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5 10:17

항만공사 통합, 지방분권 역행하는 졸속행정

​시론/ 성결대학교 글로벌물류학과 한종길 교수
 

최근 정부가 부산, 인천, 울산, 광양 등 전국 4개 항만공사(PA)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방안을 수면 위로 올리고 있다. 효율성 제고와 규모의 경제라는 표피적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는 대한민국 항만 물류의 근간을 흔들고 시대착오적인 중앙집권적 발상으로 회귀하는 위험천만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이번 정부의 통합 추진 사유가 진정 국가 물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과거 국가가 모든 것을 수직적, 획일적으로 결정하던 '관치 중심의 항만청 시대'로 역회귀하자는 건가? 이는 국가 균형발전의 대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로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항만 경쟁력의 본질은 '현장성'과 '항만별 특화전략'에 있다. 항만 정책은 단순히 물류를 하역하는 공간의 관리를 넘어선다. 해운, 물류, 배후단지, 지역 경제 및 산업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고도의 종합 정책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4대 항만은 항만공사 체제하에서 각각 명확한 정체성과 차별화된 특화전략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무역을 지탱해 왔다. 부산항은 세계적인 환적 거점이자 대한민국 수출입의 관문인 컨테이너 물류 허브로서 독보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구축하고 있다. 울산항은 국내 최대의 산업단지와 긴밀히 연계하여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와 석유화학 산업을 뒷받침하는 에너지 특화 항만의 위상을 다져 왔다.

인천항은 수도권 물류와 대중국 교역의 전진기지로, 광양항은 남해권 철강·석유화학 산업을 뒷받침하는 대체 불가능한 지역 맞춤형 전략을 실시하고 있다. 여수광양항은 국가 기간산업과 연계된 국내 최대의 산업물류 거점 항만으로 석유화학과 철강 등 국가 기간산업 지원, 그리고 대규모 에너지 비축 능력을 갖춘 산업항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항만별로 주력 산업과 지리적, 경제적 여건이 판이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나의 거대 조직으로 일률적으로 묶어버리는 것은 항만공사 설립 이래 배양해 온 각 항만별 전문성과 고유의 특화 전략을 완전히 사장시키는 졸속 행정의 극치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지방분권과 지역 주도'다. 세계적인 선진 항만들의 운영 거버넌스를 살펴보면, 이번 정부의 통합안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명백히 드러난다. 독일의 함부르크, 미국의 뉴욕·뉴저지항, 일본의 도쿄 등 글로벌 메이저 항만들은 모두 지방정부 주도 혹은 지역 밀착형 거버넌스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항만이 속한 지자체와 지역 사회가 항만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지역 산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때, 비로소 급변하는 글로벌 해운 물류 시장에서 기민하게 생존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 역행하여 정부가 4개 항만공사 통합을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의구심이 든다. 이는 일각에서 지적하듯,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의 통합 논란 등의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땜질식으로 꺼내든 '꿩 대신 닭' 식의 졸속 행정이 아닌가? 부처 이기주의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 에서 비롯된 미봉책일 뿐, 항만산업의 미래를 담보할 어떤 비전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중앙집권적 통합이라는 퇴행적 유령을 쫓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분권과 책임 경영의 강화에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적 대전환이 시급하다. 첫째, 기존 항만공사 권한 확대이다. 중앙정부가 쥐고 있는 항만 운영 및 개발 권한을 기존 4대 항만공사에 과감히 이관하고 자율성을 대폭 보장해야 한다.

둘째, 지자체 주도 항만공사 설립 허용이다. 현재 항만공사가 부재한 타 광역지자체라 하더라도 지역의 필요와 특성에 맞는 해양 물류 거점을 육성할 수 있도록 독자적 항만공사 설립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셋쩨, ‘1도 1항만공사 체제' 구축이다. 국가 주도의 획일적이고 경직된 항만 정책에서 벗어나, 광역지자체가 항만 운영의 실질적인 주체로서 책임을 다하는 분권형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

항만은 대한민국 경제의 숨통이자 지역 균형발전의 핵심 성장 엔진이다. 책상머리에서 급조된 비효율적 통합안으로 항만산업의 백년대계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4개 항만공사 통합 추진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지방분권과 항만별 특성화라는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는 진정한 상생 발전의 길로 나아가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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