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5 10:12

철도통합 필요하다? 바보야, 문제는 '물류'야!

철도 물류부문 자회사 추진 긍정적 시각도

한국철도는 2005년 대변혁을 맞았다. 노무현 정부는 철도청을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공단)으로 분리시켰다. 철도 인프라 구축을 비롯한 시설관리는 공단에, 국민들과 접점에서 철도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영은 코레일에 맡겼다. 당시 정부는 철도의 상하분리로 철도시설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명확하게 하고, 각 기관의 경영책임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체제에서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조직의 효율성 달성이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철도는 다시 ‘통합’을 논의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은 공식석상에서 철도의 공공성 강화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철도의 통합 가능성을 시사했다. 

상하분리, 사고 줄고 투자 늘었지만…

일각에서는 다시 철도 통합을 논의하는 건,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철도가 분리되고 난 다음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많았다. 대표적인 성과로 철도사고의 감소를 꼽을 수 있다. 철도사고는 2003년 710건에서 2005년 360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고, 여객사상사고는 371건에서 127건, 공중사상사고는 204건에서 133건, 직무사상사고는 70건에서 59건으로 감소했다. 철도사고는 해를 거듭하면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선 철도분리로 인한 효과가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투자도 증가했다. 이달 철도업계 종사자 다수를 취재한 결과, 그들은 철도의 상하분리 이후 투자규모가 확대됐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확정·고시한 ‘제4차 중기교통시설투자계획’을 보면, 철도부문에 투입되는 예산은 총 48조1000억원 규모다. 이렇게 되면 철도 총연장은 2005년 3862km에서 2020년 4971km로 28.71% 증가한다. 


▲연도별 철도 총연장

코레일 관계자는 “지난 13년간 투자가 원활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인프라가 확충된 건 긍정적이다”며 “이제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철도시설)는 잘 구축됐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공단 관계자 역시 “두 기관이 분리된 이후 철도에 대한 투자는 증가했고, 서비스 개선도 이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 편익 증진 차원에서 상하분리에 따른 효과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철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로 인프라는 충분히 확장됐지만, 상하분리 체제에서는 효율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철도통합을 논의할 만한 ‘거버넌스’를 구축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충분한 의견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도 물류부문 ‘분리’ 가능할까 

철도여객은 공공성이 강한 반면, 철도물류는 민간기업을 상대로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효율성과 수익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그간 철도물류는 정책적으로 소외된 측면이 강했다. 여객과 화물이 통합 운영되는 구조에서는 선로배분, 시설투자 등이 여객 위주로 운영됐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물류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철도물류의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독립경영이 가능한 구조로, 종합물류기업으로의 발전을 지원한다는 전략이었다. 

2012년 기준 철도공사의 운송적자 중 물류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120%에 달한다. 지금과 같이 여객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다른 사업에 ‘교차보조(시장 독점력을 이용해 얻은 초과이윤을 동종의 다른 사업장에 보조하는 것)’하는 형태로 운영될 경우,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철도수송분담률 (자료 : 나라지표)

코레일 내부에선 ‘물류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회사 분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섣부른 자회사 분리는 ‘자본잠식’을 초래할 여지가 높다. 우선 철도물류가 충분히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철도물류를 자회사로 분리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수익성이 좋아질리 없다. 유사시 국가물류를 책임지고, 국가물류비 절감을 위해서는 철도물류를 반드시 유지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녹색물류가 강조되는 시점에서 철도는 환경 친화적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운송수단이다. 그럼에도 철도화물수송량과 분담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여객은 국민들의 공공성을 위해 운영되다보니까 선로를 주간에 사용하고, 사람이 적은 야간에는 물류수송이 주로 이뤄지는데 이 때문에 야간수당(인건비)이 들어간다”며 “또 화물차량은 속도가 느리다보니까, 운행하는 중간중간 여객열차를 먼저 보내는 경우가 빈번한데, 길게는 한 시간씩 도착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도 추가수당(인건비)으로 비용부담을 떠안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철도물류 투자 선행돼야 

장대열차는 최대 80량을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송효율이 증가하고, 인력도 감소돼 물류비 절감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통상 화물열차는 33~40량(500~600m) 규모로 운행돼 왔는데, 국내에서 개발한 ‘분산중련 제어기술’을 적용하면 80량에서 100량까지 연결이 가능하다. 장대열차가 도입되면 전체 국가물류비가 절감될 여지가 높고, 화물연대 파업이나, 유가변동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물류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장대열차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경부선에 유효장 증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코레일은 최근 ‘장대열차’ 도입을 위한 예산심사를 받았다. 비용편익분석(B/C) 결과도 긍정적으로 나왔고,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도 좋은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최종심사에서 지자체의 요구에 따라 ‘여객부문’에 예산을 배정했다. 철도물류에 대한 투자는 주저하면서 매년 흑자경영을 주문하니, 이에 따른 애로사항이 있을 법하다. 


