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4 16:29

기획/ 잔인한 10월 한진해운에 철도 화물연대 파업 ‘물류 마비’

화물열차 가동률 절반도 안돼
화주물류기업, 철도물류 신뢰도 저하 우려

올해 10월은 물류기업들에게 잔인한 달로 기억될 듯하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화물연대와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기업들이 느끼는 물류 체감도는 매우 심각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물류대란이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른 악재가 닥쳤다. 이번에는 바닷길이 아닌 철도였다.

철도파업 장기화, 물류기업에 악재

지난달 27일 철도노조는 코레일 이사회의 결정을 통해 도입된 성과연봉제에 반대하며 운송거부에 돌입했다. 성과연봉제란 직원의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등급별로 평가해 임금에 차등을 두는 제도다. 기존 호봉제와 달리 입사순서가 아닌 능력에 따라 급여를 결정한다. 철도노조는 이사회를 개최한 코레일이 제대로 된 단체교섭 없이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해 임금체계를 변경했다며 운송거부에 돌입했다.

철도노조 파업에 철도를 이용해 수출을 진행하던 화주물류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철도로 나가야 하는 화물은 수도권과 부산권을 잇는 내륙화물기지 의왕ICD에 모인다. 물류업계에 따르면 이번 파업으로 의왕ICD에 쌓인 컨테이너는 최대 2200TEU까지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상시 1100TEU 가량이었던 컨테이너 적치량은 파업 이후 두 배로 늘었다. 운송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업체당 약 300~800TEU의 컨테이너 박스가 적체된 것으로 파악됐다. 근해를 기항하는 선박 1척이 빠진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철도 수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가장 피해가 큰 곳은 경부구간이다. 의왕ICD의 철도 수송을 담당하는 오봉역과 수출입 국내 1위 항만인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축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철도 컨테이너 구간이다.

오봉역에서는 약 30~35%, 부산(북철송장 부산진 남철송장)에서는 35~40%의 운송수입이 발생하고 있다. 이 구간에서만 약 65~75%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오가는 셈이다. 삽교와 신광양항이 약 5~10%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그 뒤를 잇고 있다. 물류기업들은 물량이 많은 경부 구간도 문제지만, 지선 구간 화물열차 가동률이 파업으로 더욱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화물열차 가동률 낮은 이유 따로 있다”

코레일은 컨테이너 열차운행을 하루 28회에서 40회까지 늘리고 화차 편성도 열차당 30량에서 33량으로 확대했다. 또한 기간제 근로자, 퇴직자 등을 수백명을 복귀시켜 열차 운행 정상화에 들어갔다.

하지만 화물열차 가동률은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코레일에 따르면 10월12일 기준 화물열차 운행률은 48%를 기록했다. 철도파업 일주일이 지난 4일에도 42%의 낮은 가동률을 보였다. 반면 여객인 KTX와 통근열차 운행률은 100%였다. 새마을과 무궁화 역시 화물열차와 비교해 높은 운행률을 보였다. 물류기업 관계자는 “경부구간 다음으로 물량이 가장 많은 곳이 삽교-부산구간”이라며 “열차를 움직일 승무원이 없는데 코레일에서 진행하는 증차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토로했다.

화물열차 가동률이 낮았던 데는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었다.

철도사업은 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제42조에 따른 필수유지 공익사업장으로 분류돼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고 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인력을 현장에 남겨둬야 한다.

코레일에 따르면 여객 부문은 최소 60% 이상의 인력이 현장에 투입돼 남은 40%의 인력만이 파업에 가담했다. 하지만 화물열차는 필수공익장 내 필수유지 업무에서 제외돼 현장에 인력이 없어도 된다. 조합원들의 100% 파업참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인력 투입이 비교적 수월한 여객에 비해 화물열차 가동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코레일 관계자는 “화물열차의 경우 필수 유지업무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며 “대체인력을 확보한다고 해도 운행률이 여객에 비해 사실상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류기업 관계자는 노동관계조정법 필수유지업무에 화물열차도 포함돼 파업시 현장에 일정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제조업체와 물류기업의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물론 국내 수출입에 제동이 걸릴 수 있어 국가 경제에 타격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여객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은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물류를 홀대하는 정책이 나와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에서 육로로 번진 파업

