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1 09:43

추억의 명화/ ​빅 식 The Big Sick

서대남 칼럼니스트

국내 개봉이 시작된지 한 달이 됐는데도 까맣게 모르던 필자에게 아주 흥미로운 색다른 영화가 상영 중이라기에 이튿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전철을 타고 어딘지도 모르고 묻고 물어 검색을 통해 얻은 위치정보로 압구정동에 있는 ‘이봄씨어터’란 소극장을 간신히 찾았다. 혹시 놓칠세라 10시 상영에 30분 전부터 불도 안켜진 어느 빌딩 지하 2층 상영관 입구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그것도 서너 사람이 안방에서 비디오를 보듯 ‘빅식(The Big Sick)’이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안도하며 화면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소개 전단에 ‘미국을 들썩이게 한 실화 로맨스’란 문장과 함께 ‘당신의 사랑을 깨워줄 실화 러브스토리’란 글귀가 눈에 띄었고 버라이어티지의 ‘눈을 뗄 수 없는 완벽히 매력적인 영화’를 비롯하여, ‘마음을 휘젓는 강력한 로맨스’, ‘재밌고 감동적이고 통찰력 있다’, ‘말이 필요없다, 그레잇!’ 등 전문 평단 글들이 나열돼 있었다. 또 다른 쪽엔 ‘사랑은 기적이 아니라, 기다림 끝에 옵니다’와 ‘단 하루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없다’는 문구가 무척 처연하게 가슴에 와 닿아 도대체 얼마나 슬픈 사랑이 전개될까 궁금하고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14세가 되던 해, 부모와 함께 파키스탄에서 미국의 시카고로 이민을 와 이주민 2세로 미국에 살고 있는 ‘쿠마일(쿠마일 난지아니:Kumail Nanjiani)’은 대학을 졸업 후 현재 초저녁에는 스탠드 업 코미디언으로 연기력을 다지고 있다. 밤 늦게는 승객과 운송 차량을 연결해 주는 모바일 앱 서비스를 통한 우버 택시 기사로도 일하는, 투잡을 가진 성실한 청년으로 꿈은 코미디언으로 출세하는 일이다.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되란 부모의 뜻을 따라 그 방면의 공부를 하는 척 하지만 실은 법률 공부는 안중에 없다. 

그러던 어느날 코미디 클럽에 자신의 공연을 보러 와 “파키스탄인 있느냐?”는 질문에 “여기요!” 하며 큰 관심을 보이며 환호를 보내는 심리학 전공, 심리 치료사 지망 대학원생, ‘에밀리(조 카잔:Zoe Kazan)’란 백인 여성과 필이 통해 눈이 맞는다. 

그날밤 공연이 끝난 뒤 술집에서 다시 만나 한잔 후 속도감 있게 두 남녀는 쿠마일의 누추한 숙소에서 원 나잇 스탠딩으로 뜨거운 밤을 보내며 즉석 인연을 맺는다. 쿠마일은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지만 파키스탄 이슬람교도의 전통문화와 종교의식과 예법을 철저히 지키며 사는 봉건 집안이라고 털어 놓는다.
아버지 ‘아즈맛(아누팜 커:Anupam Kher)’과 어머니 ‘샤민(제노비아 쉬로프:Zenobia Schroff)’ 두 내외는 빨리 동족 파키스탄 아가씨를 맞아 결혼을 하라며 강요하지만 매번 부모가 주선하는 여성들은 마지 못해 건성으로 만난다. 그는 결혼문제 따위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삶은 스스로가 결정하여 살아가겠단 각오와 철학이 굳건한 청년이다. 그리고 파키스탄 이슬람 교도의 정략결혼 문화에 대해 쿠마일은 “파키스탄서 자랐다고 하면 모두들 거기는 어땠냐고 묻지만, 거기선 야구 대신 크리켓을 하고, 하루에 5번씩 기도를 하며,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는 외에는 여기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1400년 파키스탄 문화에 반기라도 들듯 쿠마일은 식사 중에 부모들로부터 기도를 하고 오라는 지시를 받으면 지하 기도실에 내려가 기도시간 5분을 타이머에 입력하고는 딴 짓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식탁에 다시 와서 기도를 한 것 처럼 속임수를 쓰기까지 한다. 무슬림에게 기도란 생활 중 가장 엄격히 준수되는 종교 예식인데 그는 이 전통마저 과감히 거부하는 청년이다. 파키스탄 처녀가 아니면 결혼이 어려운 입장인 총각 쿠마일은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한편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로 짧고 불행한 결혼 생활의 경험을 가진 돌싱 에밀리는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사랑과 가정을 이루기를 갈망한다. 

