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물류업계에 물류 관련 인증제가 도입된 지 어느덧 11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글로벌물류기업을 만들자는 취지로 과거 정부가 도입한 우수물류기업인증제는 현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큰 혜택이 없다는 이유로 물류 인증 획득을 꺼리는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물류업계는 유명무실한 우수물류 인증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혜택이 기업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증 신청 시들’ 추가모집 진행
종합물류기업 인증은 물류 인증제의 효시로 볼 수 있다. 이 인증은 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을 내걸며 지난 2006년 출범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화주에 대한 세제 지원이 무산되면서 제도 도입 취지가 크게 퇴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물류 관련 인증은 6개까지 불어났고, 주관기관도 제각각 찢어졌다. 종합물류기업과 우수화물정보망은 교통연구원, 우수화물운송업체는 능률협회, 우수물류창고업체는 통합물류협회, 우수국제물류주선업체는 국제물류협회에서 각각 맡았다. 주관하는 곳이 다르다보니 심사 기준과 절차 등도 제각각이어서 기업들이 혼선을 빚었다. 인증제 범람을 두고 ‘옥상옥’이란 비판도 뒤따랐다.
여러 기관에서 관리했던 6개의 인증제는 재작년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6개 인증을 우수물류기업인증, 우수녹색물류기업으로 통·폐합한 것. 이듬해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는 심사대행기관을 교통연구원으로 이관했다. 심사 규정도 강화했다. 인증 요건은 100점 중 70점 이상, 세부심사 항목별로 20% 이상을 받도록 했다. 재심사 기간도 2년에서 3년으로 늘었다. 신규 인증은 300만원, 정기심사(재심사)는 150만원의 수수료를 납부, 기존과 동일하다.
하지만 심사 대행기관이 교통연구원으로 이관된 뒤 물류업계에서는 이상 변화가 감지됐다. 수천장에 달하는 서류를 박스에 담아 세종시까지 직접 가야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심사는 리더십 및 경영전략 등 5~10점의 평가항목이 새롭게 추가됐다.
과거 우수화물운송업 우수물류창고업 우수국제주선업은 모두 협회에서 심사를 진행했다. 회원사를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하다보니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 심사가 한결 수월했다는 게 인증에 참여한 기업들의 견해다. 종합물류업 인증기업들은 교통연구원에서 전부터 심사를 받아왔던 터라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다른 분야 인증기업들은 심사를 준비하는 게 예전보다 까다로웠다고 입을 모았다.
교통연구원 우수물류기업인증센터는 2개 분야에서 우수물류기업을 모집 중이다. 지난 6~7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모집을 진행했으며, 남은 하반기를 포함해 올해 총 4~5건의 모집을 계획하고 있다. 신청 업체가 부족할 경우 추가모집을 지속적으로 벌인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상반기와 하반기, 총 2번의 모집공고를 진행한 것과 비교하면 늘어난 셈이다. 참여업체가 해를 거듭할수록 줄자 모집 횟수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인증을 획득한 물류기업은 총 4곳으로 파악됐다. 올해 6월 모집엔 단 두 곳만이 신청 의사를 밝혀 왔다. 2014~2015년 각각 39곳 22곳이 인증을 획득한 것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증 심사에서 떨어진 이유도 있지만 참여업체가 적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지난해 국제물류주선업분야 우수물류기업 인증을 획득한 업체는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옛 ‘우수포워더’ 시절 도입 첫해와 이듬해에 각각 20곳 7곳이 인증을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진해운 파산 여파와 글로벌 해운물류시장 침체 등의 시장 환경 변화로 기업들의 신청이 적었다는 게 교통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인증취득을 고민하던 기업들이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해 마음을 돌렸을 거라는 업계의 시각도 우세하다.
‘저효율’에 인증 포기기업 잇따라
인증 포기 의사를 밝힌 업체들도 하나둘 나타나 눈길을 끈다. 지난 2014년 인증을 딴 중소물류기업들은 재심사 첫 해인 올해 갱신을 포기했다. 인증 간판을 내려놓은 이유를 물었더니 ‘낮은 효율성’이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적지 않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한 것에 비해 정작 손에 쥘 수 있는 게 없다는 설명이다.
중소기업들에게 유독 부담스럽게 작용하는 건 인력팀을 꾸려 수많은 인증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해외화주와의 거래실적 비율이 15%인 경우 이에 해당하는 거래관계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BL(선하증권) 발행이 1만건일 경우 15%인 1500건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준비하는 데 가장 어려운 심사항목은 ‘국제화’와 ‘업무처리역량’, ‘리더십 및 경영전략’ 등 이었다. 특히 100점 중 40점이 할당된 ‘국제화’는 국제물류주선기업들이 가장 까다롭게 꼽은 심사 항목이었다. 그중 10점이 할당된 권역별 항목은 거래 대륙이 5개, 거래국가수가 30개 이상, 취급화물 종류가 30류 이상이어야 한다.
신청업체의 해외 영업활동이나 국제물류업무 수행을 위해 설립된 해외 현지법인도 운영돼야 한다. 주력 화물 유치와 남다른 경쟁지역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는 기업들에겐 점수를 받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해외파트너 구성 및 해외현지법인 운영도 중소물류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과제 중 하나였다. 몇몇 기업은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 10~20점의 점수를 잃었다.
