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1-08 14:27
이 연 주 (법무법인 세창 변호사)
모 방송사 저녁 뉴스의 앵커우먼이 한달 남짓 전에 물러났다. 그 이유는 시위대가 미대사관 앞에서 여중생 치사사건에 대하여 항의시위하는 모습을 보도하면서 “보기가 참 부끄럽습니다”라는 말을 했던 데에 있다. 일부 시민들이 “우리 땅에서 우리가 주인노릇하자고 나선 것이 그렇게 부끄럽느냐”고 거칠게 성토했고, 본인은 “우리 아이들이 참혹하게 죽은 것이, 또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데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며 담담히 물러나는 뜻을 표했다.(위 앵커우먼은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헌신했다고 알려져 있고, 필자는 그녀의 진의가 스스로 밝힌 그대로였다고 믿는다)
11월 중순경 스페인 해안에서는 약 7만7천톤의 중유를 실은 유조선 “프레스티지호”가 좌초하여 두동강나는 사고가 일어났다. 프레스티지호에 실린 중유는 2006경까지 유출될 것이라고 예측되는데 이는 사상 최악의 환경재앙이 될 듯하다.
프레스티지호 침몰로 피해를 보게 된 유럽국가들은 해안 접근을 금지시킬 유조선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침몰 이후 곧바로 기름이 유출될 가능성이 큰 단일선체 구조를 가진 유조선의 연안 접근을 금지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조선업계는 이중선체 구조를 가진 선박의 수주로 활기를 띄고 있다. 그런데 프레스티지호는 침몰된 때로부터 4~5일 이후부터 기름이 유출되기 시작했고 그 이전에 인접 국가들에게 인양을 요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정작 조치가 필요한 때에 방치했던 국가들이 사고를 겪은 이후 단일선체 선박의 해안 접근을 금지하는 등 뒤늦게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을 보면 프레스티지호의 인양 요청을 모른 척 했던 데 대해 부끄러움이나 느끼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새해를 맞이하여 모두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을려고 애쓸 것이다. 호랑이를 그릴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린다는 말도 있으니까. 그런데 새해를 즈음하여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다만 아주 조그만 당부를 하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 할 줄 알자는 것이다. 옛 선현 역시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니 이 또한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갈파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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