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으로 불리던 남북항로의 시황이 예전 같지 않다. 지난해부터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 남북항로의 물량을 책임지던 국가들의 경기 침체로 운임 하락이 지속되고 있다. 선사들이 잇따라 항로에 대형선을 배치하면서 선복량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시황 침체에도 불구하고 선사들은 남북항로의 패권을 쥐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실적 침체로 한동안 남북항로 진출에 소홀했던 국적선사들은 다시 서비스 강화에 나섰다. 중남미 노선에서는 양대 독일 선사가 합병으로 새로운 경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3월 남북항로, 봄은 어디쯤 왔나
계절적으로 봄을 맞았지만 남북항로의 시황은 아직 한겨울이다.
동서항로의 운임은 비교적 선방 중이다. 상하이항운거래소가 집계한 2월13일자 상하이-북유럽 노선의 운임은 20피트컨테이너(TEU)당 1003달러, 2월27일자 운임은 TEU당 938달러로 1000달러대가 무너졌다. 상하이-지중해 노선은 2월27일 TEU당 1273달러로 네 자리수를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북미 노선은 지난 2월20일 서안 항만의 노사협상이 타결됐지만 그 후유증은 여전하다. 상하이-북미서안의 2월13일 운임은 40피트컨테이너(FEU)당 2265달러, 2월27일자 운임은 FEU당 2009달러로 256달러 떨어졌다. 상하이-북미동안의 운임은 FEU당 5049달러에서 일주일 후인 4946달러로 103달러 하락했다. 북미 서안은 적체로 인한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선사들이 운임인상(GRI)에 적극적이지만, 동안은 선복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중남미 노선에서는 남미 동안의 시황침체가 눈에 띈다. 상하이-브라질 산투스항의 2월13일자 운임은 TEU당 760달러, 2월27일자 운임은 TEU당 731달러로 29달러 하락했다. 선사들은 3월15일 남미동안에서 TEU당 500달러의 운임인상을 계획하고 있으나 물량부족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반면 남미 서안은 지난 2월 GRI에 성공하면서 2000달러대로 운임을 끌어올렸다. 오는 15일 TEU당 500달러의 운임 인상을 한 차례 더 예고하며 운임인상에 박차를 가한다.
호주항로는 지난해부터 침체된 운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GRI 역시 유야무야됐다. 4월1일 TEU당 300달러의 GRI가 예정돼 있으나 선사들은 사실상 상반기 운임인상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올해 6월 비수기가 끝나야만 운임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멜버른 노선의 운임은 2월13일 TEU당 703달러, 2월27일 TEU당 662달러로 또 다시 600달러대로 진입했다.
상하이-나이지리아 라고스 노선의 운임도 2월 말 TEU당 1656달러로 전주 대비 14달러 떨어지는 등 운임 하락이 계속되고 있다. 침체된 시황으로 선사들은 서아프리카 노선의 운임 인상을 무기한 연기했다.
남북항로 시황 침체는 물량 수송의 대부분을 책임지던 국가들의 경기 침체 때문이다. 남미동안의 경우 수출 물량의 80%를 차지하는 브라질의 경기가 침체된 것이 큰 타격을 줬다. 올해 브라질 경제 성장률은 작년 0%에 이어 마이너스 0.4%로 후퇴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 둔화로 브라질의 대중국 수출이 감소한 것도 경기 악화에 큰 몫을 했다. 아르헨티나 역시 올해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 1.3%로 예측돼 지난해에 이어 경기는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미 서안은 제조업을 등에 업은 멕시코 경기 호재로 웃음을 짓고 있다. 특히 남미 서안을 취항하는 선사 들은 기아자동차가 멕시코 몬테리에시에 북미 제 2공장을 세우면서 물동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의 경기 둔화로 악영향을 받은 건 브라질뿐만이 아니다. 호주 역시 중국 경제 둔화로 철광석 등 주요 수출 원자재의 수출이 급감하며 타격을 받았다. 올해 1월 호주의 실업률은 6.4%로 지난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아프리카 노선 침체 역시 나이지리아의 경기 악영향을 받았다.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는 최근 유가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 혼란도 겹쳤다. 2월14일로 예정됐던 나이지리아 대선이 3월28일로 연기되며 주가와 환율이 폭락했다. 나이지리아와 함께 중고차 물량을 책임지던 가나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경기 침체를 겪어 중고차 물량이 급감했다.
亞-서아프리카, 올해 선복량 38% 증가 예상
침체된 시황이 무색하게 공급은 나날이 늘고 있다. 선사들이 유럽과 미주 노선에 1만TEU급 대형 선박을 잇따라 투입하면서 기존에 이 노선을 기항하던 선박들이 호주, 중남미 등 남북 항로로 캐스케이딩(전환배치)됐다.
2~3년 전만 해도 2000~3000TEU급 선박이 투입되던 호주항로에는 이미 4000~4500TEU급 선박들이 운항하고 있다. 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협의협정(AADA)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시아-호주 수출 노선에서는 약 122만TEU가 수송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2% 증가한 수치다. 물동량 증가가 몇 년 째 정체 하는데 선복량만 늘어나는 상황인 것이다. 특히 호주 항로는 지난 2013년 6월부터 시작된 중국-호주(CAT) 서비스로 전체적인 선복량이 확 늘었다. 에버그린, 양밍, PIL, 시노트란스가 공동 배선한 이 서비스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GRI의 효력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선사들의 자체 분석이다.
