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0 09:04

판례/ “출발지 변경은 신고만으로?”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6.6일자에 이어>

1. 들어가며
출발지는 선박이 출항하는 곳이고 기항지는 (협의로는) 선박이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르는 항구를 말한다. 다만, 해운실무에서는 기항지를 출발지 및 목적지를 포함하는 광의의 의미로 쓰기도 한다. 출발지와 기항지의 범위에 관한 논란이 소송에서 쟁점이 된 사건이 있어 이번 호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2. 기항지, 출발지 또는 목적지
기항지에 관해 해운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표적 규정은 아래와 같다:
해운법 제12조(사업계획의 변경) 
① 여객운송사업자가 사업계획을 변경하려면 해양수산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양수산부장관에게 미리 신고해야 한다. 다만, 제13조제1항 각 호 외의 부분 단서 및 같은 조 제2항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④ 제1항에도 불구하고 내항 정기 여객운송사업이나 내항 부정기 여객운송사업의 면허를 받은 자(이하 “내항여객운송사업자”라 한다)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업계획을 변경하려면 해양수산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1. 선박의 증선·대체 및 감선
2. 기항지의 변경
3. 선박의 운항 횟수나 운항시각의 변경
4. 선박의 휴항
제14조(사업개선의 명령) 해양수산부장관은 여객운송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공공복리를 증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여객운송사업자에게 다음 각 호의 사항을 명할 수 있다. <개정 2008년 2월29일, 2012년 6월1일, 2013년 3월23일>
1. 사업계획의 변경
[하략]
해운법 제12조 제1항은 사업계획의 변경은 사업자(선사)의 신고사항으로 하면서 제12조 제4항는 기항지의 변경을 당국의 인가 사항이라고 기재하고 있고, 선박의 출발지 또는 목적지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따라서 기항지를 변경하지 않고 출발지, 목적지만 바꾸는 것은 문언상으로는 제12조 제4항에 해당하지 않고 제12조 제1항에 해당한다. 따라서 출발지의 변경은 사업계획의 변경 신고만으로 가능한 사항이라고 보게 된다. 

3. 사안의 개요
가. OO지방해양수산청(이하 “해수청”이라 한다)은 군산 지역의 여객선사로서 격포/위도 항로를 운영하고 있던 선사 갑 및 선사 을에게 사업개선명령을 내렸다. 그 내용은 갑의 OO훼리(기존 출발지/도착지: 격포/위도)와 을의 XX훼리(기존 출발지/도착지: 위도/격포)의 출발항을 매 1년을 주기로 서로 맞바꾸려 하니 다음해 1월 1일부로 갑은 OO훼리의 사업계획의 출발지/도착지를 위도/격포로 변경하고, 을은 XX훼리의 사업계획의 출발지/도착지를 격포/위도로 변경할 것을 명하는 것이었다. 

나. 을은 이전부터 출발지를 격포로 하기를 원했기 때문에(위도는 섬이라서 선원들이 거주지를 이 곳으로 이전하기를 꺼려했음) 위 명령에 바로 따랐으나, 갑은 명령에 불복했고, 이에 해수청이 갑에게 과태료를 부과하자 갑은 이를 취소하기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갑의 선원들은 대부분 격포항에 거주하고 있었다.

4. 법원의 판단
해수청의 논리는 아래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해운법 제12조 제1항에 사업계획 변경을 신고사항으로 규정하면서 제4항에 기항지 변경을 당국의 인가 사항이라고 했으니 출발지/목적지는 제1항에 따라 신고사항에 불과하다, 2) 당국은 사업개선명령으로써 사업계획의 변경을 명할 수 있다. 

1심 법원의 판단은 이러했다: 군산지법은 1) 출발지 및 종착지가 해상여객운송사업의 면허를 발부함에 있어 기항지보다 덜 중요한 요소라고 볼 근거도 없는 이상 출발지의 변경을 내용으로 하는 사업계획의 변경이 해운법 제12조 제1항 소정의 신고사항이라고 볼 수는 없는 점, 2) 해상여객운송사업 면허의 신청을 함에 있어 출발지, 기항지, 종착지는 신청서에 첨부할 사업계획서에 반드시 특정해 기재해야 할 사항인데 해운법 제12조 제4항에 따라 해양수산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사업계획변경에는 기항지의 변경만 규정돼 있을 뿐 출발지 및 종착지의 변경은 규정돼 있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출발지 변경은 사업계획변경으로 가능한 사안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해 1심에서는 갑이 승소했다.

