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기 조타수도 선내 대기 지시에 대해 “해경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1항사의 명령을 선사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1항사는 당시 항해사들끼리 모여서 그런 논의를 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자기들은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승객들에겐 탈출을 지시하지 않았을까요? 일부러 죽이려 한 것처럼….“
“당황해서 그랬다나. 모든 선원이 철저히 당황한 것도 이상하지.”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하면서 신분을 속였다지요.”
“타이타닉호 사고 때 한 남성이 여장을 하고 탈출하려다가 몰매를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선원이 먼저 탈출했다면 몰매 정도가 아니지.”
“선장이 가장 잘못한 건 뭘까요?”
“소위 골든타임 동안 선장이 구호조치를 포기한 채 퇴선한 거지. 법원은 살인을 실행한 것과 같다고 판단했어.”
“골든타임은 구체적으로 언제를 말하나요?”
“세월호가 구조를 요청한 오전 8시 55분부터 선원들이 탈출한 9시 37분까지로 봐.”
“선장의 행동이 정말 부적절하긴 했군요.”
“말하자면 고층 빌딩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장이 조난자를 외면하고 헬기를 타고 빠져나가는 것과 같은 거랄까. 이걸 살인 행위로 보는 거지.”
“당직자들의 대각도 변침을 업무상 과실로 판단했나요?”
“이 부분은 무죄로 봤더군.”
1심에선 당시 조타를 책임졌던 3항사와 조타수에게 책임을 물었으나 2심에선 묻지 않았다. 조타기를 비정상적으로 움직인 게 사고 원인이라는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조타기의 고장이나 엔진 오작동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선체를 인양해 정밀 조사한 후에 밝혀질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거지.”
사고 당시 항적이 건조 당시 우현 최대 타각 35도 선회시험의 항적과 거의 일치하여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현상에 의해 키가 우현 최대 타각 위치까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프로펠러가 2개, 키가 하나인 이른바 ‘2축1타선박’이므로 엔진 이상 등으로 왼쪽 프로펠러만 작동할 경우 추진력 차이로 인해 급격한 우선회가 될 수 있는 점 등이 그 이유였다.
“선체 인양이 완료된 후 판결을 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으니 판산들 마음이 오죽하겠어?”
“1심에서 무죄로 본 수난구호법 위반 혐의를 2심에서는 유죄로 판결했던데, 재판에서 쟁점은 뭐였나요?”
“조난을 야기한 선박이 아닌데도 조난 당한 선박이 구조 조치를 해야 하느냐는 거였지.”
“그럼 결론은?”
“수난구호법은 충돌 같이 외부적 원인 외에 화재, 기관고장 같은 내부 원인으로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고 봤어. 조난된 선박의 선장과 승무원이라 하더라도 구조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면 구조 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게 입법취지라는 거지.”
승무원은 수난구호법상 보호의무뿐만 아니라 청해진해운과 승객 사이에 체결된 여객운송계약상 보호의무도 있다고 신상균은 설명했다.
“승무원이 위급할 때 자신이 긴급피난 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게 어려울 것 같은데?”
신상균은 판결문을 되짚어가며 설명했다.
첫째 피난행위가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일 것, 둘째 피해자에게 가장 경미한 손해를 주는 방법을 선택할 것, 셋째 피난행위가 침해되는 이익보다 우월할 것, 넷째 피난행위는 사회윤리나 법질서 정신에 적합한 수단일 것.
“보호조치를 취하기 전에 뺑소니치면 안 되겠네요.”
“전통적으로 선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고 배웠잖아. 우리의 각오는 바다에 매골(埋骨, 뼈를 묻다), 우리의 무덤은 태평양, 학교에서 이렇게 훈련받은 거 기억 안 나?”
“변호산데도 아직 뱃놈 정신이 살아 있군요.”
“개 버릇 어디 가겠어? 이런 의미에서 파이팅!”
두 사람은 술잔을 부딪쳤다. 짤그랑! 건배도 잠시, 그들은 계속 판결문 검토에 들어갔다.
“수난구호법이나 해사안전법 위반에도 특정범죄가중법이 적용되나요?”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한 경우엔 가중 처벌한다는 규정이 있지.”
“요즘 승선 근무하기가 쉽지 않네요. 이러다간 배 타려는 선원 있을까요?”
“그러니 사명감을 가진 친구들이 배를 타야지.”
서정민은 참사 책임자로 지목됐던 사람들은 다들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궁금해졌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라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네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기 때문이겠지.”
해경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밖에 나와 있는 승객이 없어 놀랐다고 한다.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게 전혀 없었다고 했다. 참사 당일 초동 대응부터 구조, 수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부실했다.
그런데 검찰이 실제로 책임을 물은 사람은 해경123정장 정도다.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음에도 퇴선 유도 등을 소홀히 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형을 받았다.
“대법원에서 구조현장 지휘관의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라면서요.”
세월호는 사고가 언제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선장은 사고가 나기 전 400번 정도 인천과 제주를 오갔다고 한다. 화물 적재 상태는 사고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적도 다반사였다.
“마치 사고를 기다리는 시한폭탄이 바다 위를 떠다닌 셈이지.”
이 같은 잘못을 눈감아준 사람은 과연 없었던 걸까. 사람들은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검찰 발표를 믿지 못했다.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운영자이자 오너였던 전 세모그룹 회장은 참사 석 달 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 청해진해운의 김한식 대표는 2015년 10월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7년에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구체적인 죄목을 알면 해운회사 사장에게 참고가 될 텐데요.”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야.”
김 대표는 증축으로 복원성이 악화한 선박에 화물을 과다하게 싣고 평형수를 줄인 데다, 출항 전 과적 여부와 고박 상태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아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에다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선박안전법 위반 혐의가 추가로 적용됐다.
그는 설명을 마치고 서정민을 쳐다보았다.
“서 사장도 배를 운항하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어.”
“그러게요. 관행적으로 사업을 해선 안 될 거 같아요. 안전에 투자도 많이 해야하고요.”
“이래저래 해운업하기 힘들어졌어.”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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