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5 10:56

북극항로 개발 어디까지 왔나

물류기업 ‘수익성 확보’가 진출 전제조건
▲ 최근 대우조선해양이 러시아에 인도한 쇄빙LNG선

신정부가 출범하며 ‘꿈의 항로’로 불리는 북극항로가 재조명 받고 있다. 특사 신분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송영길 의원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직접 만나 북극항로 공동 개척 등을 논의했다.

이달 초에는 세계 1위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이 러시아에서 세계 첫 쇄빙LNG선 명명식을 가졌다. 액화천연가스(LNG)의 본격적인 북극 운송 시대를 알린 이번 행사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참석해 북극항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아내리며 북극을 향한 지구촌의 관심도 뜨겁다. 특히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이 북극항로를 주목하고 있어 우리나라와의 선점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러시아 정부, 북극개발에 100조 쏟아붓는다

북극항로는 러시아 북쪽 북극해 연안을 따라 무르만스크에서 동쪽의 베링해협까지 연결하는 해상 수송로다. 기업들이 이용해온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 등의 철도나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원양항로-내륙운송 조합방식을 대체할 수 있어 해운물류업계의 관심을 꾸준히 받고 있다. 2011년 통행료도 t당 4~5달러로 인하되면서 이 항로를 이용하는 화물은 증가하고 있다. 이 수송로의 최대 강점은 아시아-유럽항로-내륙운송 방식보다 20일 이상 운송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도양과 수에즈운하를 통하는 기존 남부 경로보다 이동시간도 크게 줄어든다. 부산-로테르담의 경우 거리는 32%(2만2200km→1만5000km), 일수로는 10일(40일→30일)이나 단축된다. 현재 약 4개월(7~10월)만 운항이 가능하지만, 얼음이 완전히 녹는 2030년에는 아시아-유럽 간 물동량 및 북극에서 생산된 자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경제적, 전략적 활용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지의 세계인 북극항로에는 미래 먹거리도 가득하다. 막대한 규모의 지하 자원과 세계 물류의 중심을 북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북극항로는 러시아 국가발전 전략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 매장돼 있는 천연가스의 90% 이상이 북극에 집중돼 있으며, 니켈과 금속 매장량도 상당하다.

특히 야말지방에는 가스유전이 집중돼 있다. 1년 내내 LNG 운송이 이뤄지는 이 지역의 LNG 터미널은 빠른 시일 안에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러시아의 야말LNG 프로젝트 등 북극의 자원개발이 활발해지면서 플랜트 설비와 석유, 가스 등의 운송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항로 활성화를 위한 러시아 정부의 북극개발 프로젝트도 중점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화로 따지면 100조원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금액이 북극개발에 투입된다. 코트라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2025년 러시아 극지방 사회경제 개발 정책’ 추진을 위해 150개 프로젝트를 지정하고 향후 5조루블(약 98조원)을 투자한다. 5조루블 중 1조루블은 정부 예산으로 지원되며, 4조루블은 외부 투자 등에 의해 조달한다.

러시아가 가장 공을 들여 추진 중인 물류 프로젝트는 벨코머(White Sea-Komi-Ural)와 북 위도 루트다. 이 프로젝트에는 17개 북극개발 핵심 사업이 포함돼 있으며 약 2500억루블(약 4조9000억원)이 투입된다. 벨코머는 페름에서 코미를 통해 아르한셀스크항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 북 위도 루트 현황도(자료: 코트라)

북 위도 루트는 러시아 북극에서 북부 철로와 스베르들롭스크 철로를 연결하고 화물을 야말 지역에 새로 건설된 사베타항을 통해 전 세계로 운송할 수 있는 물류 네트워크다. 특히 북 위도 루트가 구축되면 수백만t의 화물이 우랄과 볼가지역에서 이동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시베리아 지역이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 연결되는 한편, 야말-네네츠 자치 구역 중앙에서의 탄화수소 개발도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사베타항은 야말 LNG개발 사업의 일부이며 북극항로 물량의 급격한 성장을 도와줄 항만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류기업 관계자는 “사베타항을 연결하는 철로가 놓인 것을 보고 이 항만의 성장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사베타를 통한 자원 운송을 활성화하겠다는 러시아의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극동 3국 북극항로 선점경쟁 가열

북극항로의 미래는 밝다.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열강들은 북극해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로 서쪽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은 동진(東進) 전략으로 북극항로를 점찍었다.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일도(一道) 개발을 통해 또하나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여기서 일도는 북극항로 개발을 의미한다. 일대일로와 마찬가지로 일도를 이용해도 로테르담까지 갈 수 있다. 일대일로 주변국들 역시 일도를 통해 아시아, 북미, 유럽과 교역할 수 있다.

