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28 16:27

기획/바닥 하역료, 물동량 약세…“부두운영사 한겨울”

허치슨, 광양항 부두반납 강수
항만업계, 선석공급 과잉으로 수익성 내리막

●●● 세계적인 경기 한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국내 항만 실적은 예상만큼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부산항은 지난해 20피트 컨테이너(TEU) 1195만개를 처리, 11% 감소한 실적을 냈다. 두 자릿수 감소라고는 해도 세계 5대 항만 중 감소 폭이 상하이항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광양항은 2008년에 비해 불과 1천TEU 뒤진 180만9천TEU를 처리함으로써 200만TEU 달성 목표에 대한 청사진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됐다. 인천항은 지난해 초 한중항로의 물동량 약세로 고전을 겪다 하반기 수요가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8.9%로 한해를 마무리 지었다. 평택항은 6% 늘어난 37만7천TEU를 기록, 국내 항만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국내 컨테이너 항만들의 지난해 실적이 우려했던 것보다 양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부두 운영사들의 한숨은 날로 커지고 있다. 물동량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운영사간 경쟁까지 심화돼 수익성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운영사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계속되는 적자에 부두 운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상초유 허치슨 부두반납 업계 파장

홍콩 글로벌부두운영사(GTO)인 허치슨포트홀딩스(HPH)의 광양항 터미널 반납은 항만업계의 현재 심정을 단적으로드러낸다. 허치슨은 지난해 말 한국내 자회사인 한국허치슨터미널(HKT)과 한국국제터미널(KIT)을 통해 운영해오던 광양항 1단계 터미널 2개 선석을 반납했다.

허치슨은 지난 2002년 한국 해운항만시장에 첫 진출했다. 당시 유동성난에 빠진 현대상선으로부터 부산항 자성대부두 5선석과 감만부두 1선석을 비롯해 광양항 1단계 1선석을 인수한 뒤 운영회사인 HKT를 세웠다.

허치슨은 이와는 별도로 같은 해 광양항 2단계 부두(4선석)에 대해서도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운영에 들어갔다. 2단계 부두 운영사인 KIT엔 허치슨이 지배지분인 88.9%를 출자했으며 현대상선과 한진해운도 각각 5.55%씩 투자에 참여했다.

이로써 허치슨은 한국 해운항만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한편 신생항만인 광양항에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세계 1위 부두운영회사인 허치슨은 부산항이 세계 상위권 항만으로 부상하게 되자 한국시장 진출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던 터였다.

허치슨의 한국진출은 부산항과 광양항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부산항에선 풍부한 물동량을 기반으로 승승장구한 반면 광양항에선 부진을 면치 못했다. 광양항의 물동량 실적이 당초 예상과 달리 빠른 상승세를 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허치슨은 2007년엔 대한통운이 광양항 3-1단계로 옮겨가면서 비게 된 1단계 3번 선석도 확보, 광양항내 운영선석을 총 6개로 늘리는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지만, 이 같은 결정은 적자 규모만 키우는 꼴이었다. 때마침 터진 광양항내 부두노조 파업으로 항만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된 때문이었다.

2007년 11월 노조들은 2주 가까이 파업을 진행하면서 N사의 선박을 억류하는 한편 선박들의 항만 출입을 철저히 봉쇄해 원성을 샀다. 노조 파업은 곧 선사들의 부두이탈로 이어졌고 1단계 허치슨터미널은 노조 파업 이후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허치슨은 파업이 끝나고 2년 가량 흐른 시점에서 결국 2개 선석 반납이라는 강수를 두게 됐다. 허치슨이 운영부진을 이유로 부두를 반납한 사례는 광양항이 처음이다.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컨공단) 표면적으로는 부두 반납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몇 년 전부터 진행해온 광양항 부두 구조조정의 한 과정일 뿐이란 설명이다. 컨공단은 지난 2007년 대한통운이 3-1단계 운영에 들어가면서 1단계 4번선석에 대한 운영권을 반납한 것을 계기로 전체 선석 운영에 대한 밑그림을 새롭게 그리고 있다. 1개 선석마다 다른 운영사가 맡아왔던 1단계 부두를 2개 선석씩 묶어 GICT와 허치슨에 임대한 것도 이 같은 구상의 하나다.

컨공단측은 GICT에 허치슨이 내놓은 3·4번 부두를 맡긴다는 복안이다. 1단계 부두 전체를 GICT에서 운영토록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 운영사마다 4선석씩을 맡게 돼 전체적인 부두운영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컨공단 관계자는 “현재 GICT와 터미널 운영을 놓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2월 초에 이에 대한 가시적인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컨공단은 허치슨의 부두 반납을 기회로 1단계 부두에 대한 시설 개선공사에 들어간다는 계획도 세웠다. 1단계 부두가 개장한지 12년이나 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다. 4개 선석 모두 공사하는데 총 1년 가량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공사가 끝난 뒤 GICT가 4개선석 운영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컨공단 같은 관계자는 “먼저 3·4번 선석에 대한 전력인입선 등의 개선공사를 진행한 뒤 1·2번 선석에도 공사에 들어가게 된다”며 “1년 걸리는 공사가 끝난 뒤에야 GICT가 3·4번 운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만~4만원대 하역료 운영할수록 적자”

허치슨의 광양항 부두반납을 두고 항만업계에선 국내 항만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먼저 낮은 하역료 문제다. 현재 부산항과 광양항의 하역료 수준은 컨테이너 1개당 3만~4만원대에 불과하다. 부산 신항의 개장과 함께 북항과 신항, 광양항이 함께 경쟁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최근 들어 하역료 하락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2008년까지 5만원대에서 형성됐던 하역료는 지난해 들어 4만원대로 떨어졌으며 최근엔 3만원대 요율도 눈에 띈다.

