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내항 10개 터미널 운영사(TOC)의 통합과정이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인천내항 TOC 통합 논의는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노사정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아직 발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천지역 항만하역 기업들은 70년 이상 인천항에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어, 통합의 필요성엔 동의하면서도 참여에는 미온적이다. 내항에 종사 중인 인천항운노동조합도 통합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섣부른 구조조정이 인천내항을 위기로 내몰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인천항만공사(IPA)와 인천지방해양수산청 등 정부기관은 노사의 중재자로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을 뿐 뚜렷한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통합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과 중앙대학교는 용역을 맡아,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있다.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단일 운영사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미 물동량이 상당부분 이탈됐고, 10개 TOC 중 흑자를 보는 기업은 단 세 곳에 불과해 재무적 관점에서 보면 그나마 내실 있게 운영할 수 있어 가장 이상적이다.
또 다른 방안은 터미널을 기능별·화종별·부두별로 구분해 2~3개 운영사로 조건부 통합하는 것이다. 조건부 통합은 항만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 문제를 상당히 해결할 수 있고, TOC들도 그나마 선호하는 방안으로 꼽혀 채택될 확률이 높다.
‘통합’, 효율성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인천내항은 총 8개 부두로 10개의 TOC가 48개의 선석을 각각 나눠 운영하고 있다. 이번 통합에서 실질적인 통합대상은 2·3·4·5부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1·8부두는 항만재개발 지구로 지정돼 통합에서 제외돼 있다. 7부두도 양곡전용부두로 쓰여 통합대상이 아니다. 6부두는 홀로 월미도 주변에 위치해 있어 다른 부두와의 공조가 쉽지 않다.
TOC 통합의 근본 배경은 바로 부두 운영의 효율성 강화다. 인천내항은 벌크화물 처리량이 꾸준히 감소하면서 TOC들이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인천내항의 물동량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눈에 띄게 줄었다. 여기에 인천 남항과 북항이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개장, 평택항이 성장하면서 물량들이 대폭 분산됐다.
더 큰 문제는 인천내항의 TOC가 대부분 동일 화종을 처리해 자연스레 하역료 치킨게임으로 이어지는 점이다. 한때 내항 TOC의 하역요율은 인가요율의 40~5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통상 80~85% 수준까지 회복했지만, 기업들의 채산성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IPA 관계자는 “터미널 운영사를 하나로 남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만, 운영사마다 이해관계가 있어 섣불리 결정하기 어렵다”며 “운영사가 난립하거나 분리될수록, 효율성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내항 업계에서는 공공성 측면에서 통합법인의 일부 지분을 IPA가 매수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IPA는 TOC 통합을 위한 지분 출자 계획이 아직 없다고 밝혔다. 항만공사의 대외사업은 기획재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TOC “70년간 유지한 명맥, 이어가고 싶다”
TOC들은 화물 처리량 감소로 인한 매출 부진으로 통합이 불가피하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인천지역에서 성장한 명분 탓에 쉽게 통합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10개 터미널 운영사 중 3개사는 역사가 70년이 넘은 인천지역 향토기업이다. TOC를 하나로 단일화하면 대표 운영사가 불분명해지고, 기존 브랜드로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TOC 업계도 지분, 인력조정, 기간산업 등의 문제를 내걸어 조건부 통합을 선호하고 있다. 조건부 통합이 이뤄지면 지역 향토기업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고, 화물 화종에 따라 분리해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 간 이해관계도 걸림돌이다. 과거 항운노조 근로자들은 화물 t당 일일급여를 받는 도급제 근로자였다. 그러나 ‘항만인력공급체제의 개편을 위한 지원 특별법’이 2005년 12월 제정되면서, 근로계약이 회사 소속의 상용직 근로자로 재편됐다. 상용직 제도 초창기에는 도급제보다 상당한 노동비용의 절감효과를 가져왔지만, 인천내항의 물동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노동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내항 업계는 조건부 통합에 힘을 싣고 있지만, 근로자들의 인력 조정이 없으면 통합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업계는 일방적인 구조조정보다 정부의 지원이 선행되길 바라고 있다.
인천항만물류협회 관계자는 “정부 주도로 내항 1·8부두 사업장을 없앴는데, 나머지 TOC가 해당 운영사의 후생까지 책임질 겨를이 없다”며 “해당 부두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에게 명예퇴직 시 각종 지원책을 제공하는 등 정부가 적극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항운노조는 내항 통합을 물동량 감소를 이유로 섣불리 제단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
항운노조 관계자는 “인천항은 내항 재개발, 인천신항의 인력 재배정, 국제여객터미널 개장 문제 등이 맞물려 있어, 인력 조정은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며 “추후 해외 중고차 수출물량과 대중국 교역량이 늘어나면 과거의 물동량을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통합 방안에 대한 중간보고회가 지난 17일 IPA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보고회에 참석한 유관기관, 업·단체 및 운영사 관계자는 각 시나리오별 추진 타당성을 놓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조종화 IPA 항만관리팀장은 “이번 중간보고회에서 나온 의견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지속적으로 협의를 이어나가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용역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최종적인 통합 방안은 올 8월께 드러난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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