이밖에 에너지시장의 판을 뒤흔들고 있는 미국 셰일혁명이 주목되고 있어 러시아를 통한 LNG 수송도 중국의 향후 북극해 진출 전략 중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의 북극항로 진출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과 러시아가 중국의 북극항로 진출을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과 러시아는 중국의 북극해 진출을 막기 위해 방위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도 북극항로 진출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쓰이상선은 2018년부터 북극항로에서 정기운항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업계 일각에서는 일본 북부섬과 러시아를 연결한 해저터널 개발에 관한 양국간 협력이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북극해 진출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북극 운송경험이 전무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한국과 협력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북극진출을 위한 일본 재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부도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기울이고 있다. 2013년 5월 북극 이사회 옵서버국으로 가입하면서 북극해 진출을 알렸다. 2014년 출범한 이래 매년 2회 북극항로 활용지원 협의회를 개최, 항로 이용을 활성화하고 정보 공유를 촉진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북극항로 이용 횟수도 차츰 늘어나고 있다. 2013년 시범사업을 포함해 지난해까지 총 5건의 운항실적을 기록했다. 2013년 현대글로비스가 스웨덴 스테나해운의 내빙선을 용선, 러시아 노바텍의 나프타 4만4000t을 운송하는 내용의 시험운항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2년 뒤에는 첫 상업운항에 나선 CJ대한통운이 자사 중량물운반선을 투입, UAE(무사파항)-러시아(카메니항·야말반도) 노선에서 해상 하역설비를 운송했다. 지난해 7월15일에는 SLK국보가 북극항로-러시아 내륙수로를 연계한 새로운 수송로를 활용했다. 팬오션도 같은 해 자사 중량운반선을 이용, 야말프로젝트 LNG 플랜트 설비운송에 나선 바 있다.

해운물류업계 “북극항로 진출시 경제성 확보 우선돼야”

미지의 세계를 열었던 물류기업들은 북극항로를 ‘아직은 먼 블루오션’이라 불렀다. 미래 먹거리는 분명하지만 기업들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대외환경이 아직까지 조성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은 이 항로를 통한 운송량이 매우 적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에서 북유럽으로 향하는 물량이 많지 않을 뿐더러, 북극 자원개발에 투입되는 단발성 화물이 고작이라는 것. 북극항로를 선호하는 화주가 적다는 것도 운송 저하를 일으키고 있다.

이밖에 유가하락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기업들의 진출을 늦추고 있는 원인 중 하나다. 해수부에 따르면 올해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우리나라 물류기업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 섣부른 북극항로 취항은 자칫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가 대부분 보유 중인 쇄빙선 확보는 북극항로의 안전운항을 책임질 필수 요소다. 선박이 북극해를 통항하려면 얼음을 부숴야 할 쇄빙선을 확보해야 한다. 쇄빙선 이용료는 북극항로 통항 시 가장 높은 물류비에 속한다. 해상운임은 쇄빙선 용선료에 포함되며 별도로 도선료가 발생한다.

이밖에 운항 선박을 극지에 버틸 수 있게 개조시켜야 한다. 아이스 브래이커 단계가 높아질수록 갑판이 두꺼워져 극지에서 버티는 게 쉬워진다. 물류사들은 수에즈운하 통항료와 해적 보험, 무장요원 탑승 등의 종합적인 비용을 산출, 북극 운항 물류비를 비교한다. 대체로 비용은 큰 차이가 없지만 러시아에서 비싼 쇄빙선 사용료를 요구할 경우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것보다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대량수송이 가능한 해상을 통한 중국발 물량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굳이 북극해로 끌고 와 화물을 운송할 이유가 없다”며 “기업들 입장에서는 운항하기 위한 경제성 확보가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물류업계는 결국 민간기업이 북극항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하지만 투자 리스크가 커 정부에서 지원이 이뤄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마저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북극항로 운항을 이유로 기획재정부로부터 자금을 끌어와 민간기업에 지원한다는 명분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팬오션은 우리나라 해운물류기업 중 가장 최근 북극항로를 이용했다. 이 선사 관계자는 우선적으로 우리 정부가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기업들의 경제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팬오션 특수선영업본부 김정진 팀장은 “우리나라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중국 일본 등에서 화물을 끌어와야만 한다”며 “전 세계 해상항로는 이미 오픈돼 있어 경쟁력이 없다. 경험 있는 자가 먼저 북극항로를 선점한다면 국가적인 비즈니스 사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극항로를 이용한 기업들의 발걸음도 곳곳에 포착되고 있다. 한 물류사는 빠르면 내년 북극항로를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컨테이너만으로 수익을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만의 독자 영업으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트라 김하민 모스크바무역관은 “북극지역의 프로젝트는 선점효과가 커 우리 기업이 프로젝트로 참가시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자원개발 외에도 조선 항공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설비공급, 시스템 구축 등의 형태로 진출할 수 있는 틈새시장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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