중남미 항로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컨테이너리제이션인터내셔널(CI)은 아시아-중남미 노선의 선복은 날로 늘어날 것이며 이에 따라 이 지역 항만들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거 이 노선을 기항하는 선박은 180척에 평균 5000TEU급 선박들로 집계됐다. 지난해 7월 기준 선박 수는 155척으로 줄어든 반면 평균 선박 규모는 평균 6200TEU급으로 증가했다. 이 노선에 운항되는 최대 선박은 함부르크수드의 9700TEU급 선박이다. 로이즈리스트는 향후 아시아-중남미 노선을 기항하는 선박의 크기가 1만3천TEU급으로 진화할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다.
CI에 따르면 아시아-서아프리카 노선의 2015년 선복량은 지난해에 비해 38%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비스의 중단에 따른 선대 교체도 선복량 증가를 이끌고 있다. MSC는 ‘아프리카 익스프레스’에 투입했던 기존의 3950TEU급 선박을 6500TEU로 교체했다. 차이나쉬핑, 하파그로이드, NYK가 공동 운항하던 SWAX서비스가 중단됐고 하파그로이드 NYK는 골드스타의 FAX 서비스에 3400TEU급 선박으로 공동운항하고 있다. 차이나쉬핑과 PIL은 SWAX2서비스를 통해 4250TEU급 선박을 운항하고 있다. 기존의 2600TEU급 선박에서 4000TEU급으로 선복 확장이 급격히 이뤄진 것이다. 아프리카 항로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는 “서아프리카 노선에선 선사들의 진출이 2~3년 새 활발해져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밝혔다.
국적선사, 남북항로 진출 재정비 나서
선사들은 남북항로 입지 다지기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동서항로에 비해 진출이 덜한 중남미와 아프리카 물류길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실적부진으로 남북항로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양대 국적 선사는 다시금 이 지역 노선 취항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진해운은 지난 2012년 중단했던 남아프리카 노선 재취항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아시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연결하는 새로운 서비스 2개를 선보였다. 중국 상하이와 대만 지룽에서 남아공 더반을 연결하는 남아프리카익스프레스1(SF1)과 샤먼 홍콩 등 남중국과 대만을 거쳐 더반, 케이프타운을 연결하는 남아프리카익스프레스(SF2) 이다. 이 노선에서 대만의 에버그린, 중국 코스코, 싱가포르 PIL, 일본 MOL 케이라인과 공동 운항을 하고 있으며 4000~4500TEU급 선박 15척이 배선됐다.
현대상선은 지난 2월부터 호주 영업 체제를 대리점 형식으로 변경했다. 현대상선은 호주 대리점으로 Inchcape Shipping Service(ISS)를 지정했으며 지난 2월1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현대상선은 비용 절감으로 더욱 효과적인 호주 서비스를 위해 이번 대리점 전환 체제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업 방식은 변경됐지만 기존 서비스는 모두 그대로 유지된다.
양대 독일 선사인 하파그로이드와 함부르크수드는 칠레선사들과의 합병을 마무리한다. 하파그로이드와 CSAV는 지난해 정기선 부문 합병을 완료했으며 올해 2분기까지 완벽한 합병을 위한 세부 처리 사항을 마무리할 것이라 밝혔다. 함부르크수드와 CCNI 역시 3월까지 컨테이너 부문 합병 절차를 끝마쳐 재탄생하게 된다.
칠레선사 합병으로 양대 독일 선사는 중남미 항로에서 한층 탄탄한 입지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남미 동안 노선에서 30%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함부르크수드는 CCNI와의 합병을 통해 서안으로도 서비스 루트를 넓힌다. 하파그로이드와 CSAV는 합병으로 멕시코 지역을 기항하는 노선의 절반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여 양대 독일 선사는 향후 중남미 경제의 견인차인 멕시코 노선을 둘러싼 경쟁을 벌이게 됐다.
선사들은 단순 캐스케이딩에 그치지 않고 전략적으로 남북항로 강화에 나서고 있다. 공급증가 곡선이 더 가팔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외국적 선사 관계자는 “본사 차원에서 중남미, 아프리카 노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잇달아 대형 선박을 배치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선사들은 늘어날 수송량에 대비해 미리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터미널 시설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CMA CGM은 서아프리카에 2017년까지 250만TEU 처리능력을 갖춘 신규 터미널을 개장한다. 이 터미널은 1만TEU급 선박의 접안이 가능하다.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남북항로에 대한 중기 전망은 밝은 편이다. 호주항로의 경우 지난해 12월 발효된 FTA(자유무역협정)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당장 물량이 늘지는 않지만 향후 서서히 관세가 철폐되면 어느 정도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미 서안은 멕시코 경제 발전으로 물량이 꾸준할 것으로 예측되며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해 수송량이 늘 것으로 전망된다. 서아프리카에 비해 비교적 선사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동아프리카와 북아프리카는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으로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정기선사들은 남북항로 진출을 쉼 없이 계속 할 것으로 전망된다.
< 이명지 기자 mj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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