▲장대열차 시범운행 모습

코레일 관계자는 “당초 경부선에 유효장 17개가 필요했는데, 예산을 줄이기 위해 11개로 줄였고 대신 열차의 속도를 120km로 늘리거나 운영을 효율화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며 “분산중련 제어기술로 40량 열차 두 대를 연결하면, 시발역과 종착역을 추가로 확장하지 않고, 열차를 분리해 상하역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대비 수송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대열차의 핵심기술인 '분산중련 제어기술' 40량 열차 두 대를 무선으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그는 “물류를 자회사로 분리하는 건 꼭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철도물류를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당연히 수익을 내고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며 “B/C 결과도 좋았고, KDI에서도 좋은 평가를 내렸지만 지자체의 강력한 요구(여객)에 밀려 결국 철도물류에 대한 투자는 보류됐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부산항의 물동량이 감소하고, 인천항과 평택항의 물동량이 증가할 경우 장거리에 유리한 철도물류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이에 대해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관계자는 아직까지 크게 우려할 사항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일부 물류기업 관계자는 “인천신항이 개장하면서 앞으로 인천항으로 물동량이 이전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철도물류의 경쟁력은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이미 화물이 운송되는 추이를 보면, 이러한 조짐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레일 개혁 요구도 잇따라 

시설투자도 중요하지만, 코레일의 운영능력이 부족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코레일은 공공기관의 특성상, 민간기업에 비해 마케팅이나 영업력이 떨어지고 이 때문에 철도화물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는 주장이다. 민간기업에 비해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게다가 일부 전문가는 이미 철도물류는 공급이 과잉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문제는 지금도 화물이 없는데, 장대열차를 도입하고, 이단적재열차(DST)를 도입한다고 해서 화물이 늘어난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며 “철도전환교통보조금이 시행되고 있지만, 실효성은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철도 수송량을 높일 수 있는 이단적재열차(DST). 내수용으로 알려졌으며,
CJ대한통운이 사업성 용역을 진행 중으로 9월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현재 양회업체는 철도물류를 이용하는 비중이 높다. 품목의 특성상 철도물류가 적합한 측면도 있고, 공장내부까지 선로가 설치돼 있기 때문에 편의성도 높다. 공로와 비교했을 때 물류비용도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철도물류에 특화된 품목을 지속적으로 발굴·개발해 새로운 물동량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동시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마케팅에 나서, 고객(민간기업)의 목소리를 청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레일에 따르면 올해 1~7월 집계된 컨테이너 수출입화물이 전년 동기 대비 10.8% 가량 감소했다. 코레일 측은 컨테이너 야드(CY)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소량화물이 이탈한 게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재 철도물류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차원에서 효율화를 추진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철도는 국가물류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철도 물류부문을 따로 분리하는 전재조건으로 적절한 투자로 기반을 충분히 만들어줘야 한다”며 “법률적인 부분에서 애로사항도 있다. 일본의 경우 철도물류를 시작으로 종합물류기업을 발전하고, 다양한 부대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규정상 ‘철도와 관련된 것’만 해야 하기 때문에 제약이 많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철도를 운영해야하는 입장에서 철도시설공단이 (코레일과) 타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로를 놓는 경우에는 한숨만 나온다”며 “애초에 선로가 잘못 개설돼 효용성과 수익성이 없어도, 이에 따른 적자나 손해는 코레일 보는 구조이다”고 강조했다. 

OSJD 가입 ‘북한’ 설득해야 

한편 전문가들은 한국철도가 단순히 한국에서 밥그릇 싸움을 할 게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국은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국가시책으로 추진하면서 철도부문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완성될 경우 총 64개 국가를 포괄하는 경제회랑이 구축되며, 해당 국가 및 지역의 총인구와 경제규모는 각각 전 세계 63%, 29%를 차지한다. 무역규모는 23.9%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역시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인도’에서 스마트시티, 도시철도, 공단개발, 고속철도 건설과 같은 대규모 사업을 따냈다. 

한국국제물류사협회 구교훈 회장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국가시책으로 추진하면서 신실크로드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며 “최근에는 중국의 해운사 코스코가 OOCL을 인수하면서 세계 3위 선사로 등극했다. 중국이 물류에서 육상과 해상을 모두 연결한 최강의 물류국가로 성장하면서 세계로 진출하고 있는데, 한국은 글로벌로 진출할 생각은 안하고,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하면서 통합을 논의하고 시너지효과나 따지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으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실현하기 위해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조기 가입을 추진하고, 남북철도연합사업을 추진해 한-러, 한-중 협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만약 이 공약이 실현되면 부산신항에서 출발해 유럽까지 철도를 수송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수출입기업에 다양한 형태의 복합운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OSJD 원년멤버인 북한은 2003년 한국의 가입을 반대했고, 2015년 몽골에서 열린 ‘제43차 OSJD 장관회의’에서도 북한의 반대로 정회원 가입이 무산됐다. OSJD 정회원 가입은 북한을 비롯한 28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당시 중국은 기권표를 던졌고,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한국의 OSJD 정회원 가입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한국의 철도경쟁력이 좌우되는 상황이다. 비록 정회원 가입은 실패했지만, OSJD 가입을 위한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일부 국가에선 OSJD 가입절차를 만장일치에서 3분의 2 이상 동의하는 방향을 바꾸자는 의견도 냈다. 향후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될 경우, 한국의 OSJD 정회원 가입은 희망을 가져볼 만하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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