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핑 하역료 방지 법제화 추진
올해부터 한국항만물류협회를 책임지게 된 김진곤 신임회장(동방 부회장)은 핵심 현안으로‘항만하역 요율 안정화’를 첫 손가락에 꼽았다. 물동량 하락으로 가뜩이나 항만물류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하역 요금까지 큰 폭으로 떨어져 회원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지난 2004년 10만원대에 이르던 20피트 컨테이너(TEU)당 부산항 하역요율은 2008년 6만원으로 떨어졌고, 최근 들어선 3만~4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여파로 물동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회원사 매출액도 크게 줄어 인건비, 임대료 등 고정비 지출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더구나 물량은 한정돼 있는 반면 새로운 항만들이 계속 문을 열면서 하역회사간에 과당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결국 요율 덤핑으로 이어져 상황이 심각합니다.”
김 회장은 요율하락의 연장선상에서 국내 항만의 시설과잉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신설항만들이 수요공급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인 논리로 개발됐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들의‘치적 경쟁’으로 무분별한 항만 난개발이 이뤄졌고 이것이 곧 국내 항만의 전체적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급논리 아닌 정치논리로 부두개발
“대산항, 포항, 마산항 등 많은 신설 부두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수요공급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인 논리로 개발된 측면이 있습니다. 지자체들이 물류를 알기보다 자기 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기 시∙도에서 나온 물량은 자기 시∙도에서 처리해야 한다.’이렇게 해서 항만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물류와 맞지 않아요. 사람으로 치면 피가 돌아야 하는 게 물류입니다. 한쪽에서만 (피가) 돌면 죽는 거죠. 부두들이 정치논리로 과잉투자됐다고 봐요.”
그는 이 같은 국내 항만의 실태에 답답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인천항의 경우 송도 신항이 들어서고 있는데, 시설과잉이라고 단정지었다. 예전 하나의 물류권이었던 인천∙평택항도 분리되면서 서로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 얘기도 많이 했습니다. 지자체가 치적 때문에 부두를 짓고 개발하는 걸 보면 답답해요. 마산항의 경우 조금 돌아서면 (부산) 신항인데도 새로운 부두를 만들고 있습니다. 차로 가면 (부산 신항까지) 20~30분 거린데 말이죠. 중국이 자기네 물동량을 흡수하기 위해 항만을 크게 짓고 있어 부산항도 앞으로 (물동량 유치가) 어려워질 걸로 봅니다. 부두 문제는 심각히 고민해야 해요.”
하지만 김 회장의 말대로 항만 시설과잉이 모두 정부와 지자체만의 탓일까? 현재의 시설과잉이 잘못된 정책에 의한 것이라면 이 정책에 편승해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자 한 항만물류회사들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김 회장은 하역회사들도 반성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항만 정책이었다 하더라도 기업들이 정부에 정책적인 건의 등의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우리 협회가 나서서 선사나 화주가 함께 항만이 가야할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해결이 필요하면 정치권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거죠. (항만물류를) 잘 아는 우리 협회에서 연구하고 국토해양부와 선주협회가 함께 돕고 해서 좋은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요율하락 업계자초…회원사가 힘 모아야
또 하역료 하락은 업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불거진 과거 리베이트 관행, 치열한 덤핑 경쟁
등이 현재의 항만물류시장을 어렵게 한 주범이란 해석이다. 김 회장은 부산항 하역료 덤핑 경쟁을 막기 위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범위 내에서 항만하역거래질서 확립방안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업계가 자초했어요. 선주나 화주를 찾아가서 읍소하고 관행이다 뭐다 해서…. 하역 원가를 계산해서 올려준다던지 원가를 절감할 수 있도록 한다던지 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흩어져 있는 회원사들의 힘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회원사가 머리를 맞대서 같이 공동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해외사업도 같이 가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김 회장은 또 항만업계의 상생을 위해 부두통합운영에 대해서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제살깎아먹기식의 경쟁만 하다가는 동반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산항에선 신항 가동 이후 북항 터미널의 통합운영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특히 한진해운과 세방 합작의 부산인터내셔널컨테이너터미널(BICT)과 대한통운∙허치슨의 부산감만컨테이너터미널(BGCT)이 운영하고 있는 감만부두가 그 대상이다.
“지금대로라면 같이 가는 방법이 아니면 안돼요. 혼자 가려고 하면 죽습니다. 회원사끼리 서로 윈윈(상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서 협회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올해 항만 물동량은 상승세를 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사상최악의 해운업 침체를 겪었던 만큼 올
해는 반등의 모습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물동량 상승에 앞서 악화되고 있는 항만업계의 수익구조를
개선하는데는 무엇보다 요금인상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부는 45도 각도로 (물동량이)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작년이 가장 나빴기 때문에 45도는 아니더라도 물동량이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어요. 건설업 경기가 활기를 띨 것으로 보면 그에 따른 물동량도 올라갈 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동량도 중요하지만 수익을 내기 위해선 회원사들이 하역료를 제값을 받아야 합니다. (컨테이너 1개당) 130~140달러 받던 걸 지금은 40달러를 받고 있어요.”
그는 항만업계의 발전을 위해서 협회의 위상강화도 절실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우리 협회 총회엔 왜 (국
토부) 국장만 와야 하느냐는 거죠. 다른 (해운∙물류) 행사엔 장관이 오지 않습니까? 이것이 곧 협회의 위상
을 말해주는 거라 봐요. 총회에 장관이나 차관이 오는 협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 회장은 끝으로 협회가 항만물류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해 회원사들의 참여를 끌어내도록 하겠다고 계
획을 내비쳤다. 앞서 언급한 협회 위상강화 프로젝트의 일환인 셈이다. “5년 후에 협회의 모습을 어떻게 그릴지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할 겁니다. 여러 계획들을 검토해 협회가 살아나도록 하겠습니다.”
<이경희 기자>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