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과 중국에 치우쳐있는 우리나라의 무역구조를 신흥시장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다변화해나갈 것임을 알렸다. 최근 미중무역분쟁 여파와 관세분쟁 문제가 첨예화되면서 우리나라가 큰 고충을 겪는데 따른 조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공회의소는 4일 서울상공회의소 지하2층 중회의실에서 ‘통상·무역정책 지역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산자부는 최근 우리나라가 맺은 FTA 추진동향, 외국의 수입규제 조치에 대한 대응현황 및 계획, FTA 활용 촉진정책 및 무역조정지원제도 등을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상공회의소 강호민 전무이사는 개회사를 통해 “계속되는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구조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며 “어려울수록 기업과 정부가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자부 신통상질서협력관 이용환 국장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통상정책들이 장식하고 있다.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기회는 살리는 지혜들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신남방·신북방정책 기조에 발맞춰,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브라질 등 성장 가능성이 있고, 구매력이 있는 시장에 눈떠야 한다”고 말했다.
韓 ISDS, 美 자동차 개정에 주력
산자부는 최근 우리나라의 FTA 추진동향에 대해 ‘FTA 네트워크 고도화’를 기본방향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우선 해외시장 여건변화 등을 고려해, 미국·중국과의 FTA를 포함한 기존에 체결한 FTA를 꾸준히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두 국가의 대한 수입규제는 총 194건 중 미국이 39건으로 가장 많고, 중국이 16건으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핵심 제조산업으로 꼽히는 철강·금속에서 28건의 수입규제를 취하고 있다.
이날 발표에서는 지난달 24일에 서명한 한미FTA 개정안의 주요 내용도 언급됐다. 산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개선 ▲무역구제 투명성·절차 개선 ▲섬유 원산지 기준 개정 추진 등에 주력했다.
특히 한미FTA 체결 과정 중에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ISD는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 개정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 유리한 쪽으로 ISD를 개정하면 미국에 진출했거나 진출 계획이 있는 기업들에게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우선 투자자의 ISDS 남소를 제한해 본안에 넘어가기 전 항변단계에서 중재절차를 신속하게 종료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또 동일한 정부 조치에 대해 다른 투자협정으로 ISDS 절차가 진행되면 한미FTA로 ISDS를 진행하지 못하게 했다. ISDS 청구 시 입증책임이 불명확한 점을 들어 모든 청구요소에 대한 투자자의 입증책임도 명확하게 만들었다.
남소제한과 함께 정부의 정책권한도 보호된다. 가령 내국민대우나 최혜국대우의 경우, 같은 조건에 차별적인 대우를 한다면 공공복지 목적에 따라 정당화 여부를 고려한다.
산자부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체결한 대부분의 투자보장협정에는 ISD가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ISD 제소가 늘어나다보니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도 “해외에 진출했거나 진출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제도가 한 편으로 무기가 된다. 이번에 ISD 남소제한이나 정부의 정당한 정책권한 보호요소를 반영을 많이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외 섬유 원산지 기준도 개정하기로 했다. 산자부는 업계의 건의를 반영해 일부 공급이 부족한 원료는 FTA 미체결국인 역외산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이를 최종재로 생산하면 FTA 체결국의 원산지로 취급하는 역내산으로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반면 미국은 우리나라에 ‘자동차’ 관련 내용을 개정하는 데 힘을 쏟았다.
우선 자동차 수입관세의 경우 ‘픽업트럭’으로 불리는 화물자동차의 관세철폐 기간을 현재의 10년차 철폐(2021년 1월1일 철폐)에서 추가 20년(2041년 1월1일 철폐)으로 늘렸다. 이로 인해 관세 25% 부과는 2040년까지 유지하게 됐다. 대상 차종은 5t 이하, 5~20t, 20t 초과의 디젤차량과 5t 이하이거나 초과하는 가솔린차량 및 기타차량 등이다. 미국이 지난 2014~2016년 이들 6개 차종의 연평균 수입금액은 약 4만달러다.
우리나라의 미국산 수입차 안전기준은 미국 안전기준(FMVSS)을 준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충족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개정했다. 제작사별로 매년 2만5000대의 미국산 완성차가 현지 안전기준을 충족하면 우리나라도 따르도록 간주했지만 앞으로는 이 규모를 5만대로 확대한다. 지난해 미국 빅3 완성차 메이커의 대한 수출 규모는 포드 8107대, GM 6762대, 크라이슬러 4843대였다.
자동차 환경기준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친환경 기술개발 인센티브인 ‘에코이노베이션 크레딧’의 인정 상한선을 현행 14g/km에서 17.9g/km로 늘렸다. 또 휘발유 차량에 대해 배출가스 시험절차와 방식을 미국과 함께 하도록 개정했다.
산자부는 향후 양측의 서한 교환을 통해 행정부 차원에서 발효에 필요한 국내 절차가 내년 1월1일까지 완료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남방·신북방 정책 연계로 추가 FTA 체결
산자부는 핵심 교역국인 미국과 중국과의 통상관계 개선에 주력하는 한편, 정부의 신남방·신북방정책을 연계해, 성장잠재력이 큰 신흥시장과 FTA를 추가로 체결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주요 교역국을 포함한 52개국과 15건의 FTA를 체결·발효해, 세계 3위의 자유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전 세계 GDP의 77%를 차지하고 있다.
향후 산자부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러시아 등과 FTA를 새롭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르코수르 회원국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4개국이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공회의소는 서울 설명회를 시작으로 12월까지 전국 11개 권역에서 순회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2차 설명회는 오는 16일로, 경기도 수원상공회의소에서 열린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