이들의 우연한 만남은 운명처럼 깊어가 계속 동침하는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서로의 다른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로 동거 수준에 머물뿐 결혼을 향한 진도는 제자리 걸음이다. 자유분방하게 생활하며 성생활도 즐기는 에밀리는 아버지 ‘테리(레이 로마노:Ray Romano)’와 어머니 ‘베스(홀리 헌터:Holy Hunter)’에게 이미 쿠마일 얘기를 털어 놓은 터다. 하지만 쿠마일은 연애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에게 그녀의 존재를 아예 언급 조차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던 어느날 대형사고가 난다. 우연히 쿠마일 집을 방문한 에밀리는 파키스탄 처녀들 사진이 여러 장 담긴 상자를 발견하게 된다. 쿠마일은 말하려 했다고 변명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다며 슬퍼 울먹인다.

그녀는 쿠마일에게 파키스탄 여자 모델의 심사위원이라도 되느냐며 분개한다. 직감적으로 자기 아닌 딴 여자들과도 거래가 있다고 오해한 그녀는 자신을 무시하는 이같은 처사를 용서하지 못한다. 자신은 부모들에게 쿠마일과의 잠자리가 기막히게 좋았다는 등 별의별 얘기를 털어 놓은 마당에 쿠마일은 여태껏 가족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겨온 걸 알고는 크게 실망하며 당장 헤어지자며 이별을 선언하고 떠난다. 극중 쿠마일의 사촌 형이 아일랜드 출신 백인 여자와 결혼했다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단 언급이 대표적인 예로 묘사되기도 한다. 

쿠마일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정략결혼으로 만났고 아들의 결혼을 위해 파키스탄 출신 여자들을 집으로 계속 불러들이는 일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또 그가 형과 식당에서 백인 여자를 사귄다고 하자 당장 헤어지라고 격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테러리스트를 싫어한다”는 적대시 장면이나 그의 공연 중에 한 관객은 “테러단체로 돌아가라!”는 폭언도 서슴치 않아 파키스탄 이민자들이 미국에서는 테러리스트와 동일 선상서 홀대받는 인종차별 대우가 현실적으로 입증되고도 남는다. 무슬림은 남자의 경우 어떤 종교를 가진 여자와도 결혼이 가능하지만 여성은 ‘책의 사람들(People of the Book)’, 즉 경전을 가진 크리스천, 무슬림, 유대인에 속하는 남자와 결혼이 가능하다고 했다.

신에 대한 믿음도 퇴색해가고 정략결혼도 반대하지만 부모님 앞에선 솔직히 이를 털어놓지 못하던 쿠마일은 미국인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지만 솔직하지 못함으로 인해 이별을 당하고 끝없이 방황한다. 어느 날 에밀리가 원인 불명의 병으로 위험에 처했단 소식에 접하고 급히 달려간다. 그녀의 부모들은 헤어지고 왜 또 왔냐고 거부한다. 

그러나 ‘그녀가 잠든 14일, 진짜 사랑이 깨어나다’란 영화 선전 카피가 밝히듯 치료 방법상 혼수상태에 빠뜨려 여러 차례의 수술을 하는 등 생명이 위험한 상태로 그녀가 병상에 누워있는 14일 동안 자신을 되돌아보며 쿠마일은 진짜 사랑이 뭔지를 깨닫기 위해 새로운 사랑을 시도한다.

