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7 10:33

가시화된 한미FTA 재협상, 수출물동량 타격 불가피

무역수지 흑자에도 철강·자동차부품·가전제품 수출↓

한국과 미국 양국이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 5년 만에 전면 재협상되거나 폐기될 위기에 있다.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의 슬로건을 내세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시작으로 한국과의 무역협정도 재협상할 것이란 의지를 내비쳤다. 이미 지난 4월29일 모든 무역협정에 대한 전면 재검토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한국과의 FTA 재협상단도 꾸리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한미FTA가 재협상되면 향후 5년간 수출손실이 최대 170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도 FTA가 재협상되면 수출입물동량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韓美 FTA, 양국 교역 도움됐다

양국 간 무역협정은 지난 2003년 8월 FTA 추진 로드맵 마련으로 시작돼 2007년 4월 협정 타결을 거쳐 2012년 3월 정식 발효됐다. 한미FTA로 양국은 전 상품 품목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고 민감 품목은 장기 관세, 비선형 관세철폐 등을 도입해 자국 산업 보호를 도모했다.

특히 공산품에 대해서는 협정 발효 이후 5년 내로 대부분 관세를 철폐하도록 합의했고, 승용차와 전기자동차는 발효 4년차까지는 기존 관세율(한국 4.0%, 미국 2.5%)을 적용하다가 5년차에 완전철폐하기로 합의했다. 한미FTA에서 가장 민감한 부문인 농산품은 농업 긴급수입제한조치, 관세율할당, 계정관세 도입으로 15년 이상의 관세철폐기간을 확보하는 등 갈등을 줄여 나갔다.
 

양국의 FTA 효과는 수치에서도 입증됐다. 우리나라 수출입교역량이 세계경기 침체로 감소한 적은 있었지만 미국만큼은 예외였다. KMI는 한미FTA 발효 이후 5년간 우리나라의 세계 교역액은 연평균 1.6% 감소했지만 대미 교역액은 1.7%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대미 수출액은 연평균 3.4% 증가했고, 수입액은 0.6% 감소했다. 수출입물동량도 FTA 효과가 여실히 나타났다.

해양수산부 해운항만물류정보센터에 따르면 FTA 발효 이후 전 세계와 교역한 컨테이너 물동량은 연평균 4.0%의 성장세를 보였고, 대미 수출입물동량도 3.5%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특히 수출물동량이 연평균 3.8%의 증가세를 보여 수입물동량 증가율 3.3%보다 소폭 높았다. 연평균 성장률을 놓고 보면 한미 교역액 물동량 모두 수입보다 수출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 셈이다.

품목별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주요 수출품은 잡화 46.6%, 자동차 24.5%, 철재 10.6% 순으로 나타났으며, 자동차화물은 협정발효 전후 증가량이 725만t을 기록해 가장 큰 성장률을 거뒀다. 자동차부품은 즉시 철폐 및 발효 4년차 이후 관세철폐(승용차)에 따라 가격경쟁력 확보 및 미국 자동차산업 회복세에 힘입어 수출 증대 효과를 맛봤다. 그러나 최근 해외생산 확대 및 태풍 등에 따른 국내생산 감소로 지난해 자동차 수출물동량은 전년대비 6.1%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입품목은 잡화가 44.5%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뒤이어 유류 14.2%, 양곡 9.8% 순이었으며, 유류가 발효 전후 증가량(525만t)이 가장 컸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한동안 FTA 효과로 수출물량이 증가하는 듯 했지만 최근 몇 년간 국내 대·중소기업이 베트남 태국 인도로 진출하면서 한국발 수출물량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FTA 재협상시 수출물동량 최대 2015만t 증발

양국 교역에 이로운 것으로 입증된 한미FTA가 폐기되면 우리나라에 미칠 수출손실액과 물동량 피해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경연은 한미FTA 재협상 시나리오에 따른 5년간 수출손실액이 66억~17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한경연의 첫 번째 시나리오는 FTA 체결 이후 미국의 연평균 무역적자 증가액이 2억달러 이상인 자동차 기계 철강 등에 관세를 높였을 경우다. 미국의 3대 핵심 산업에 과세를 높이면 향후 5년간 수출손실은 최대 17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자동차 정보통신기술(ICT) 가전 석유화학 철강 기계 섬유 등 7대 주력 수출산업에 대해 중간단계의 관세 양허 수준으로 회귀할 때다. 한경연은 두 번째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전개되면 향후 5년간 수출손실액이 최대 66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평가했다.

두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나가는 수출물동량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KMI는 한경연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향후 5년간 한국의 대미 수출물동량은 1431만~2015만t이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품목별로도 수송물량이 급감하고 있다. 철강제품은 이미 반덤핑 관세 영향으로 중견중소 철강기업의 수출물량이 전년대비 크게 줄어들고 있다. 자동차부품은 현대기아차의 현지판매량 저조에 국내 1·2차 협력사들이 연쇄피해를 입으면서 국내 물류기업들이 수송할 물량도 크게 줄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8월 미주지역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25%가량 줄었다. 완성차를 조립하는 현지 공장도 판매량 저조에 두 차례나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품물량이 주로 수송되는 서배너·모빌행 선적량은 1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자동차바퀴는 40피트 컨테이너(FEU) 기준 주당 수십 개씩 실리던 게 최근 현지 판매량 저조로 반 토막 났다”며 “국내 화주들이 통상임금과 FTA 재협상 문제 등에 염증을 느껴 국내 생산을 줄이고 해외공장에서 생산을 늘리려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한미FTA 폐기 본격 언급

양국 간 FTA가 재협상이 아닌 본격 파기될 가능성도 언급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한미FTA에 대해 ‘재앙’으로 불렀고 지난 6월말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양측이 재협상을 하고 있다” “2주전 한미 FTA 만기가 도래했다”는 발언 등을 서슴지 않았다.

최근에는 양국 특별공동위원회에서 견해차가 워낙 커 재협상이나 개정보다 아예 폐기하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백악관 참모 다수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실제 폐기가 어렵다는 전망도 나오는 등 한미동맹 관계는 안개형국이다.

한 선사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폐기를 언급하고 있지만 내부반발이 심한 편이고 미국의 주력산업인 농축산업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돼 미국 측도 쉽게 파기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물류업계도 FTA협정 폐기에 대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지만 현실화되면 자동차관련 화물의 수출물동량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협상이 파기되면 가장 먼저 자동차관련 화물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2·3차 협력사들은 뾰족한 대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실화주로선 관세가 높아지는 만큼 단가경쟁력을 갖추거나 생산성을 높이거나 물류비를 절감하려는 노력을 보일 것”이라며 “가장 손쉬운 물류비용 절감으로 (화주가) 방향을 잡게 되면 해운물류업계는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정파기로 대미관세가 중국과 비슷해져도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중국을 통한 우회 수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중국에 진출한 부품사들은 현지에서 2~3%대의 관세를 중국정부에 지불하고 미국 현지로 수출하고 있다”며 “FTA가 재협상되거나 파기되더라도 관세는 2~3%대로 책정돼 가시적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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