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7 09:01

‘에이치라인이 모범사례’ 해운금융시스템 변화 사모펀드에서 찾아야

사모펀드 투자유치로 침체된 해운업에 활력 도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 감소로 해운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해운기업들이 사모펀드와 연계한 안정적인 자금조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기병 순천향대 국제통상학과 박사(제1저자)와 노태우 순천향대 교수(교신저자)는 최근 발표한 ‘사모펀드의 해운업 투자사례 연구: 에이치라인 해운을 중심으로’란 제목의 논문에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자본시장 역할을 해온 국내 해운금융의 한계점이 노출된 상황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금융 시스템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에이치라인해운은 사모투자전문회사(PEF)가 투자해 기업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촉진한 대표적인 선사다.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가 지난 2014년 지금은 파산해 없어진 한진해운 전용선 사업을 인수하며 출범했다.

이후 현대상선 벌크 사업 부분 인수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6년여 만에 뛰어난 유동성 대응 능력과 사업 안정성을 확보한 국내 최대 전용선로 도약했다. 현재 벌크선 43척, LNG선 7척을 운항하며 포스코 한국전력 현대글로비스 가스공사 등에 장기수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브라질 광산회사인 발레, 네덜란드 에너지회사인 비톨 등 세계적인 화주들과도 거래를 텄다. 올해 5월엔 하나투자금융이 이 회사에 1조8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하면서 투자자 구성에 변화를 맞았다. 

사모펀드, 장기계약 가진 부정기선사 선호

이 박사는 논문에서 ‘중국효과’를 배경으로 장기 호황을 구가하고 외형 확장에 나섰던 해운업이 2007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락하면서 한진해운 같은 대형선사가 파산하고 은행이 해운금융시장에서 떠났고 그 공백을 사모펀드가 메우게 됐다고 진단했다. 저금리와 경기 불황으로 전성기를 맞은 사모펀드에게 생리상 침체된 해운업은 괜찮은 투자처면서 목표 산업이었던 셈이다.

전 세계 사모펀드의 해운업 투자는 2008년 10억달러에서 2013년 74.6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16년 44.1억달러, 2017년 17억달러로 하락세를 타고 있다. 

사모펀드의 타깃이 되는 선사는 안정적인 물량과 높은 이익률을 확보하고 있고 변동성이 심한 시장 흐름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관리능력을 지닌 곳이다. 선박에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데다 변동성이 심한 해운산업 특성상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중장기 계약 같은 확실한 캐시카우를 쥐고 있는 선사가 매력적이란 해석이다.

논문이 제시한 8건의 사모펀드 투자 사례에서도 이 같은 특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투자를 받은 기업은 대부분 부정기선사이거나 장기계약을 확보한 곳들이었다.

해외에선 미국계 사모펀드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오크트리의 덴마크 톰 인수, 윌버로스의 미국 다이아몬드쉬핑 인수, 아폴로의 독일 리크머스 인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독일 사모펀드인 KKR가 자국선사 보레알리스를 인수했다.

국내에선 에이치라인해운을 비롯해 SK해운 현대LNG해운 팬오션 폴라리스쉬핑 등이 사모펀드에 인수됐거나 투자를 받은 곳들이다. 

 


현재의 틀 벗어난 과감한 제도 개선 필요

이 박사는 사모펀드 투자가 자금난을 겪고 있는 해운기업의 백기사로 나설 경우 코로나 확산으로 침체된 해운업계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극소수 해운사만 상장된 국내 상황에서 사모펀드 투자 유입으로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장기적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에이치라인해운은 사모펀드를 낀 기업 구조조정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로 제시됐다. 

그는 “국책은행이 국내 해운업의 자본시장 역할을 했지만 시장불황으로 한계에 다다르게 됐다”며 “정부와 민간이 연합해 펀드를 만들어 기금을 마련하는 등 현재의 틀에서 벗어난 획기적이고 과감한 제도 개선으로 해운산업의 혁신과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사모펀드의 해운업 투자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이 크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모펀드 특성상 장기적 측면에서 안정적인 자금 원천이 될 수 없는 데다 해운업에 대한 전문성 없이 고수익을 추구하는 과잉투자로 기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까닭이다.

이 박사는 사모펀드가 해운업을 금융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한다면 실패할 수 있다며 글로벌 선사들처럼 장치산업 또는 국가 기반산업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국제 해운시장 변동성을 고려해 전문경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에이치라인해운엔 국제사회의 환경규제에 대응해 LNG선 투자에 집중하고 국내 대형 화주에 한정된 사업패턴에서 벗어나 화주 구성을 글로벌화하는 한편 해외 업체들과의 거래 경험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단기 성과에 집중하고 협력보다 경쟁을 중시하는 사모펀드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치 경영과 사회적 책임 구현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한앤컴퍼니가 투자한 SK해운과 연계해 선박관리사업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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