모든 분야에서 제출하는 리더십 및 경영전략 등도 기업들에게 생소한 과제였다. CEO의 경영어록이나 경영전파 실적 등 비전, 목표, 전략 등에 대한 추진전략 및 실행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증빙자료를 제출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이밖에 교육시간 이수는 전 직원에 대한 교육을, 고객서비스는 다른 항목과 비교해 평가 기준이 애매모호해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러한 고충은 대부분 중소기업에게서 나타났다. 기업들은 이번 재심사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물류업계에서는 항목기준이 너무 대기업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화주 인정않는 보여주기식 ‘인증’
기업들이 몇천장이나 되는 서류를 박스에 담아 세종시에 다녀오지만 돌아올 땐 빈손이다. 눈에 띌 만한 혜택이 없다는 의미다. 물류기업들은 우수물류기업 인증에 대한 혜택이 크게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단순히 홍보에 불과하다는 게 업체들의 전언이다.
문제는 우수물류기업 인증을 화주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류업계에서만 인증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어 기업들이 화주에게 인증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할 노릇이다. 과거 종합물류기업 인증제 도입 당시 화주에게 세제혜택을 주지 않는 한 인증제는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인증 획득 기업을 이용하는 화주에게도 혜택이 제공돼야 인증제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AEO는 통관기간 단축 혜택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물류사들이 관심을 보이는 인증 중 하나다. 물류사 관계자는 “AEO는 화주들도 취득을 하고 있고 물류사에게 요구하고 인지도가 있지만, 이 인증은 그렇지도 않아 득이 될 게 없다”고 꼬집었다.
인증혜택 내용을 살펴보면 자금 일부를 보조하거나 융자한다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물류창고를 건설·확충하거나 노후차량을 대체하고 서비스 향상을 위한 시설·장비 개선, 국제물류주선업 육성 등 상당수가 물류업 발전을 위해 지원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혜택에 대한 기업들의 체감도는 현저히 낮았다. 수십개의 업체를 취재한 결과, 정부의 도움으로 자금을 융자받거나 보조받은 기업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혜택없는 인증제에 관심 ‘뚝’
물류업계는 물류 인증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인증 기업에게만이라도 제조업 수준의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 중 하나가 전기요금의 할인이다. 아직도 주요 물류산업 시설은 산업용 전기요금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무역항 하역시설과 컨테이너 냉동·냉장시설을 제외한 물류창고는 비싼 전기요금을 내고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2008년 정부가 인증기업에 제공한 사실상 유일한 혜택이었던 전기료 감면 지원이 2013년 사라진 까닭이다.
현재 일반전기요금은 1kW당 6160원으로 산업용 전기가격(5550원) 대비 10.9% 비싸다. 물류창고의 현대화 자동화 기계화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정부 정책은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들은 인증제 활성화를 위해 전기세 감면이 재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물류창고업인증을 취득한 한 기업 관계자는 “보통 창고 천장에 쓰이는 전구만 전기세로 나갈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기 충전 설비와 컨베이어 벨트 등 전기로 작동하는 장비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 주요기관 물류입찰에서도 실질적인 혜택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참여기관을 늘리고 가산점 폭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지방해수청 항만공사 토지주택공사 공항공사 수출입은행 등의 입찰에서 우수물류기업에 대한 가산점과 우선입주 혜택이 공고됐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미미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무엇보다 인증을 알아주는 기관이 많지 않아 이에 대한 홍보가 절실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화주가 인증기업의 우수성을 인식해야 저절로 화물이 따라온다는 설명이다. 인증기업 관계자는 “가산점을 받더라도 기존에 입찰을 따낸 업체만 낙찰된다”며 “인증취득기업들을 위한 실질적인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업계에서는 우수물류기업인증을 통한 화주와의 물류컨설팅, 물류 신기술 우선 체험, 항만시설 사용기간 연장, 법인세 감면, 세무조사 유예 등의 혜택을 희망사항으로 꼽았다.
물류경쟁력 10위 달성위해 정부 예산확보 시급
결국 화주에 대한 세제 감면, 인증기업 자금융자나 보조 등의 혜택은 예산 문제로 이어진다. 그 키를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선뜻 문을 열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가산점으로 인해 혜택을 보고 있고 앞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기관을 늘리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산 부문과 관련해 “물류와 더불어 SOC(사회간접자본) 등의 신규사업에 대한 예산 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제도적인 부분에서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우수물류인증제도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인 기업들도 있었다. 인증 획득으로 영세 기업 이미지를 탈피하는 한편,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이 비용으로 (인증) 마크 하나만 명함에 들어가면 됐지. 무슨 혜택을 더 바라겠느냐”며 “이미지 제고와 홍보 등에서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내 물류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제조업계의 경쟁 심화로 원가 절감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화주와 물류업계의 상생을 돕고자 인증제를 마련됐다. 이러한 취지를 살려 2020년 물류 부문의 전체 산업 비중을 5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국가물류기본계획’을 지난 2011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5년 뒤 정부는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물류스타트업 육성, 철도화물운송 경쟁 환경 조성, 물류사 해외진출 지원 등의 새로운 플랜을 내세워 우리나라를 세계 10위권의 물류국가로 만들겠다는 ‘2016~2025년 국가물류기본계획’을 내놓았다. 큰 틀로 보면 물류인증도 국내 물류사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줄 비장의 카드로 작용해야 한다. 물류업계는 우리나라 물류 발전에서 더 나아가 글로벌물류기업을 배출하기 위해서라도 인증제가 올바르게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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