운영사들은 신항의 나머지 부두들이 모두 문을 열게 될 경우 3만원대 초반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15만원대를 웃돌던 수준에 견줘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반면 중국 상하이항의 경우 하역료가 컨테이너 한 개당 10만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출입물동량이 고정적으로 지탱해주고 있어 하역료 수준이 강세를 띠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항만들은 세계 해상물동량의 관문 역할을 하게 되면서 하역료가 높은 수준이다. 앞으로도 요율은 높은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이와 비교해 “우리나라는 부두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고 수출입 물동량은 갈수록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어 하역료 덤핑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처리물동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하역료가 하락한다는 것은 곧 운영사 부실로 연결될 수밖에 없어 자못 문제가 심각하다. 부두를 운영할 때 인건비와 크레인 운영비 등을 따져 한 선석당 300억원의 매출을 올려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고 운영사들은 말한다. 선석당 처리물동량을 30만~40만개로 따져 컨테이너 하나당 8만원 이상은 받아야 이 같은 매출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의 하역료 수준이라면 1개 선석당 최소 75만개 이상을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광양항터미널들의 실상은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다. 광양항 1단계 2개선석을 운영하고 있는 광양인터내셔널컨테이너터미널(GICT)은 지난해 총 56만TEU의 물동량을 처리했다. 한 선석당 23만TEU를 처리한 셈이다. KIT와 대한통운도 4개 선석에서 각각 52만TEU를 처리하는데 그쳤다. 2-1단계 4선석을 운영하고 있는 동부익스프레스는 20만TEU 처리해 다른 터미널에 비해 특히 낮은 생산성을 보였다. 전체 광양항 부두들이 손익분기점보다 턱없이 부족한 물동량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낮은 물동량과 바닥 수준인 하역료로 운영사들은 매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KIT의 경우 지난 2002년 설립 이후 줄곧 적자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첫해 91억원이었던 적자규모는 이듬해와 그 다음해 97억원까지 확대됐다가 2005년 61억원, 2006년 17억원, 2007년 30억원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2008년에 와선 다시 108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매출액은 제자리를 보인 반면 비용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운영사들은 KIT의 사례와 같이 하역료가 내리막길을 계속 나타내는 상황에서 적자 규모는 해마다 계속 불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부두간 임대료 형평성 논란”

대한통운부두와 다른 부두간의 임대료 차등 부과도 논란거리다. 현재 대한통운은 다른 운영사의 절반 수준으로 3-1단계 부두를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2단계 부두 임대료가 선석당 24억원인 점에 미뤄 대한통운 부두는 12억원 안팎에서 임대료가 책정된 것으로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1·2단계를 운영 중인 기업들은 최근 경기 침체로 다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특정 부두에 임대료를 싸게 해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공단이나 정부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업계의 처지를 감안해 임대료를 다 같이 저렴하게 내려줘야 한다는 속내다.

컨공단측은 3-1단계는 신설부두인 만큼 물동량 활성화를 위해 기존 부두와 다른 조건으로 계약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임대료를 싸게 해주는 대신 물동량 목표치를 둬 미달했을 경우 위약금을 물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위약금은 기본사용료×(당해연도 목표물량-처리물량)/전대료의 방식으로 계산된다. 컨공단 관계자는 “당초 계약에서 대한통운은 2011년까지 80만TEU의 물동량을 달성하는 조건을 붙였다”며 “지난해 목표 물량이 60만TEU였으나 53만TEU밖에 처리하지 못해 3억 이상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항 가동 본격화…“항만업계 떨고 있니”

부산항에서 신항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 가는 것도 항만업계에 또다른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현대상선이 신항 2-2단계 자가터미널 운영에 들어갈 경우 그동안 이용해 왔던 북항 허치슨터미널의 대폭적인 물동량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업계는 허치슨터미널 물동량의 40% 가량이 빠져나갈 것으로 점치고 있다.

허치슨이 운영사 통합법인 설립이 예상되는 감만부두에서 철수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감만부두는 현재 한진해운과 세방 합작의 부산인터내셔널컨테이너터미널(BICT)과 대한통운·허치슨의 부산감만컨테이너터미널(BGCT)로 구성돼 있다. 정부는 이들 운영사를 통합해 하나의 단독법인으로 꾸릴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허치슨이 물동량 감소를 우려해 운영권을 반납할 것이란 관측이 업계에 파다하다. 한국허치슨터미널측은 “전적으로 사실무근이며 아직까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문제들은 결국 국내 항만의 공급과잉 문제로 이어진다. 국내 항만물동량 수준이 한계치에 다다른 상황에서 부산 북항과 신항, 광양항의 경쟁으로 물동량은 물동량대로 줄고 하역료도 바닥 모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주장이다.

광양항 터미널 운영사측 한 관계자는 “공급이 과잉됐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선석당 수지를 맞출 수 있는 물동량 수준이 있는데, 현재 실정은 선석 공급이 과잉돼 임대료 대기도 힘들 정도로 수익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여수·광양항만공사의 3월 출범이 국회내 여야 정쟁으로 미뤄진 점도 광양항 운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까지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법 폐지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뒤 ‘항만공사법’ 시행령을 개정해 항만공사를 설립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모든 일정이 뒤로 미뤄지고 말았다. 정부는 2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빠르면 5월에나 항만공사가 출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컨공단 관계자는 “공단이 없어지고 항만공사가 들어서면 조직이 대대적으로 개편될 것이 분명해 회사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이라며 “컨공단이 뼈대 역할을 해 하루 빨리 항만공사가 출범해야 안정된 광양항 운영이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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