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럴싸한 얘기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스토리나 감동이 사그라 들지 않고 어쩌면 영원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으며 특별히 기억에 오래 머무는 영화가 있으리란 생각이다.
필자에겐 50년전 그 영화, 지금 회상해도 장면마다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그런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버트 랑카스터(Burt Lancaster)’가 열연한 ‘엘머 갠트리(Elmer Gantry)’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원작자 ‘싱클레어 루이스’가 소설가로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명 작가란 점이나 출연진이 아카데미를 비롯해 여러 상을 받았다거나, 함께 나온 ‘진 시몬스(Jean Simmons)’나 ‘셜리 존스(Shirely Jones)’ 및 ‘아더 케네디(Arthur Kennedy)’ 역시 모두가 당대의 톱클래스 배우인데다가 당시 전 세계를 휩쓸며 팝의 여왕으로 인기 높던 ‘패티 페이지(Patti Page)’가 성가대의 리더로 특별히 출연해서 더욱 감명을 받아서만은 아니었다는 게 필자의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너무 오래돼 기억이 희미하지만 개봉 당시 종교계 일각에서 기독교나 목회자를 빗대거나 폄하했단 반론이 제기됐던 것으로 알고 있고 비록 전편이 종교적인 색채로 일관하지만 시쳇말로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따름이다!”라는 원칙과 원작에 얼마나 충실했던가 하는 점과 한편 불우했거나 범법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거듭나, 종교에 귀의하여 독실한 신자나 목회자가 되기도 하는 예를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듯이 신앙적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돌릴 것을 미리 밝혀 둔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등의 수작을 만든 ‘진 시몬스’의 실제 남편 이기도 한 ‘리처드 브룩스(Richard Brooks)’가 각색 감독한 이 작품의 줄거리는, 신학교를 다니다가 물의를 일으켜 퇴학 당한후 삼류 세일즈맨으로 살아가던 ‘엘머 갠트리(버트 랑카스터)’. 그가 어느날 군중집회서 각광을 받는 부흥사 ‘샤론 팔코너(진 시몬스)’의 미모에 반해 마침내 그녀를 사로잡고 인기몰이의 순회부흥사로 성공했으나 과거 이력이 들통나 결국에는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마는, 야망에 불타던 한 사나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생생하게 그리 휴먼 드라마다.
한때 신학생이었던 출신 성분을 살려 엘머는 자신이 술과 여자에 절어 살던 탕아였다라고 회개성고백을 통해서 순박한 시골 사람들인 신도들과 샤론을 한순간에 감동시킨다. 스스로 간증과 설교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엘머는 박력 있는 설교로 군중들의 인기를 끌고 샤론과의 애정행각도 빠른 진도를 보인다.
내 세울만한 학력이나 경력이 없는 건달이 타고난 언변과 뛰어난 제스처와 주워들은 몇 마디 성경지식을 밑천으로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는 종말론으로 집단 최면술을 걸어 힘 안들이고 화려한 쇼맨십으로 스타부흥사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샤론과의 사랑도 무르익는다.
교묘하게 교단에도 입단하고 삽시간에 두각을 나타내며 스타 전도사로 입지를 굳힌 여세를 몰아 군중집회는 샤론을 초청한 기독교 근본주의자 베비트와 개신교 신앙의 순수성을 고수하려는 부흥회 반대파간의 논쟁 끝에 공업도시인 제니스시에서 교회의 재정후원을 받는 수준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엘머의 승승장구는 예측했던 두 가지 장애물을 만난다. 먼저 전도단과 함께 여행하면서 취재를 하는 신문기자 ‘짐 레프츠(아더 케네디)’의 거침없는 비판적 기사로 시달린다.
부동산 구입 시에 탈세를 일삼는 부흥사들의 비윤리성과 광신적인 집회 분위기를 매도하는 내용이 크게 보도되자 신도들도 이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 여론의 뭇 매를 맞고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또 엘머 때문에 신세를 망치게 되었고 신학교 다닐 때 퇴교처분을 받게 한 문제의 여인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창녀 ‘룰루 베인스(셜리 존스)’의 악의적인 유혹에 휘말려 욕설과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결과로 흥분한 샤론은 그 와중에서도 강렬한 정열을 발산하며 수많은 군중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능력자(?)에게 건축중인 교회의 지하에서 몸을 허락, 엘머와 최초로 성관계를 갖는다.