2심인 광주고법(전주부)은 판단을 달리했다: 2심 법원은, “제14조 제1호는 해양수산부장관은 여객운송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공공복리를 증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여객운송사업자에게 사업계획의 변경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법률규정의 형식과 내용, 사업개선명령의 대상 등에 비추어 보면 여객운송사업자의 의사에 따른 사업계획변경 신고 또는 인가의 대상과 해양수산부장관이 공공복리의 증진 등의 필요에 따라 여객운송사업자에게 명령하는 사업계획변경의 대상을 동일하게 보아야 할 근거를 쉽게 찾기는 어렵고, 해운법 제14조가 해양수산부장관에게 폭넓은 재량을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한 점, 모 해수청은 이 사건 처분 이전인 2014년 11월20일 해양수산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동일 항로의 출발지와 종착지를 맞바꾸는 내용의 사업계획변경 인가처분을 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동일항로의 출발지를 종착지로 바꾸는 내용의 사업계획변경에 관해는 해운법 제14조를 적용할 수 없다는 법리가 명백히 밝혀져 있지 아니해 그 해석에 다툼의 여지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사업개선명령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다고 보이지 아니하므로 이를 당연 무효라고 볼 수 없다.”라고 전제하고, 이러한 입장에 서서 해수청의 사업개선명령은 무효가 아니고, 사업개선명령이 무효가 아닌 이상 해수청의 과태료의 처분은 취소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리해 갑은 결국 패소했다.

5. 교훈
해운 관련 법령을 해석하다 보면 그 취지가 불명하게 실무상 운용이 곤란한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해운법 제12조가 기항지만을 사업계획 변경에 있어 인가 사항으로 규정한 것은 출발지는 신고만으로 하려는 취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면에서 1심 법원은 일응 타당성이 있다. 그런데 해운법 어디에도 당국이 여객선사에게 출발지 변경(또는 출발지/목적지 교환)에 관한 사업개선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에 관해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2심 법원은 사업개선명령(해운법 제14조)을 내릴 수 있는 당국의 권한이 광범하다고 하는 논리로 해운법 제12조가 가진 불명확성에 관한 판단을 회피한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항로면허와 관련한 사건을 다루다 보면 행정청이 해운 관련 법령에 대한 이해가 미흡해 법령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도 다수다. 2015년 해운법 개정으로 항로고시제도가 신설되면서 항로를 고시하는 주체는 해양수산부장관으로 하고, 지방해양수산청장은 고시된 항로별로 면허를 발부, 관리할 권한을 위임 받게 됐다. 기존에는 지방해양수산청장에게 항로의 출발지, 기항지, 종착지 중에서 기항지가 다른 경우나 출발지와 종착지가 다르지만 예외적으로 같은 항로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 이를 판단할 재량권이 폭넓게 인정됐다. 

그러나 현재에는 해양수산부의 항로고시에 항로가 명확히 규정돼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방 해수청에 따라 여전히 구체적인 항로를 고시에 반영시키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행정청의 행정업무상 오류가 있는 상황에서 해운법상 선사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원하는 항로고시의 변경이나 면허를 발부 받을 수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항로 고시가 잘못 돼 있는 경우에는 선사가 항로변경을 받고자 해도 본건과 같이 사업계획변경신고로 가능한지, 아니면 행정청의 직권발동을 촉구해 행정청이 직접 항로를 개선해준 후에야 면허의 항로를 변경할 수 있는지 등이 문제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 해운법 규정은 선사들에  게 혼란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행정청이 이를 운용함에 있어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해운법은 해운업의 기본적 법령이고, 행정청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법률과 규칙을 수범자가 이해하고 지키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입법자가 관련 입법활동을 함에 있어 좀더 세심한 고려를 하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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