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1 15:13

판례/ Solomon 제도에서 수입한 원목에 적용할 법은?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9.11자에 이어>
■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 판결

1. 들어가며
이번 호에서는 외국에서 수입한 목재에 관한 해상적하보험에 관해 준거법이 크게 다퉈진 근래의 분쟁 사례가 있어 이를 살피고자 한다.

2. 사실관계의 개요
법원의 판결에 나타난 사실관계는 아래와 같다:

가. 선박충돌 사고의 발생 및 화물의 멸실
1) 피고는 B로부터 솔로몬제도에 있는 총 부피 879.714m’ 상당의 원목 140개를 수입하기로 했다.
2) 이에 따라 2015년 2월14일 기선 C는 솔로몬제도에서 이 사건 화물을 싣고 부산항으로 출항했다.
3) 2015년 3월4일 23:00경 이 사건 선박이 인천항을 거쳐 부산항으로 운항하던 중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 중이던 바지선 ‘D’와 충돌해 위 선박의 좌측면 일부가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4) 이 사건 선박은 2015년 3월9일 예인선에 의해 부산항으로 다시 운항을 시작했으나, 2015년 3월10일 07:20경 흑산도 인근에서 전복되기 시작했고, 2015년 4월13일 완전히 침몰했다. 그 과정에서 이 사건 화물도 바다에 잠겨 멸실됐다.

나. 보험계약의 체결 등
1) 부산은행 녹산중앙지점은 피고가 수입하는 화물에 관한 적하보험계약의 체결을 대행해 왔는데,부산은행의 직원 E은 2015년 3월6일 오전경 (즉 위 파손사고 발생이전이나 선박 침몰 전이다) 피고를 대행해 원고와 사이에 별지 제l항 기재 적하보험계약을 체결했다.
2) 이 사건 보험계약에 따라 위 E 에게 교부된 보험증권에는 ‘멸실 여부를 불문하고 위험이 부보된다 (lost or not lost) , ‘본 보험증권에 따라 발생하는 책임에 관한 모든 문제는 영국의 법과 관습이 적용된다(All questions of liability arising under this policy are to be governed by the laws and customs of England) ‘라고 규정돼 있다.
3) 피고는 2015년 5월18일 원고에게 이 사건 보험계약에 따라 이 사건 화물의 멸실로 인한 보험금 271,257,360원을 청구했다.

3. 당사자의 주장과 법원의 판단

가.원고의 주장
이 사건 보험계약은 이 사건 약관에 따라 영국해상보험법이 적용돼야 하고,피고는 이 사건 보험계약이 체결될 당시에 이 사건 화물이 멸실된 사실을 알았으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은 무효이고 설령 피고가 이를 몰랐다고 해도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사실 자체는 인지했으면서도 이를 원고에게 고지하지 아니했으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을 취소한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보험계약과 관련해 이 사건 사고 등으로 인한 보험금 지급채무를 부담하지 아니한다.

나. 피고의 주장
이 사건 보험계약에는 영국법이 아닌 국내법이 적용돼야 하는데,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당시에는 이 사건 화물이 멸실되지 아니해 상법 제644조(보험사고의 객관적 확정의 효과)에 따라 ‘보험 사고가 이미 발생’했다고 볼 수 없고 피고는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사실 자체를 몰랐으므로 상법 제651조(고지의무위반으로 인한 계약해지)에서 정한 고지의무를 위반하지 않았으며, 위반했다고 해도 상법 제651조에서 정한 해지권 내지 취소권의 행사기간이 도과했을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고지의무의 위반 사실이 보험사고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해 상법 제655조(계약해지와 보험금청구권) 단서에 따라 원고는 여전히 피고에게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원고에게 반소로 위 보험금 271,257,36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한다.