샤론 역시 한 여성으로서 원초적 본체를 스스로 드러낸 대목이다.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매춘조직의 박멸을 부르짖으며 금욕적인 설교를 하면서 보수파의 지지를 얻고 있는 엘머는 한 때 대립각을 세우며 눈엣가시였던 짐 기자가 엘머의 개성에 이끌려 드디어 그를 옹호하게 된다.
사창가 보스의 하수인이 되어 엘마를 함정에 빠뜨렸던 룰루도 학창시절 엘머에게 몸을 허락 후 버림받은 배신을 비관하여 매춘부가 되긴 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늘 엘머에 대한 애정의 불이 꺼지지 않아 결국은 그녀의 성실한 마음가짐이 위기에 처한 엘머를 구출하게 된 것. 하지만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해온 부흥사 엘머 갠트리는 자신의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비로소 대중이나 군중들의 마음의 중심이나 무게가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옛 여친 룰루의 결백 증언과 짐 기자의 해명기사로 잡다한 오명으로 부터 벗어나긴 했으나 이는 그가 이미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군중들에게 크게 실망한 뒤였다.
그래서 평범한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샤론과 결혼하라는 짐 기자의 충고에 따라 샤론에게 정식 프러포즈를 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녀에게는 사랑보다는 신앙이 더 중요하다는 게 외면 이유였다. 그러나 그날 밤 결정적인 사고가 일어난다. 그들이 다년간 염원하며 애써오던 교회신축 준공예배 행사에서 그 누군가의 실수로 화재가 발생하게 된 것.
교회가 화염에 휩싸이자 함께 탈출할 것을 권유하는 엘머의 권유를 뿌리치며 신을 믿고 교회에 머물겠다던 샤론은 불길 속에 희생되고 뒤늦게 엘머와 신도들은 자기만 살겠다고 그녀를 외면한 과오를 뉘우치며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엘머는 신도들의 상처를 달래며 샤론은 여러분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고 떠났다고 위로하며 함께 흑인성가 ‘나는 약속의 땅을 찾아 갑니다’를 합창한다.
엘머의 박력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확인한 샤론의 측근 ‘모건’은 다시 군중집회를 계속 이어가기를 희망하지만 엘머는 사도 성 바울의 사목서신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로 대신하며 거절한다. 판자촌에서 자란 샤론과 보험 외판원이던 엘머는 불우한 과거를 딛고 전도를 통하여 부와 명예를 차지하고 이에 집착, 스스로를 어이없이 신격화된 존재로 착각하며 기적을 행하는 사도인양 행동하는 모습은 우리 영화 ‘밀양’에서 송강호와 전도연을 떠올려 연상케도 한다.
그러나 절대 금기시하는 종교의 상업주의와 선동주의의 병폐인 부흥 강사들이 펼치는 포퓰리즘의 허구와 모순을 통해 진실을 적시하려는 의도 외에 악역과 망나니에 점잖은 신사역, 총잡이와 아파치에 해적과 보안관 및 약장수, 군인에 곡예사 등등 다양한 캐릭터를 폭넓게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명배우 ‘버트 랑카스터’가 속물적인 전도사역으로 보여주는 탁월한 몰입 연기의 생동감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필자의 눈에 선명하게 다가와 꽂힌다.
이 영화로 ‘버트 랑카스터’는 1961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골든글로브 드라마부문 주연남우상, 뉴욕영화비평가협회 주연남우상 등등 큰 상을 휩쓸었고 상복 없는 ‘진 시몬스’를 제치고 ‘셜리 존스’도 6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전미비평가협회 조연여우상을 받았으며 뉴욕타임즈가 매년 선정하는 20대영화로 선정되기도 했으니 필자가 매기는 박스오피스차트는 단연 싱글이렸다. < 서대남 편집위원 dnsuh@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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