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본계약 체결 이후 3년 동안 지속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이 유럽연합(EU)의 반대로 최종 무산됐다.
국내 조선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추진된 메가조선소 탄생이 경쟁 당국에 의해 불발됐지만, 국내 조선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전반적으로 크지 않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2016년 수주절벽으로 몸살을 앓았던 상황과 비교하면 그동안 조선시장 환경이 크게 달라져 합병 시너지가 제한적일 거란 판단이다.
현대중공업, 기업결합 신고 철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유럽의 에너지 안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며 세계 최대 조선사 탄생에 제동을 걸었다.
EU는 성명을 통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은 LNG선 건조를 위한 전 세계 조선시장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불허 의사를 밝혔다. 이어 “(현대중공업) 당사자들은 위원회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U 경쟁 담당 집행위원인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는 “두 조선사의 합병으로 유럽 선사들의 피해가 예상되고 건조 단가 상승 시 LNG 운임도 영향을 받아 에너지 가격이 오를 것”이라며 합병 거부 배경을 밝혔다.
영국 해운조선전문지 로이즈리스트는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해양이 LNG선 사업부를 매각해야 합병할 수 있다는 EU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합병이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현대중공업은 EU의 이번 기업합병 거부 결정이 비합리적이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EU에서 우려를 표명한 LNG선 시장 과점 문제와 관련해 이미 삼성중공업과 중국 후둥중화조선,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러시아 즈베즈다 등과 같은 경쟁자들이 시장에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글로벌 법률자문사 프레쉬필즈, 경제분석 컨설팅기업인 컴파스렉시콘으로부터 자문을 받아 조선시장은 단순히 점유율만으로 시장 지배력을 평가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EU에 2년간 설명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은 “EU 공정위가 오래전에 조건 없는 승인을 내린 싱가포르와 중국 공정위의 결정에 반하는 불허 결정을 내린 것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EU의 불허로 나머지 남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기업결합 심사는 물 건너갔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중공업그룹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 신고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EU를 포함해 우리나라 일본 등 총 3개국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 관련 심사를 받고 있었다. 앞서 싱가포르와 카자흐스탄 중국은 경쟁법을 위반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심사를 승인한 바 있다.
공정위는 “EU 경쟁 당국의 금지 결정으로 사실상 기업결합을 계속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조선해양이 기업결합 신고 철회서를 제출했으므로 계약 종결을 확인하는 대로 사건절차 규칙에 따라 심사 절차를 종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 “대우조선 정상화 강화방안 마련할 것”
두 조선사의 합병이 규모의 경제를 시현하고 과당경쟁 해소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던 정부는 이번 EU의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다만 EU의 불승인 결정이 최근 수주 환경이 개선돼 우리 조선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결합 추진을 결정했던 2016년에는 장기간 불황의 여파로 따른 국내 조선사 간 가격경쟁과 과잉공급의 해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2016년 1400만CGT(수정환산톤수)에 그쳤던 글로벌 선박 발주량은 2021년 4700만CGT으로 3.4배(236%) 급증했다. 지난해부터 조선사들의 수주 환경이 개선돼 상황이 달라졌고 글로벌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과당 경쟁 우려가 크게 줄어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고부가선박 점유율이 중국 일본에 비해 높다는 점도 한국조선에 향후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영국 베셀즈밸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LNG선의 글로벌 수주점유율이 90%에 달하며 10%인 중국을 압도했다. LPG선 역시 76%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4% 11%에 그친 일본 중국을 제치며 가스선 수주전에서 우위를 점했다.
여기에 수주잔고가 충분히 쌓이면서 신조선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합병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게 조선업계의 관측이다. 지난해 12월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154포인트를 기록했다. 연초 127포인트와 대비하면 27포인트나 상승했다.
정부는 “이번 EU의 불승인 결정으로 그간 추진했던 대우조선-현대중공업 간 기업결합은 어렵게 됐지만 국내 조선업 경쟁력 제고와 대우조선 정상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은 대우조선이 정상적으로 수주·조업할 수 있도록 RG(선수금보증) 등 기존 금융지원을 올해 말까지 연장했다. 대우조선의 근본적인 정상화를 위해서는 ‘민간 주인 찾기’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외부전문기관의 컨설팅 등을 바탕으로 산업은행(대주주) 중심으로 대우조선 경쟁력 강화방안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EU의 불허 결정으로 두 조선사의 신용도 전망은 희비가 엇갈렸다. 신용평가사들은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무산되면서 현대중공업의 재무 부담이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신용평가는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무산되면서 현대중공업그룹의 재무 부담이 사라졌다”며 “현대중공업 및 현대삼호중공업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나이스신용평가도 “현대중공업그룹은 현재까지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관련해 실제 자금지출 등이 발생한 바 없다”며 “EU의 기업결합 불허 결정이 현대중공업그룹의 신용도에 미치는 즉각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우조선해양은 사업적 역량 강화, 재무부담 완화 등의 효과가 기대됐지만 EU의 이번 결정이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