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부산항 컨테이너 터미널운영사 체계 개편안’은 부산항 터미널운영사에게 선전포고에 가까웠던 걸로 보인다. 터미널운영사 관계자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개편 계획을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해수부 또는 부산항만공사(BPA) 측과 공식적으로 협의된 바가 전혀 없었다는 반응이었다.
해수부의 이번 운영사 체계 개편안의 주요 골자는 운영사 개수 축소와 국내 지분으로 구성된 터미널운영사 양성에 맞춰져 있다. 일단, 부산 북항의 터미널은 현재 3개에서 2개로, 신항은 현재 5개(개발 예정 합산 8개)에서 추후 4~5개로 통합한다는 구상이다. 또 해수부는 부산항 부두 운영에 대한 국내 지분을 늘리기 위해 북항의 부산항터미널(BPT)과 동부부산컨테이너터미널(DPCT)을 1개로 합치고 BPA가 가세해 통합운영사를 구성할 계획이다.
이 새로운 운영사는 현재 BPT와 DPCT를 운영하고, 추후 개발 완료될 신항 2-5, 2-6단계에 들어설 터미널도 운영하게 된다. 한편, 북항 자성대부두의 물류기능은 오는 2021년까지 유지되며 2022년에 자성대부두 재개발이 시작되면 신감만과 감만부두 일부로 이전된다.
▲ 북항 2018년 9월 현재 : 3개 운영사 |
▲ 북항 자성대 재개발 착수 이후(2022년) : 2개 운영사 |
컨트롤 타워없는 자율 통합 난망
이번 발표 이후 신항의 터미널 개편에 귀추가 주목된다. 해수부는 기존 터미널운영사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각 운영사 간 자율적 통합을 유도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터미널운영사 측은 ‘자율적 통합’ 방법에 동의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터미널운영사 관계자들은 “통합에 대한 경우의 수가 많아 가정조차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한 터미널운영사 관계자는 “터미널 개편에 대한 공식적인 협의도 없는 상태로 정부가 끌고가는 상황에서 신항 운영사들이 자율적으로 통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 터미널운영사의 주주사들은 통합으로 인한 수익성과 효과에 대한 사전 시나리오를 확보하지 않는 이상 먼저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 부산신항의 5개 터미널은 한진이 대주주인 3부두(HJNC)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계자본이 대주주에 올라 있다. 1부두(PNIT)와 4부두(PSA-HPNT)는 싱가포르의 PSA, 2부두(PNC)는 아랍에미리트의 DP월드, 5부두(BNCT)는 호주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다.
한 외국계 터미널운영사 관계자는 “외국계 자본이 대주주고, 여러 기업의 지분이 섞여 있어 자체 통합 추진은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구체적인 계획이나 전망을 제시해줘야 각 주주사들이 의사결정을 내릴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추진이 가능할 것이란 시나리오를 예상하기도 했다. 한 항만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선 1부두와 4부두 운영사가 같으니 통합하고, 2부두 PNC와 3부두 HJNC, 그리고 수직배열인 5부두 BNCT와 2-4단계가 통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될 경우 각 부두 당 선석 길이가 2.5~3km, 총 6개 정도 배정되므로 적절하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여럿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PNC와 HJNC의 경우 민자부두와 임대부두라는 차이가 있다. 임대부두는 ‘항만법’에 따라 시설 임대형태로 운영하는 형태인 반면, 민자부두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따라 건설돼 터미널 소유권이 장기간 민간 자본에 귀속돼 있다. 따라서 부두 소유권이나 경영권 통합이 쉽지 않을 거란 설명이다.
현재 PNC와 BNCT의 50년 기한의 소유권은 민간기업에 있으며, 개발 중인 2-4단계도 민자부두 형태다. 또한, 1부두와 4부두의 경우 운영사가 같지만, 양 부두 사이에 다목적부두가 있어 통합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신항 통합을 두고 한 터미널운영사 관계자는 신항은 물량이 많고 적자를 보는 기업도 없다는 점을 들며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는 운영사의 대형 주주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하며 해수부의 추진 방식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해수부는 이번 터미널운영사 재편 계획에 대해 “보도자료에 나온 내용이 말할 수 있는 전부”라며 “협의 중인 사안이라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 신항 2018년 9월 현재 : 8개 운영사 (건설중 3개 포함) |
▲ 신항 계획 : 4~5개 운영사 (건설중 3개 포함) |
해수부·허치슨, 자성대-램차방 운영권 맞교환 협상
자성대부두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해수부는 “터미널 운영은 가급적 현재 운영사가 계속 운영”한다면서도 “세부 협의 결과에 따라 다른 기업이 운영하게 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 언급의 배경에는 해수부와 허치슨터미널 간의 진행 중인 협상이 있다. 현재 해수부는 태국 램차방항 허치슨터미널 선석 2개의 운영권과 부산항 계약 연장 건을 두고 허치슨 본사와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해수부의 협상 방식에 대해 항만업계는 ‘상도의에 어긋난 행동’이라는 반응이다.
한 항만업계 관계자는 “태국 램차방항과 부산항은 아예 국가조차 다른 별개의 건인데 협상을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해수부 관계자는 “램차방항 건은 협의 사항의 일부일 뿐”이라며 “현재 협상 중이라 자세한 사항은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북항의 BPT, DPCT 그리고 BPA로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국내자본 통합운영사가 신항 2-5, 2-6단계 운영을 맡는다는 점에 대해서도 영업력을 두고 의구심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신항 터미널 운영사 관계자는 “북항과 신항을 동시에 운영하겠다는 건데 가능할지 의문이다”며 “국내 GTO 양성은 좋은데 GTO 운영에서 중요한 것은 영업력인 점을 정부가 간과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가 나서서 GTO를 육성하기 앞서 BPA의 영향력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현재 BPA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터미널 지분 인수에 제약을 받고 있다. BPA가 소유한 신항 HJNC와 BNCT의 지분은 각각 12.1% 9%이다. 신항 관계자들은 BPA가 신항의 각 터미널 지분을 충분히 확보해야 터미널 운영에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BPA가 운영사들의 지분 확보부터 선행해야 정부가 그리는 GTO 육성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박수현 기자 sh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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