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고강도 압박수사가 진행되면서 현대로지스틱스(이하 ‘현대로지스’) 인수에 제동이 걸렸다. 롯데는 콜옵션 행사를 통해 현재 특수목적법인(SPC) ‘이지스일호’가 보유한 현대로지스의 지분 88%를 하반기까지 모두 인수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10일 롯데제과(4.5%)를 시작으로 롯데쇼핑(4.5%), 롯데로지스틱스(이하 ‘롯데로지스’)(13.9%), 롯데푸드(4.9%), 호텔롯데(17.4%), 롯데케미칼(21.9%), 롯데칠성음료(4.5%), 롯데리아(17.1%) 등 계열사 8곳을 통해 현대로지스의 지분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수사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압수수색에 따른 업무 마비로 인수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룹 내 물류기업인 롯데로지스의 ‘일감몰아주기’ 행태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총수일가의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사나 20% 이상인 비상자사다. 비상장사인 롯데로지스는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아예 없다. 롯데로지스의 최대주주는 L2투자회사로 45.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사실상 총수 일가의 지배하에 놓여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로지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2조8453억원으로 이 가운데 92.3%가 롯데그룹 계열사와의 상품·용역 거래다. 대부분 수의계약 형태로 이뤄졌다. 롯데그룹 계열사인 코리아세븐은 1조9512억원의 계약을 롯데로지스와 맺어 가장 많은 일감을 맡겼다. 롯데로지스의 매출액은 2010년 8790억원에서 지난해 2조8453억원 규모로 고속 성장을 일궜다.
박상용 전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1급)이 롯데로지스의 사외이사를 맡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감몰아주기 주무 부처 출신이 기업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피아(관료+마피아) 낙하산 논란이 일고 있다.
물류기업 합병 시너지 클 듯
대다수 물류업계 종사자들은 현대로지스와 롯데로지스의 합병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한 그룹 내에 두 개 물류회사를 둘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견이다.
롯데그룹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물류관점에서 보면 통합하는 게 맞다. 롯데그룹이 8개 계열사를 통해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을 사들이는 건 일감몰아주기 이슈를 피해가기 위한 것이다”며 “롯데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략적으로 택배기업을 인수하려고 했었다. 두 회사가 통합되면 CJ대한통운을 넘어설 수 있는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회사는 궁극적으로 합병될 것이며, 현대로지스가 롯데에 흡수되는 형태로 부서만 변경될 것으로 예측했다. 덧붙여 기업공개(IPO) 가능성도 제기했다.
현대로지스는 1988년 설립돼 화물자동차운수업, 해운대리점업, 항공화물운송 대리점업, 컨테이너 운송, 철도 소운송 사업 및 항만하역 사업을 벌이고 있다. 택배사업본부 4987억원, 물류사업본부 2383억원, 글로벌사업본부는 9156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기타특수관계자인 현대상선은 현대로지스의 총 매출액 비중에서 33.7%(5568억원)를 차지한다.
롯데로지스는 1970년 롯데냉동 주식회사로 설립돼 냉장창고업 및 보통창고업과 물류관리업 및 도매업을 핵심 사업으로 성장했다. 기본적으로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코리아세븐 등 유통물량과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등 식품제조사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육상운송에 비해 해상 및 항공운송의 매출액은 미미한 수준이며, 택배로 사업을 확대할 경우 물량확보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로지스는 계열사 물량을 기반으로 한 창고업과 육상운송업에서 상당한 강점을 보이는 반면, 현대로지스는 택배업과 함께 해운, 항공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사업 부문에서 높은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양사의 핵심 사업이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합병이 진행될 경우, 다방면에서 시너지가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호텔롯데가 최근 인수를 추진했던 해외 면세점이 미국 최대 면세점 ‘듀티프리아메리카(Duty Free Americas)’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해외 면세점 사업 진출에 대한 의지가 강력한 것으로 점쳐진다. 면세점은 다른 유통업보다 투자력과 전문성이 매우 중요한 비즈니스라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물류역량 강화도 필수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로지스와 롯데로지스의 합병에 따른 상승효과는 기대 이상일 수 있다.
옴니채널 관점에서도 두 기업의 합병은 긍정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마켓캐스트 김형택 대표는 “롯데그룹은 국내에서 옴니채널을 가장 잘 구현하는 기업으로 기업의 생존전략 측면에서 경영진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옴니채널 추진을 위해서는 단순하게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보다 조직, 프로세스, 마케팅 등이 통합되고 연계되어 추진되어야 한다. 롯데의 경우 각 그룹사와 매장이 통합돼 있어 마케팅, 배송, 고객지원을 연계하여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로지스의 롯데 편입이 본격화 되면서 국내 신용평가사는 지난 5월 현대로지스를 등급상향 검토대상에 등재했다. 신용등급은 BBB+. 롯데그룹 편입에 따른 사업·재무적 수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현 한기평 선임연구원은 “우량그룹으로의 실질적 경영권 이전으로 향후 사업적·재무적 펀더멘탈에 긍정적 영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로지스의 인수가 불발 될 경우 신용도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시장에서는 인수불발 가능성은 매우 낮게 예측한다.
한편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롯데그룹이 검찰의 고강도 수사를 받는 배경으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법령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기업이 사회적으로 양심을 갖고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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