생김새와는 딴판으로 활달하고 거친 성격의 에밀리 엄마는 딸과는 절친한 친구처럼 못 나누는 소리가 없을 정도로 다정한 사이다. 아빠 역시 교사 출신으로 성실한 가장이자 배려심 많은 자상한 부성애로 딸의 쾌유를 위해 온 갖 정성을 다 쏟는다. 급기야 쿠마일은 부모님이 정해주는 파키스탄 처녀와 결혼을 반대하고 좋아하는 에밀리란 여자가 따로 있다고 고백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절 선언과 함께 당장 집에서 나가라며 쫓아낸다. 그리고 쿠마일은 산소 마스크를 쓰고 병상에 누워있는  에밀리를 찾아가 결코 그녀를 포기할 수 없다는 각오로 병상을 둘러싸고 그녀의 부모들과 아웅 다웅, 옥신 각신을 되풀이 하면서 그녀의 병상을 지키며 잠시라도 떠나길 거부한다.

처음엔 배척을 당하던 쿠마일은 에밀리의 부모와 함께 3인조가 되어 갖가지 시험도 당하고 함께 팀웍을 이뤄 교대로 그녀를 돌본다. 병상을 둘러싸고 갖가지의 우여곡절과 해프닝을 겪으며 애간장을 태우는 사이에 얼마 전 그녀가 발목을 다쳤었다는 쿠마일의 말을 듣고 병명을 찾아낸 덕분에 에밀리는 기적 같이 깨어나 옛 모습을 되찾는다. 정략결혼에 묶여 요지부동이던 파키스탄 남자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고 코마상태에서 소생한 에밀리에게 그간 잘못을 사죄하고 새출발을 하소연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쿠마일를 거부한다. “부모 노릇은 악몽, 누굴 사랑하는 건 고통”이란 대사가 시사하고 의미하는 바가 큰 처연한 대목이다.

코미디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고군분투하는 쿠마일은 새로운 각오로 동료 코미디 클럽을 끌고 활동 무대를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옮긴다. 드 넓은 세상, 코미디의 본바닥으로 무대를 옮겨 야간 공연을 하는 쿠마일의 연기 도중에 코믹한 어투로 티를 내는 도전적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많이 듣던 음성이다. 첫 만남에서 그를 사로잡았던 모습으로 에밀리가 코 앞 가까운 객석에 앉아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일석이조로 이름난 코미디언과 어여쁜 미국여자를 동시에 거머쥐는 쿠마일의 꿈이 이룩되는 환희의 순간이 온 것일까? 

이 영화는 세계 유수한 영화제 15회 수상과 78회 이상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북미 개봉 당시 17주간 장기흥행 돌풍을 맞았고 로튼토마토 선정 로맨스 부문 1위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쿠마일 난지아니는 1978년 파키스탄 출생으로 스탠드 업 코미디언 겸 배우이며 작가이다. 이 영화 빅식은 자기 자신과 아내 에밀리 역의 실제 이야기, 실화를 소재로 각본도 쓰고 연기도 한 2018년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있는 파이어니어 100인에 선정된 인물이기도 하다. 

마이클 쇼월터(Michael Showwalter)감독이 혼신을 다해 코미디와 드라마의 균형을 맞췄고 에밀리 어머니 역의 홀리 헌터는 ‘피아노(1993)’등에서 명연기를 보인 세계적 연기파이고 ‘색, 계’등 동서양을 넘나든 쿠마일 아버지를 연기한 아누팜 커 또한 노련한 연기파다. 에밀리 역의 조 카잔은 세계적 명감독으로 초원의 빛, 욕망이라는 이름이 전차, 워터 프론트, 에덴의 동쪽 등 불후의 명작을 연출한 ‘에리아 카잔(Eria Kazan)’의 친손녀라 더욱 주목된다.

졸고를 맺으며 필자는 모두에 밝힌 언론이 평한 짧은 시놉시스 외에 ‘지친 일상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작품’, ‘삶을 향한 유쾌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진 러브스토리’,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운 쿠마일과 조 카잔의 열연’, 그리고 ‘사랑을 하고 싶은, 하고 있는 모두가 봐야 할 영화’ 등의 수식어를 부연하며 관람 후기를 대신한다. 

< 물류와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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