철도노조의 운송거부가 날을 거듭하자 물류기업들은 육로로 눈을 돌렸다. 평소 철도로 나갔던 컨테이너가 쌓여만 가는 장면을 볼 수 없어 약 60~70%의 화물을 육송으로 돌렸다. 화물 트럭에 짐을 맡겼지만 또 다시 악재가 터졌다. 10월 초 부산과 경남권에 태풍 ‘차바’가 북상하며 화물 입출고가 차단됐다. 철도노조 파업에 이은 태풍 여파로 도착일이 지체됐다. 철도길이 막혀 육상으로 우회해야 했던 물류기업들이 자연재해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철도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도 화주와 물류기업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화물연대는 2003년, 2008년, 2012년도에 이어 통산 4번째로 지난 10일 파업에 돌입했다.

화물연대는 지난 8월 국토부가 발표한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며 ▲수급조절제 유지 ▲표준운임제 법제화 ▲지입제 폐지 ▲과적 근절 도로법 개정 ▲통행료 할인 등을 요구했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은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라며 6개월간 유가보조금 지급을 정지하고 화물운송종사자격을 취소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는 2008년에 진행된 파업에 비해 물류차질이 크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물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트럭 운전자가 ‘반짝 특수’를 기대해 파업에 동참하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게다가 파업기간 동안 자가용 화물차에 유상운송이 허용되는 건 물론 수수료 통행료 등의 비용도 면제된다. 따라서 지금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을 가진 조합원들이 꽤 있어  파업 동력이 약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철도와 육상에서 발생한 피해는 화주와 물류기업에게 미쳤다. 특히 철로에서 육상으로 어쩔 수 없이 운송루트를 변경한 화주와 물류기업은 추가 물류비 부담에 직면했다.

업계에 따르면 약 40만원이었던 운임이 100만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기존 계약업체에게 웃돈을 더 얹어 운송을 진행하는 기업도 포착된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화주와 계약서 작성시 추가비용 부담에 대한 부분은 합의되지 않았다”며 “노조 파업으로 불가피하게 손해가 발생해 회사가 휘청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누가 보상하는 게 맞느냐”며 분노를 표출했다.

떨어진 철도물류 신뢰도, 언제 회복할까

철도노조 파업을 지켜보고 있는 화주물류기업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물류업계에서는 철도물류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어느덧 보름을 넘기며 장기화되고 있는 노조 파업과 차량·시설결함으로 발생한 열차 탈선 등으로 인해 철도물류에 대한 화주의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 하소연할 곳도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철도노조와 코레일의 고객인 철도물류기업이 이번 사태로 금전적 손해를 떠안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철도에서 육송으로 전환하며 추가로 발생한 물류비도 기업들의 수익을 갉아먹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철도 조직 내부에서 터진 사건으로 인해 철도를 이용하면 100원이 들 것을, 육로로 전환하면서 200~300원씩 내고 있으니 이런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이냐”며 “이번 사태는 물류기업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송사들은 철도노조의 파업을 강하게 질타했다. 한 운송사 관계자는 “일반 물류기업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아가는 코레일 직원들의 파업으로 우리뿐만 아니라 수출을 진행하고 있는 화주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며 “나라와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와중에 일어난 이번 파업은 국익에 득이 될 게 없다”고 꼬집었다.

물류기업들은 철도파업이 계속될 경우 긴급 대체수단으로 육로를 택했던 화주들이 철도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육송에 비해 철도물류업계 역시 화주들이 철도 이용을 꺼려하면 계약열차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철도물류 활성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코레일의 사업 전략에도 제동이 걸리는 셈이다. 2012년 이후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는 철도 컨테이너 수송량 역시 상승세로 돌아서기 어렵다.

물류기업 관계자는 “파업 장기화로 철도물류에 의지했던 화주물류기업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며 “정부와 코레일은 철도물류 활성화에 힘을 쏟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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