 수준이다. 일본은 자국선사에 80~90%의 물량을 몰아주는데, 우리나라는 각 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며 “대다수 해운 강국은 해운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인식해 자국선사를 이용하는 비율을 높이기 위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구체적인 전략이 없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해운산업 육성을 위한 장기전략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국 독일 일본 덴마크 프랑스 등 각국의 정부는 자국 선사에 대대적인 금융 지원을 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정부가 조선업계에 지원한 수준의 절반이라도 해운업에 지원했더라면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제라도 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운산업 육성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이러한 기반산업을 중심으로 수출경쟁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중국의 알리바바가 유통과 금융, 물류 등 다양한 영역을 통합하며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구축해 전 세계에 다양한 상품의 B2B(기업간), B2C(기업과 소비자) 거래를 지원하는 사례를 들며, 우리나라 정부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크로스보더(Cross border) 전자상거래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여기서 창출되는 컨테이너 물동량도 빠르게 증가하는 까닭. 이 경우 컨테이너 선사는 앞으로 알리바바의 물류자회사인 차이니아오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LNG 벙커링 인프라 투자 서둘러야
부산항만공사가 LNG 벙커링 인프라 투자 결정 및 입지 선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 주요 항만당국은 LNG 벙커링 인프라 구축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으나, 부산항은 2015년 초 부산항 LNG 벙커링 인프라 구축 민간사업이 제안된 이후, 제안 입지에 대한 통항 안전성 논란 등으로 3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요코하마항을 LNG 벙커링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2016년 6월부터 12월까지 총 7차례 검토회의를 거쳐 로드맵을 수립한 상황이다. KMI(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요코하마항은 북미항로상 LNG 벙커링 거점의 측면에서 향후 부산항과 경쟁 관계를 형성할 일본 최상의 벙커링 거점이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이 항만은 일본 국가정책인 ‘국제컨테이너전략항만’으로 육성·거점화를 추진하고 있어 컨테이너선, 자동차운반선, 크루즈선 등 다양한 다수의 선박이 기항하고 있다. 또한 다수의 LNG 인수기지가 입지해 있어 기존시설 활용이 가능해 추가적인 벙커링 인프라(탱크 등) 구축이 불필요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도 국가보조금 정책 등에 따라 2015년 기준 1100척의 LNG 추진선박을 발주하고 벙커링 인프라 역시 장강, 시강, 대운하 및 연해지역에 지속해서 확충 중이다. 중국 수운국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1600척의 LNG 추진선이 운항을 하고 있거나 건조 및 발주된 상태다. 향후 저우산항의 LNG 벙커링 터미널은 동북아 벙커링 거점 경쟁에서 우리나라의 부산항, 일본의 요코하마항과 경쟁관계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부터 전 해역에서 선박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할 예정이어서 4년 이내에 해운·항만업계의 분주한 대응이 예상된다. 당초 선주들의 반대로 2025년부터 규제 강화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IMO가 해운·항만·조선·정유 등 관련업계와 논의한 결과 준비 기간으로 4년이면 적정하다고 판단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향후 LNG 벙커링은 기본적인 항만서비스로서 항만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부산항이 입지한 동북아 지역은 LNG 벙커링의 주요 공급 거점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전망되며, 아시아-유럽항로 벙커링 수요의 18%, 북미항로의 30%를 점유할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전문가는 “부산항은 다가올 한중일간 동북아 LNG 벙커링 공급 허브 경쟁을 대비해 입지선정작업의 조속한 마무리, 벙커링 터미널 개발 및 운영 전략 수립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해운기업 ‘종합물류기업’으로 거듭나야
한편 전문가들은 국내 해운기업을 위한 조언도 전했다. 무엇보다 해운산업을 단순 ‘운임수익사업’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기업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각 해운기업마다 ‘연구소’를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해운시황에 따른 투자유무를 결정해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운사는 불황에 연구부서부터 없앤다고 비판하며, 이 때문에 기본적인 예측능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요약하면 단순히 운임만 놓고 경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해운기업이 사업다각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해운사가 중점적으로 공략하는 국가의 현지 인프라를 직접 인수하거나 임대하는 형태로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 이를 통해 해상운임수익 외에, 기타 부가가치를 통한 수익성이 증대로 연결될 수 있다는게 요지다. 나아가 물류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종국에는 세계 각국의 철도나 창고, 육상기업 등을 인수하거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형태로 다양한 사업영역에 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노하우와 시스템이 갖춰지면 종합물류기업으로서의 입지가 넓어져 다양한 화주를 전략적으로 유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 C 교수는 “한진해운이 파산하기 전 많은 사람들이 해상과 항공 육상을 연결시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결국에는 통합물류서비스를 실현하지 못했다”며 “한진해운의 훌륭한 네트워크가 붕괴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고 설명했다.
선박대형화 추세에 따라 해운사가 스스로 소석률(선복 대비 화물적재율)을 낮춰야 할 필요성도 언급됐다. B 교수는 “소석률 100%를 채우겠다는 욕심 때문에 시장이 붕괴되고 운임덤핑이 발생한다“고 지적하며 ”이것이 해운업의 고질적인 문제다. 선박대형화를 그대로 두면 대부분의 업체는 버티질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나온 주장이 24노트(1노트는 1.852km/h)로 속도를 높인 1만3천TEU급 컨테이너선을 통해 해상운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자는 내용이다. 기존에 비해 빠른 속도를 장점으로 운송 시간이 중요한 고가 화물 시장을 노릴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다. 지난해 확장 개통된 파나마운하는 1만3천TEU급 컨테이너선까지 통과할 수 있다.
SM상선 출범 ‘평가’ 엇갈려
SM그룹의 계열사인 ‘SM상선’ 출범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국가를 위해서 잘됐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비관적으로 본다”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부산시와 SM상선이 힘을 합쳐서 제2의 한진해운을 만들겠다는 큰 비전을 갖고 있는데, 이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 냉철한 시각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일부 교수는 제2의 원양 컨테이너 정기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부 부산시 정치인의 주장은 ‘표’를 의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에선 서비스 품질로 경쟁하겠다던 SM상선이 본래 취지와 달리, 이미 시장에서 운임경쟁을 통해 물량을 수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복수의 전문가는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M&A(인수합병)를 통해 선대 규모를 확대하는 선사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애초에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던 터라, SM상선이 출범하는 것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해 KMI는 글로벌 해운사간 M&A가 증가함에 따라 현대상선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SM상선의 출범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자산을 100%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SM상선이 한진해운의 자산을 인수하며 제2의 원양 국적선사의 역할을 하면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것. 한국의 무역규모로 볼 때, 선대 규모가 부족하고 취항하는 노선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사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더불어 경쟁업체가 있으면 혁신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SM상선 김칠봉 사장도 최근 해운기자단 모임에서 SM상선의 설립 목적은 한국해운의 위상을 회복하고 화주들의 선택지를 다양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한국해운의 양대 원양선사 체계를 구축해 시장 안정성을 확보하고 국내 화주들이 화물 선적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혀 원활한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끔 한다는 목표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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