다. 법원의 판단
1) 이 사건 약관은 오랜 기간에 걸쳐 해상보험업계의 중심이 돼 온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당사자간의 거래관계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공익규정 또는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이라거나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어 유효하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6년 3월8일 선고 95 다28779 판결 등 참조). 이 사건 약관에 의해 이 사건 보험계약에 적용될 법률은 1906년 영국해상보험법 (Marine Insurance Act, 1906, 이하 ‘영국해상보험법’이라 한다)이라 할 것이다.
2) 국제사법 제27조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준거볍 지정과 관련해 소비자계약에 관한 강행규정을 별도로 마련해 두고 있는 점(국제사법 제27조는 ‘소비자가 직업 또는 영업활동 외의 목적으로 체결하는 계약’으로 그 적용범위를 한정하고 있다)이나 약관규제법의 규정내용, 입법목적 등을 고려하면,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해 체결된 계약에 관해 당연히 약관규제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대법원 2015년 3월20일 선고 2012다118846, 118853 판결 참조), 달리 이 사건에서 약관규제법을 적용해야 할 사정도 보이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에는 약관규제법이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볼 것이다.
3) 가사 약관규제법이 적용된다고 해도, 보험자에게 약관의 설명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험계약자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약관에 정해진 중요한 사항이 계약 내용으로 돼 보험계약자가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데 그 근거가 있으므로(대법원 2000년 7월4일 선고 98 다62909, 62916 판결 등 참조), 해상보험계약에서 사용하고 있는 약관이라 할지라도 개별적으로 그 내용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거나 혹은 이미 법령에 의해 정해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이라면 설명의무의 대상이 아니다(대법원 2007년 4월27일 선고 2006 다87453 판결 등 참조).
4) 그런데 을 제3호증의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피고가 체결한 다른 해상적하보험의 보험증권 내지 송장에도 이 사건 약관이 기재돼 있는 사실, 피고는 1997년 경부터 약 18년간 원목을 수입하면서 연 평균 40-50건 정도의 해상적하보험계약을 체결했던 사실이 인정되고,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피고는 이미 이 사건 약관의 내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보이므로, 원고에게 약관규제법 제3조에서 정한 설명의무가 인정되지 아니한다.
5) 상기를 바탕으로, 법원은 이 사건 보험계약이 체결될 당시 피고가 이 사건 사고의 발생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음 및 원고가 피고의 보험청구가 고지의무 내지 최대선의의무를 위반한 것임을 안 날로부터 약 반년 경과했으나 (즉, 원고는 2015년 4월경부터 피고가 이 사건 사고의 발생 사실을 알았다는 증거를 수집하고 2015년 5월경 손해사정사를 통해 피고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는 등 피고가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사항들에 대해 고지의무를 위반했음을 알게 됐으면서도, 그로부터 수개월이 경과한 후에 이 사건 2015년 12월8일자 준비서면의 송달로써 이 사건 보험계약을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했다), 영국법상 상당한 기간 내에 이뤄진 것으로 보아 동 취소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위 사건에 관해 피고 측은 항소 및 상고를 했으나, 항소기각 및 상고기각돼 1심 판결대로 확정됐다.

4. 평가
해상보험계약에 있어서 국내 (연안) 운송에 관한 것이나 화주 및 보험자가 모두 내국인에 관한 것도 영국법으로 규정돼 있는 경우가 다수이다. 해상 영역에서는 영국법이 국제적으로 보편적인 준거법으로서 수 세기 동안 인정되고 있고, 국내보험이라고 해도 재보험 (내지 재재보험) 계약은 영국 내지 유럽계 재보험사와 체결돼 있기 때문에 재보험계약을 위해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게 된다.

영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운송이라도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기본적인 입장인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당해 화물이 연안운송 건이거나 화주 보험자가 모두 내국인이어서, 섭외적 요소가 전혀 없는 순수한 내국 사건인 경우에도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것이 항상 유효한지, 나아가 영국법이 준거법인 경우 소비자 보호 등을 위한 한국법은 적용이 일절 배제되는지에 관해 관해서 법원의 판결은 일관성을 결하고 있다. (예컨대, 부산-전남 간을 항행하는 모래운반선이 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건에 관해 선박충돌에 관한 책임은 충돌지의 법에 의한다는 섭외사법 제45조 (현 국제사법 61조) 등을 들어 한국법을 적용한 서울지방법원 2002년 7월5일 선고 2001가합36981 판결.)

이 평석 대상 건에서도 2심에서는 (결론이 달라진 것은 아니나)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해 약관규제법 내지 설명의무 등의 적용을 인정하되, 다만, 보험책임 성부에 관한 점만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합의 한 것으로 보는 절충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입장은 “외국적 요소가 있는 계약에서 당사자가 계약의 일부에 관해만 준거법을 선택한 경우에 해당 부분에 관해는 당사자가 선택한 법이 준거법이 되지만, 준거법 선택이 없는 부분에 관해는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이 준거법이 된다(대법원 2016년 6월23일 선고 2015다5194 판결)”는 최근의 대법원 판결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는 하나, 당사자가 계약의 일부에 관해서만 준거법을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점을 부정키는 어렵다.)

준거법의 이슈는 약관설명의무에 관한 약관규제법 이슈 뿐만 아니라, 이 판결에서 보는바와 같이 계약 취소 내지 해지 표시의 시한, 피해자의 직접청구권 등 여러 이슈로도 이어진다. 아울러, 영국이 2015년에 자국의 보험법을 개정했고 동 개정엔 고지의무에 관한 것도 있으므로,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한다고 판단되는 보험계약들도 종전의 판례들이 향후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아니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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