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조선업을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면 국적선 적취율과 자국 선박 건조 비율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국적선사의 자국 화물 적취율은 10%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적선 적취율 5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2025 해양산업통합클러스터(MacNet) 전략세미나’에서 황진회 해양수산개발원(KMI) 박사는 선사와 화주·조선사 간 느슨한 협력 관계를 한국 해운의 도전 요인이자 과제로 꼽았다.
해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적선사들의 자국 화물 적취율은 두 자릿수를 간신히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현재 우리나라의 수출입 해상물동량은 13억5000t으로 집계됐다. 수입은 8억8000만t, 수출은 4억7000만t이었다. 같은 기간 국적선사의 자국 화물 수송 비중은 수입이 10.4%, 수출은 13.3%로 매주 저조했다.
국적선사의 자국 조선소 발주 비중도 10%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16~2023년 8년간 한국 조선사가 국적선사에서 수주한 선박은 274척 1199만5170t으로 집계됐다. 이는 우리나라 조선소 총 수주량 8264만9568t의 14.5%에 해당한다. 특히 지난 2023년 국내 조선소가 총 수주한 198척 중 국적선사의 발주 척수는 9척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사들이 수출입·물류기업과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 체제를 갖춰 화물 적취율과 장기운송계약 비중을 끌어올리고 다양한 협력투자 모델을 개발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 박사는 “국내 선주와 화주, 국내 선사와 조선사의 느슨한 협력 관계가 한국 해운업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황 박사는 ▲해운기업 비즈니스 다각화 ▲실질적인 종합물류 서비스 제공 ▲기업공개(IPO) 활용 확대 및 자본조달 방식 다양화 ▲고객 맞춤형 선화주 파트너십 강화 ▲해운조선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 ▲해상 무역로 다양화 및 해외거점 항만 개발 ▲대형터미널 운영 및 대체부두 구축 ▲글로벌 포워더와의 협력 제고 ▲고부가가치 선대 확충 및 신시장 진출 등을 꼽았다. 특히 선사들이 화주의 가장 큰 고민인 물류비 경감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해 선화주 협력 관계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이형철 한국선급 해양산업통합클러스터(한국선급) 회장도 이날 해운조선업을 단순히 수출입을 위한 수단이 아닌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전략산업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할 때라며 국적선사의 자국화물 적취율 제고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현재 일본은 자국 수출입 화물을 자국 선대로 수송하는 비율이 60%대다. 우리나라도 수출입 화물 적취율을 최소 5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안보에 초점 맞춘 해사산업특별법 제정 긴요”
우리 해사산업을 상업적 목적이 아닌 국가 발전과 안보에 초점을 맞춰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박사는 일본 중국 유럽 등의 사례를 들며, 우리나라도 해사산업을 국가 안보와 직결한 특수 산업임을 규정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급망 혼란과 국가 안보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해상수송 능력과 해상 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정부의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양 박사에 따르면 유럽 조선업은 현재 아시아에 밀려 쇠퇴했지만 크루즈, 특수선, 중소화물선 등을 건조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일정 부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해운업은 건재하지만 자체적으로 선박을 공급할 조선업을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해 6월 일본 자민당은 1조엔을 투입해 ‘국영 조선소’ 설립을 포함한 산업 정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은 2020년 상선대 보유 규모가 일본을 역전하며 세계 2위로 올라섰으며, 해양 굴기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양 박사는 “해운업계에선 환경 규제로 선박 교체 수요가 굉장히 많은데 정부나 금융권에서 준비를 전혀 안 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의 경쟁력 저하와 본격적인 위기가 곧 시작될 것이다. 아직 골든타임은 놓치지 않았다. 지금 투자하고 지원하면 조선업의 경쟁력 저하를 막을 수 있고 낮은 비용으로도 회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조선이 벌크선과 탱크선, 컨테이너선과 같은 범용선시장에서 수주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대형선 건조에만 치중할 경우 안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양 박사는 “해운항만기능유지법상 국가필수선박을 지정하는데 일부 범용선은 우리나라에서 건조하지 못하다 보니 중국산을 지정하고 있다. 현재 국내 조선업이 벌크선과 같은 범용선을 건조하지 않는 건 안보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벌크선의 경우 철광석, 곡물 등을 전시나 비상사태에 실어 날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 조선사들이 상업적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이유로 범용선을 더 이상 건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 조선소에서 벌크선이 주로 건조되고 있는데 중국산 선박을 국가 중요 임무에 투입하면 문제가 된다는 게 양 박사의 주장이다.
그는 “중국산 제조물에서 해킹 등 적대적 첩보 행위가 가능한 장치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며 “우리나라의 중요 임무를 수행하는 선박은 국내에서 건조된 선박이어야 하며 국내 조선사에 범용선 개발비를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심 문제 등으로 대형선이 들어갈 수 있는 항만이 굉장히 제한적이라 국가가 비상사태가 될 경우를 대비해 중형선을 건조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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